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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존중사회는 어떻게 가능한가를 보여주는 창
– 서울교통공사 무기계약직 정규직화 합의

 노동자세상 172호 (2018년 1월 17일)

 

 

11면 서울교통공사 정규직전환_서울신문.jpg

노동존중사회는 문재인과 박원순이 선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사진_서울신문)

 

 


서울지하철 1~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 노사가 3월 1일부로 무기계약직 1,288명 전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합의했다. 박원순 시장은 자신의 블로그에서 “앞으로 서울시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불평등이 시정되고, 노동존중사회가 우리 일상의 풍경이자 미래가 될 수 있도록 힘껏 노력하겠습니다.”고 이번 전환의 의미를 부여했다.

 

박원순 시장이 제기하는 ‘노동존중사회’는 서울시의 모토이기도 하다. 그의 의도의 진정성은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어쩌면 노동존중사회로부터 우리를 더 멀리 떼어놓는 것일 수도 있다. ‘노동존중사회’란 화두 속에서 이번 합의를 어떻게 봐야 할까?
 


성과, 그러나 그 이면

이번 정규직 전환은 무기계약직에 한정된 것이다. 많은 수의 노동자들이 여전히 비정규직의 굴레로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환방식에서도 단계별 전환 및 군 경력이나 기존 회사경력 불인정 등 여러 문제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이번 합의의 핵심적 한계는 아니다. 더 사활적으로 중요한 평가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단결투쟁력과 자주성을 바탕으로 쟁취한 것인지, 최소한 그것을 강화하는 가운데 획득한 것인지, 바로 이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이번 정규직 전환을 끌어낸 데는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의 간절한 염원과 투쟁이 밑거름이 되었다. 업무직협의체의 ‘완전한 정규직화’를 내건 농성투쟁이 그 사례다. 또한 정규직 전환의 대의에 공감한 서울교통공사노조 정규직 동지들의 분투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이것은 이후의 전진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이 이번 서울교통공사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작동했던 것은 아니다. 정규직과 무기계약직 사이에서 심각한 분열 또한 발생했다. 특히 노동자 자신의 단결투쟁력에 의지하는 대신, 서울시와 정부에 끌려다니면서 노동자계급의 단결이 무너져내리는 일이 발생했다. 


서울시와 정부는 ‘정규직 전환에 따른 예산’에 대해 미적거리는 태도로 일관했다. 이것은 무기계약직 정규직 전환의 비용이 기존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떠넘겨져 정규직의 처지 악화의 수단으로 둔갑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심어주었다. 이것은 정규직 노동자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 사이에 분열의 씨앗을 심었고, 결국 '공정사회를 염원하는 서울교통공사 청년모임'처럼 무기계약직 정규직 전환에 반대하는 흐름까지 잉태했다. 


서울시와 정부의 장난질과 이것이 불러온 노노갈등은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에게 절망과 분노를 던져주었다. 11월 16일 차량검수원으로 일하던 무기계약직 동지가 자살하는 일이 발생했다. 급기야 무기계약직으로 구성된 서울교통공사 업무직협의체는 12월 7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정규직전환을 앞둔 무기계약직에 대한 정규직들의 원색적인 비난과 인신공격을 막아달라”며 진정서를 내는 일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다음의 발걸음

이러한 노동자 분열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의 결과라도 강제한 것은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의 요구와 연대에 나선 정규직 노동자들의 헌신 덕분인 것은 분명하다. 서울시와 정부에 예산 배정과 정규직 전환 약속을 실행하라는 줄기찬 노력과 압력이 없었다면, 노노갈등을 이 정도라도 줄여나가는 것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노동자계급의 단결은 오직 공동의 적인 자본과 정부에 맞서 공동의 요구를 내건 투쟁 속에서만 획득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다. 


다만 그 성과는 과장해서는 안 되고, 드러난 약점을 극복하려는 처절한 후속 노력이 필요하다. 그 핵심은 무엇인가? 정규직 전환에 반대했던, 일부 정규직 정서의 뿌리는 여전히 땅 속에 단단히 박혀 있다. 


