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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무급제 칼 빼든 문재인 정부

노건투 2018.02.01 12:28 조회 수 : 1978

 직무급제 칼 빼든 문재인 정부

 

노동자세상 173호(2018년 01월 31일) 

 


 

최근 정부는 공공부문 청소, 경비, 시설관리, 조리, 사무보조 등 5개 직종 ‘표준임금체계(직무급제) 모델 안’을 발표했다. 아직 최종안은 아니라고 하지만, 이를 보면 정부의 계획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선언은 사실상 정규직 제로 선언이 되고 있다.

온전한 정규직화가 아니라 무기계약직 전환이거나 자회사 설립이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직무급제를 도입해 저임금과 차별을 완전 고착화하려 한다.

 


 

제목 없음.jpg

청사관리본부 직무별 표준 임금표(기본급) 안 (직종별 직무등급을 1~2단계 추가해 운영할 수 있다. 청사관리본부는 7급 직무까지 설계)

 

 

 

저임금과 차별의 고착화

 

정부가 내놓은 ‘표준임금체계 모델 안’은 각 기관별 5개 전환 직종을 대상으로 ‘표준직무’를 분류하고, 각 직무 간 직무가치를 비교해 ‘직무등급체계’를 만들었다. 직무등급 숙련 정도에 따라 ‘승급단계’를 두고, 각 직무등급별 임금수준을 결정한다. 예컨대 청소, 경비, 조리직은 각 2개 직무로, 시설관리, 사무보조직은 각 3개 직무로 분류했다. 청소는 일반청소와 전문청소로, 경비는 시설경비와 전문경비로, 조리는 조리원과 조리사로 분류했다. (아래 표 참조)

 

 

3면 직무급제(홈피용).JPG

 

 

각 직무등급 노동자들은 숙련도에 따라 해당 직무등급 내 상위등급으로 올라가도록 했는데, 최대 6단계를 넘지 않도록 설계했다. 청소직종 가운데 비교적 단순반복적인 육체노동을 하는 일반청소는 직무등급1, 전문청소는 직무등급2에 해당한다. 직종에 관계없이 비교적 단순반복적인 육체노동직무의 경우 ‘직무등급1’에 해당한다고 한다.

 

승급은 근속년수에 따라 매년 자동승급되는 건 아니다. 각 직무등급 안에서는 ‘숙련형성 정도’ 평가를 통해 2~4년마다 한 번씩 승급할 수 있다.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어야 하며, 직무에 따라 시험 등 별도 승급절차를 둘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 6단계까지 가는 데 걸리는 기간은 15년이다.

 

 

15년 일해도 기본급 200만 원 넘지 않아

 

오른쪽 위 표에서 볼 수 있듯이 정부는 올해 최저임금(월 157만3,770원)을 기준임금으로 설정한 뒤 상하한 직무등급을 적용했다. 그런데 청소, 경비(환경미화) 직무등급은 최저등급인 1~2등급을 넘지 않는다. 15년 이상 일해도 기본급이 200만 원을 넘지 않는다. 호봉제를 적용받는 기존 정규직과 전환된 무기계약직 사이의 임금 격차는 심화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성과연봉제를 폐기하고 직무급제를 밀어붙이는 이유는 임금상승을 억누르기 위해서다. 정부는 “호봉제 중심의 기존 임금체계 편입 시 급격한 재정부담도 우려”된다고 스스로 밝혔다. 사실 그동안 자본가들은 기업부담을 이유로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자동으로 오르는 호봉제를 반대했다. 직무나 성과에 연동한 임금체계로 바꿔야 한다고 끊임없이 주장했다. 박근혜 정부 때의 임금체계개편 매뉴얼에도 성과연봉제만이 아니라 임금피크제, 직무/직능급제가 들어있었다.

 

문재인 정부는 성과연봉제를 폐지하는 대신 공공부문에 직무급제를 선제적으로 도입하고, 이것을 점차 민간으로 확산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자본가들의 환영은 당연하다.

