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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볼셰비키가 남겨준 실마리

독일사회민주당이 갖고 있지 못했던 것, 그리고 우리가 가져야 할 것

 

오연홍 노동자운동 연구공동체 뿌리

 

 

 

6면 러시아혁명 연재.jpg

독일사회민주당의 베른슈타인과 카우츠키(1910년). 이 둘은 마르크스주의를 둘러싸고 논쟁을 벌이기도 했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점진주의를 퍼뜨리며 독일의 노동자당(사회민주
당)을 자본가계급의 2중대로 전락시켰다.

 

 

 

지난 호에서 다룬 것처럼 러시아혁명은 일국적인 사건이 아니라 국제적인 사건이었다. 그런데 러시아엔 계급투쟁의 부침 속에서 단련된 혁명적 노동자당이 있었던 반면, 다른 나라들엔 그런 정당이 없거나 아주 약했다. 이는 러시아혁명이 세계혁명으로 확산되지 못하게 한 결정적인 약점이었다.

 

다른 나라들에도 모종의 노동자당이 있었다. 특히 러시아혁명 이전에 가장 강력한 노동자운동의 전통을 갖고 있던 독일에선 노동자계급 속에 거대한 영향력을 뿌리내린 사회민주당이 활동하고 있었다. 독일사회민주당의 카우츠키는 마르크스주의의 교황으로 불리며 절대적인 권위를 행사했다.

 

레닌 같은 러시아혁명가들에게 독일사회민주당은 의심의 여지없이 국제 사회주의운동의 모범이었다. 그들은 사회민주당을 이상적인 모델로 여기며 신뢰를 보냈다. 하지만 독일사회민주당은 러시아혁명가들의 열망에 부응하는 데 실패했다. 사회민주당은 자신의 나라에서 혁명을 이끌기는커녕, 전쟁과 혁명의 냄새가 나자마자 지배계급 정부와 손잡고 ‘조국을 방어’해야 한다며 정치적으로 붕괴했다.

 

자본주의의 쇠퇴와 1차 세계대전이 야기한 국제적 위기에 휘말렸다는 점은 동일했다. 그런데 러시아 볼셰비키와 독일사회민주당의 결말은 완전히 달랐다. 이런 차이는 왜 일어난 것인가?

 

 

점진적인 성장, 점진적인 부패

 

독일에서 사회민주당이 성장하던 시기는 독일 자본주의가 비교적 순탄하고 강력하게 발전하면서 독점자본주의로, 즉 제국주의로 진입하던 시기다. 개량의 시대였다. 이 시기에 계급투쟁의 급격한 폭발을 기대하기란 어려웠다. 노년의 엥겔스도 동료들과 교류하면서 “이 진지에서 저 진지로 서서히 밀고 나아가야” 하는 “장기간의 지속적인 작업”을 제기했다.

 

하지만 개량의 시대가 빚어내는 점진주의적 사고방식이 사회민주당을 야금야금 갉아먹었다. 카우츠키가 당 강령에 마르크스주의적 선언을 삽입했다면, 함께 작업한 베른슈타인은 스스로 “가장 중요한 의미”를 부여했던 “한걸음 한걸음씩 더 강인해지는 … 작은 활동”을 위한 개량주의 요구들을 삽입했다.

 

카우츠키는 베른슈타인의 개량주의에 제대로 맞설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 스스로 사회민주당이 “혁명정당이지만 혁명을 만들어내는 정당은 아니”라는 야릇한 주장 뒤에 숨어서 수동성의 정치를 퍼뜨리는 당사자였기 때문이다. 카우츠키는 자본주의의 붕괴를 단지 시간문제라고 여기는 결정론적 시각에 머물렀다.

 

따라서 그가 보기에 사회민주당이 할 일은 언젠가 다가올 그날을 위해 꾸준하게 당원을 늘리고, 성공하지 못할 무모한 투쟁으로 조직을 위험에 빠지지 않게 하며, 스스로 무너질 자본가계급으로부터 권력을 인수할 준비를 차근차근 하는 것이었다. 이런 관조적인 태도가 번성할수록 사회민주당은 암암리에 체제의 일부로 전락해갔다.

