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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

굴욕적인 잠정합의 거부하고 새로운 투쟁의 힘 조직하자

 

노동자세상 171호 (2018년 1월 3일)

 

11면 현중 잠정합의_현중지부.jpg

아무리 뜯어봐도 이번 잠정합의는 ‘정면돌파’와는 거리가 멀다. 2017년 10월 현중지부 임원 선거 당시 모습. (사진_현대중공업지부)

 

 

 

지난 12월 29일 현대중공업지부가 2년 치 단협을 잠정합의했다. 이 기사가 나올 때쯤이면 나머지 분할사인 현대로보틱스, 현대건설장비, 현대일렉트릭의 잠정합의도 나올 것이다. 정확한 내용은 지금 알 수 없으나 현중지부의 잠정합의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사측제시안을 거의 그대로 받아들인 합의

 

어떠한 핑계를 대더라도 이번 잠정합의는 사측의 애초 제시안을 거의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임금동결은 중요하게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기존 800%의 상여금 중 300% 월 분할, 유연근무제(탄력, 선택, 재량) 도입, 교육과 휴업 동의 등 지난 2년 동안 현중지부에서 막겠다고 했던 대부분을 받아들였다. 또한 2017년 성과금은 97% 지급으로 합의했다.

 

나머지 분할사는 340%에서 450%로 합의될 것이라고 한다. 상여금 월 분할은 그동안 현중지부에서 결사적으로 막으려 했던 사안이다. 사측은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나머지도 교섭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무력화하기 위해 무노조 중소사업장 자본가들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상여금 기본급화가 이렇게 민주노총 소속 대사업장에서 뚫려버렸다.

 

성과금의 각 회사별 차등지급은 아직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았지만 분할사의 잠정합의 내용이 나오면 태풍의 핵이 될 것이다. 현중지부의 핵심 투쟁동력은 조선·해양에서 나왔다. 가장 전투적이며 헌신적인 투쟁을 해왔던 조합원들이 집중되어 있으며 전체 조합원의 65%가 조선·해양소속이다. 그런데 이들에게 또 다시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 그것도 제대로 한번 싸워보지도 못하고.

 

 

합리적 조합주의가 보여준 결과

 

현중지부의 이러한 굴욕적 잠정합의는 어느 정도 예상 가능했다. 2013년 말 12년간의 어용시절을 청산하고 민주노조가 재건되었다. 현장은 활기와 자신감으로 뜨겁게 올라왔다. 사측은 빅배스(big bath. 부실자산을 한 회계연도에 모두 반영해 위험요인을 일시에 드러내는 회계기법)로 손실을 부풀리며 조선산업의 위기를 기회로 구조조정을 예고했다. 하지만 현중지부는 뜨겁게 올라오고 있던 현장의 힘을 외면했고, 희망퇴직, 분사, 임금삭감 등 구조조정 공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며 사측에 질질 끌려다녔다.

 

그동안 현중지부 지도부는 이른바 합리적 조합주의를 추구했다. 합법적 테두리에서 적당한 투쟁과 교섭으로도 충분히 사측의 양보를 끌어낼 수 있다는 기조가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생산타격을 주지 못하는 반복되는 집회와 파업은 조합원들을 지치게했다. 질긴 놈이 이긴다는 상투적 기조는 대안 없는 장기전으로 귀결됐다.

 

이제는 누구나 인정하고 있지만 2016년 상반기 설비지원부문 분사로 촉발된 대중적 분노와 투쟁동력은 사측을 압박하기에 충분했다. 이 결정적 기회를 “아직은 전면적 투쟁 시기가 아니”라며 놓친 게 합리적 조합주의가 보여준 대표적인 실책 중 하나다.

 

 

노동자의 능동성을 갉아먹는 관료주의

 

합법적 투쟁전술과 교섭중심주의는 필연적으로 관료주의와 같이 갈 수밖에 없다. 합법적 투쟁전술과 교섭중심주의를 유지하려면 조합원들의 능동성이 자신들의 통제력을 벗어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며 조합원들이 자신들의 자리와 권력을 위협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2014년 민주노조의 재건을 기치로 민주파가 집행부를 장악했을 때 대의원 체계에선 아직 어용이 판을 치고 있었다. 이때 조합원의 힘으로 어용을 제압했다. 바로 현장실천단의 활약이다. 현장 곳곳에서 ‘민주노조가 이런 것이구나’라는 기대에 부풀어 새롭게 투쟁에 합류한 젊은 조합원들과 십수 년을 아무것도 못하며 죽어지냈던 고참 활동가들이 현장실천단을 중심으로 집결했다. 현장실천단의 활동은 가히 폭발적이었으며 순식간에 현장을 장악했다. 어용대의원들을 통제할 수 있는 결정적 힘이 되었다.