 

 

또 하나의 신분제

 

넓게 보면 이미 이 사회에는 직무급제가 널리 퍼져 있다.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들도 하나의 최저임금직무급으로 묶여 있다고 볼 수 있다. 비정규직 자체를 별도직군처럼 운영하는 곳이 어디 한두 군데인가? 그래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과 똑같은 일을 하고도 낮은 임금을 받고 더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일하고 있지 않은가?

 

문재인 정부는 “전환 직종의 임금체계가 호봉제가 다수이고, 임금수준도 큰 격차를 보여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의 취지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임금의 공정성을 제고하고, 정책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직무급제를 추진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살인적인 저임금을 강요하고 차별을 고착화하는 것이 어떻게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의 취지를 반영하는 것인가? 노동자 전체의 임금 상향평준화라는 방향 아래 동일가치노동의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수년, 아니 수십 년의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데, 노동자들의 의견은 듣지도 않고 정부가 위로부터 일방적이고 자의적으로 기준을 정하는 것이 어떻게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의 실현인가? 어떤 기준으로 단순육체노동인지 아닌지를 정하며, 누구 마음대로 단순육체노동을 낮은 등급으로 결정하는가? 누구 마음대로 이렇게 차별을 합리화하겠다는 것인가? 이게 공정한 것인가? 왜 교수의 임금과 학교청소 노동자들의 임금은 하늘과 땅 차이가 나야 하는가?

 

직무급제는 ‘공정성’이라는 허울 아래 노동자들에게 더 치열한 경쟁과 더 심각한 분열을 강요한다. 직무등급에 따라 임금이 다르기 때문에, 그리고 자본가의 입맛에 따른 숙련평가를 통과해야 승급할 수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더 피 말리는 경쟁에 내몰린다. 자본은 직무등급, 승급 등을 미끼로 현장을 더 악랄하게 통제하고 노동자들을 더 개별화시킬 수 있다. 직무급제는 직무에 따른 또 하나의 ‘신분제’로 굳어질 가능성이 아주 높다. 또한 자본가들은 능력, 성과 등을 숙련평가의 핵심항목으로 잡으면서 성과주의 요소를 늘릴 것이기 때문에, 이는 변형된 성과연봉제일 뿐이다.

 

기업규모와 고용형태에 따른 임금차이를 직무에 따른 차이로 바꾼다고 해서 노동자 사이의 임금격차와 차별이 사라지진 않는다. 그나마 호봉제는 안정적인 임금인상의 발판 역할을 한다. 호봉제 자체에 어떤 큰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기업규모, 고용형태, 성별 등에 따른 차별을 극복하기 위한 노동자투쟁의 부재, 노동자 전체가 가져가는 몫을 늘리지 못한 한계, 상대적으로 저임금을 받는 노동자의 임금을 대폭 올리면서 노동자 전체의 임금을 상향평준화시키지 못한 한계 등이 노동자의 삶을 망가뜨려왔다.

 

 

각개격파당할 것인가? 힘을 모아 함께 싸울 것인가?

 

박근혜 정부 때 성과연봉제 추진은 노동자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혔다. 문재인 정부는 노사정대표자회의 등을 열어 조직노동자운동을 타협의 우리에 가둬 놓고 직무급제를 현장에 하나씩 확대하려 한다. 노동자의 저항을 미리 차단하기 위해서다.

 

타협의 우리를 박차고 나와 힘을 모아야 한다. 단위사업장을 뛰어넘는 전선을 만들어내야 한다. 물론 하루아침에 가능한 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살인적인 저임금과 차별의 고착화에 찬성할 노동자가 얼마나 많겠는가? 당장 현장 곳곳에서 불만은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직무급제가 미칠 영향을 현장에 널리 알리고, 아래로부터 터져 나오는 투쟁의 힘을 하나로 모아가자.

 

이용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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