 

 

벽에 부딪힌 개량주의

 

트로츠키는 독일사회민주당 정치가 실천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간명하게 진단했다. “진보적 자본주의 시기에 활동했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강령을 두 부분으로 나누었다. 즉,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현 가능한 개량 조치들의 획득에 제한을 둔 최소강령과, 시기가 정해지지 않은 미래에 자본주의를 사회주의로 대체하는 약속을 담은 최대강령으로 나누었다. 이 두 강령 사이에는 그 격차를 극복할 가교가 없었다. 사실 사회민주주의자들에게는 이 가교가 필요 없었다. 사회주의는 휴일집회의 연설에서나 필요한 공문구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이행강령>)

 

사회민주당은 사회주의 선전과 개량주의 실천의 모순적인 혼합물이 됐다. 사회주의라는 목표는 그저 당원들의 신념을 어루만져주기 위해 때때로 이뤄지는 장엄한 연설이나 교육의 소재로 남아 있으면 됐고, 현실에선 조직을 보존하며 당원을 꾸준히 늘려나갈 유용한 수단으로서 베른슈타인의 가르침처럼 ‘한걸음씩’ 나아가는 일상적이고 점진적인 노동조합 활동과 의원단 활동에 최상의 의미가 부여됐다.

 

계급투쟁이 아직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평화’가 유지되는 동안에는 이런 모순적인 정치로도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평화로운 시기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로 국면이 바뀌는 전환기에 이르자, 즉 현실의 치열한 계급투쟁에서 실제로 자신을 입증해야 하는 국면이 다가오자, 독일사회민주당 식의 관조적인 정치는 급격하게 허물어지며 자기 한계를 드러냈다. 공문구로라도 내걸었던 혁명적 최대강령 즉 사회주의 혁명을 사실상 폐기하고, 개량주의를 전면화해갔다. ‘한걸음씩’은 혁명을 향한 전진의 한걸음이 아니라 개량주의를 향한 퇴보의 한걸음이었음이 폭로됐다.

 

 

사회민주당 정치에 안주하지 않았던 러시아혁명가들

 

볼셰비키가 처음부터 독일사회민주당 정치와 결별하고 넘어서려 했던 건 아니다. 레닌은 카우츠키와 사회민주당에 대한 신뢰와 존경심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신뢰와 존경심과는 달리, 러시아혁명가들은 실천에서는 사회민주당 유형의 수동적, 관조적, 결정론적 태도에 손발을 묶지 않았다.

 

볼셰비키의 기원인 ‘이스크라’ 경향은 러시아에서 베른슈타인의 제자노릇을 한 ‘경제주의’ 경향에 맞서면서 탄생했다. 경제주의자들은 운동의 객관적인 조건, 물질적 환경의 포로가 됐다. 반대로 그들은 조건과 환경을 능동적으로 넘어서려는 이스크라 경향을 관념에 빠진 주관주의라고 비난했다.

 

레닌은 경제주의적 사고에 필사적으로 맞섰다. 노동자들이 당장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는 투쟁에만 머무르는 경제주의가 노동자운동을 지배하면 선진노동자들이 사회적 전위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훈련하고 힘을 키울 기회를 박탈당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전위의 정치

 

레닌은 대중추수주의를 배격하며 노동자계급 선진층이 운동을 이끌어갈 수 있도록 방향과 계획을 제시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경제파업을 절대시하는 분위기가 팽배할 때 정치투쟁 전망을 제기하며 치열하게 논쟁했고, 제국주의 전쟁과 함께 애국주의가 번져나갈 때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 구호를 제시하며 국제주의자들의 단결을 포기하지 않았다.

 

혁명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917년 2월 이후 혁명가들이 부르주아 민주주의 전망에 발목을 잡힌 채 머뭇거릴 때, 파국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혁명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상황에 압도된 채 불필요한 후퇴와 관조적인 태도를 정당화하는 대신, 노동자당이 가장 능동적으로 계급투쟁을 선도하는 적극적인 행위자가 될 수 있도록 이끄는 데 전력을 다했다. 거기에서 볼셰비키는 생명력을 얻었다.

 

운동에 대한 이런 태도는 독일사회민주당의 분위기와 매우 달랐다. 단지 다른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1차 세계대전과 그것이 야기한 경제적, 정치적 위기라는 동일한 상황에서, 한쪽은 노동자들과 함께 계급투쟁의 파도를 타고 넘으며 혁명을 향해 나아가는 돌격부대가 됐다. 한쪽은 계급투쟁의 파도에 허우적거리다 자본주의 호에 기어오른 뒤, 자본주의를 수호하는 2중대로 전락했다.