 

하지만 현장실천단이 어용들에게만 힘을 발휘한 것이 아니었다. 현장실천단은 지도부의 투쟁회피에 격렬히 항의하는 살아있는 조합원의 대중조직이었다. 현중지도부는 가만두지 않았다. 현장실천단은 해체되었고 현장실천단 활동으로 양성된 활동가들을 대거 대소위원으로 편입시켜 지도부의 통제 아래 둔다. 시간이 지나면서 지도부는 비판하는 노동자들을 아예 “어용”으로 취급하며 비판 자체를 허용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지회집행부의 임면권을 지부장이 갖겠다는 황당한 발상으로 억지를 부리다 4사1노조 규정개정도 늦어지고 지회구성 건은 통과시키지도 못해 지금껏 지회조차 구성하지 못했을까.

 

 

노동자의 투쟁력에 대한 불신

 

현중지부 지도부는 노동자의 투쟁력을 믿지 않는다. 노동조합의 힘이 약화된 이유에 대해 그들이 가장 자주하는 변명은 ‘조합원의 참여가 적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좀 더 많은 조합원들이 집회와 파업에 참여해야만 협상력이 커지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관료적 지도부가 흔히 하는 변명으로 적극적 투쟁전술을 피하는 아주 좋은 구실이다.

 

지도부는 지도부를 믿어달라고 외치지만 정작 조합원들은 무엇이 논의되고 있는지, 그래서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당연히 조합원들의 관심과 사기는 떨어진다. 그런데도 집행부는 이리저리 끌려 다니면서 지쳐가는 조합원들이 집회와 파업대오에서 이탈하는 현상이 자신들의 무능 때문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지도부의 지침으로 분사와 교육을 거부한 조합원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믿었던 지도부로부터 “어쩔 수 없으니 교육을 받으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금속노조에 가입하면 분할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말에 압도적으로 산별전환을 통과시켜줬지만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밤새 주주총회장을 지켰던 조합원들은 대규모 징계를 받아야 했다.

하청노동자들이 고공농성을 진행하고 있었지만 함께하지 않았고 자신들은 현장과 멀리 떨어진 시의회 옥상을 거점으로 잡고 농성을 진행해서 조합원들만 지치게 만들었다. 그리고 강력한 투쟁을 조직하지 못했기 때문에 명분도 없이 내려와야만 했다.

 

 

투쟁회피와 교섭중심주의는 절대 대안이 될 수 없다

 

현중노조 지도부는 촛불의 힘으로 등장한 문재인 정부의 도움을 받으려 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 성과가 없었다. 현장의 힘, 투쟁의 힘 없이 정부와 사측을 압박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조선산업 자본가 살리기를 위해 구조조정을 중단할 생각이 없는 문재인 정부를 활용하자는 생각 자체가 환상일 뿐이다.

 

전면 투쟁을 회피하고 교섭에 매달린 결과가 바로 이번 잠정합의안이다. 백기투항이나 다름없이 모든 것을 내주고 말았다. 지부장은 과거의 묵은 짐을 털어버리고 다시 투쟁을 만들어보겠다고 다짐하지만 힘들더라도 투쟁을 조직하는 대신 교섭에 매달리는 지도부에게 도대체 어떤 신뢰를 보낼 수 있단 말인가? 백기투항한 장수가 군사들의 사기를 다시 높이겠다고 약속한들 그 약속을 믿을 군사가 얼마나 있겠는가.

 

더 이상 지도부에 의존해선 안 된다. 현중조합원들의 능동적 힘밖에는 해결방법이 없다. 현장실천단을 조직했듯 다시 아래로부터 힘을 모아야 한다. 민주집행부라는 이름으로 투쟁회피와 무능을 덮고 있는 배신적 지도부는 반드시 심판받아야 한다. 굴욕적인 잠정합의를 거부하고 노동자 다 죽이는 구조조정 저지, 원·하청 노동자 모두의 생존권 쟁취를 위해 현장의 힘을 조직하자.

 

윤용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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