“공채 정규직도 더 이상 철밥통이 아니다. 지하철의 만연한 적자 상황에서 회사는 자동화를 도입하고 역무인원을 줄이려는 시도를 한다. 이런 흐름이 있는 와중에 무기계약직의 정규직 전환까지 해서 인원이 늘어나면 기존 정규직에 대한 구조조정 압박이 들어올 수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3선 실패하게 되면 소위 말해 우리는 팽 당하는 것 아닌가 이런 우려도 있고.”(레디앙, 정규직 전환 둘러싼 청년노동자들의 두 가지 생각의 대화) 


정규직 전환에 반대했던 젊은 조합원의 얘기다. 자본의 거센 공격 앞에서 미래가 불안한 젊은 정규직 노동자들의 상태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단결투쟁의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결국 예견되는 미래의 구조조정을 비껴가기 위해서는 무기계약직 정규직화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이걸 깨야 한다. 노동자의 자주적 단결투쟁력이라는 심장이 작동하지 않는 한, 정부와 자본으로부터 내려지는 시혜는 오래갈 수도 없고, 노동자간 분열의 씨앗을 잉태할 뿐이다. 단결투쟁의 대안이 없는 노동자들은 결국 자본의 공세 앞에서 ‘노동자 사이의 폭탄돌리기’로 빠져들게 된다. 이게 박원순 시장의 ‘노동존중사회’가 낳는 결과물이다. 하지만 그 책임을 모두 박원순 시장에게만 돌릴 수는 없다. 어차피 ‘노동존중사회’는 문재인과 박원순이 선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상균 민주노총 전 위원장의 옥중서신은 그에 대한 명확한 답을 보여준다. 이 길 말고 서울교통공사 노동자들에게 다른 희망은 없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말이다. 

“사면 관련 뉴스는 보았다. 기대도 하지 않았었고 결정에 대해 조금도 비판하고 싶지 않다. 문재인 정부를 탓할 필요도 없다. 촛불정부라 자임하지만 정권의 정체성은 노동자의 기대와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 그 또한 진전일 것이다. 우리는 나약한 강아지처럼 멍멍거릴 시간이 없다. 노동존중 세상을 노동자의 단결된 힘으로 이루지 못한다면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지 말자”

 


그리고 여기 또 한 명의 무명의 노동자가 있다. 이 노동자는 박원순 시장의 블로그 글에 이렇게 댓글을 달았다. 

박시장께선 마지막 문장에 [노동존중사회가 우리일상의 풍경이자 미래가 될 수 있도록 힘껏 노력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시장님의 말을 신뢰 할 수 없습니다. 서울시 산하 사업소의 직고용 정책은 3,6,8개월의 비정규직을 양산 하고 있으며 공사를 통한 정규직 전환은 노동자들에게 고강도 저임금 노동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시장님께서 말하는 [노동존중 사회]입니까? 노사간에 대화를 하자던 공무원은 형식적으로 이야기를 듣기만 했었고 이에 항의하는 합법적인 집회를 준비하던 60대 여성 노동자 2명을 폭력으로 짓밟았습니다. 


당신께서 말씀하신 [노동존중]은 어디에 있는지 다시 한 번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공관 앞에서 새벽부터 1인시위를 하던 우리에게 "누구시죠? 어디서 오신 분이세요?"라고 물으셨지요. 당시에 답변을 하지 못해 글로나마 답변 드리겠습니다.


나는 첫 직장에서 3개월만에 쓰레기처럼 버려진 20살 청년 입니다.
나는 아침마다 헤어지기 싫다는 아이와 생이별 해야만 하는 어머니 입니다.
나는 어깨에 가족의 생계가 걸린 아버지이고, 아픈 몸을 이끌고 일을 해야만 하는 노인입니다.


우리는 시장님의 허울뿐인 [노동존중 정책]에 짓밟힌 노동자입니다.
우리도 당신과 똑같이 살아갈 권리가 있는 사람입니다.

                                                                                                                                                                                      최영익
노동자운동 연구공동체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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