 

 

‘점진주의의 격언’

 

국제 노동자운동이 퇴행하던 시기에 새로운 혁명세력을 건설하는 데 주력했던 트로츠키는 독일사회민주당 식의 개량주의와 볼셰비키 같은 혁명적 노동자당의 차이를 잊지 않았다.

 

“완만하고 유기적인 발전의 시기에 주체적 요인의 역할은 상당히 부차적일 수 있다. 이때 다양한 점진주의의 격언, 예컨대 ‘느리지만 확실하게’나 ‘쓸데없는 저항을 해서 다쳐서는 안 된다’ 등등이 등장한다. 이것은 ‘단계를 뛰어넘는 것’이 죽기보다 싫은 유기적인 시대의 모든 전술적 지혜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객관적인 전제조건이 무르익자마자, 역사적 과정 전체의 열쇠는 주체적 요인, 즉 당의 손으로 넘어간다.” “기회주의는 항상 주체적 요인의 역할, 즉 당과 혁명적 지도부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기회주의 경향은 오직 ‘대중’에게만 의지하는 방침을 취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최고의’ 혁명적 지도력이라는 문제를 철저히 경멸했다. 총체적으로 잘못된 이런 태도는 제국주의 시대에 단연코 파멸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레닌 이후의 제3인터내셔널>)

 

‘완만하고 유기적인 발전의 시기’에 사회민주당은 점진주의의 격언에 따라 개량정당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사회위기가 다가오자 그동안 일궈낸 거대한 성장과 명성은 결코 사회주의적인 것이 아니었고, 그 뿌리에서는 자본주의에 투항하는 기회주의, 개량주의가 성장해왔음이 드러났다. 볼셰비키는 사회민주당에 비해 역사도 짧고 힘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어떤 세력보다 예리하게 정세를 추적했고, 능동적으로 기회를 붙잡으려 했으며, 유연하게 행동하면서도 단단한 혁명적 원칙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거기에서 노동자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힘이 자라났다.

 

 

우리 시대

 

우리가 맞닥뜨린 시대는 평화로운 점진적 발전의 시대가 아니다. 문재인 정부가 이 시대를 개량의 시대로 포장하기 위해 아무리 애써도, 자본주의의 모순이 스스로 자기 발밑을 허물어뜨리고 있다. 반복되는 위기와 맞물리는 역동적인 노동자투쟁의 가능성이 수시로 모습을 드러낸다.

 

이것은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가 다가오고 있음을 뜻한다. 그런 시기에는 과거와는 다른 감각과 전망으로 무장해야 한다. 그렇게 혁신할 수 있는 세력은 다가오는 기회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못한 세력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도태될 것이다.

 

물론 현실의 압력은 만만치 않다. 노동자운동이 강한 퇴보의 압력에 짓눌리고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해체가 지속되면서 독일사회민주당의 정신으로 운동이 후퇴했다. 퇴보와 해체의 압력에 밀린 혁명적 사회주의운동은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계급의식을 성장시키고 선진적인 조직으로 합류할 수 있는 응집력을 제공하는 데 거듭 실패했다. 이런 운동의 한계를 돌파하지 않은 채 러시아혁명의 역사적 의의를 되살리는 건 불가능하다.

 

볼셰비키가 모든 점에서 완벽한 혁명적 노동자당이었던 건 결코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그들이 도달했던 지점까지 나아가지도 못한 채, 적어도 그런 지향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생생한 책임감과 사명감마저 퇴색해갈 때, 러시아혁명을 오늘날 우리의 이야기로 살려내고 그 너머로 나아가는 건 더더욱 요원해질 것이다.

 

우리가 러시아혁명에서 붙잡아야 할 실마리를 이렇게 요약해 보자. 실천적으로 독일사회민주당 식의 점진주의와 수동주의를 뚫고 노동자투쟁과 함께 능동적으로 단호하게 전진하는 것, 그 모든 과정에서 충만한 투쟁정신으로 대중적 선진부위의 힘과 의지에 단호하게 기반하는 것, 바로 볼셰비키의 정신으로 무장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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