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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고]

해고자의 이름으로 산다는 것

 

노동자세상 173호(2018년 01월 31일) 

 

5면 공무원.jpg

울산지역 공무원노조 조합원들. 앞 줄 왼쪽이 최윤영 동지.

 

 

 

“해직 선배님들을 존경합니다. 하지만 이제 후배들을 위해 조합원 자격만 포기해 주십시오. 생계비는 어쨌든 책임지겠습니다.”

어느 술자리에서 후배에게 들은 말이다. 해직자의 조합원 자격만 박탈되면 공무원노조가 합법화될 수 있다는 정부의 논리에, 현직에 있는 후배가 현장이 어렵다며 선배 해직자에게 생계비는 책임질 터이니 해직자들의 통 큰 양보를 요청한 것이었다. 공식적인 자리였다면 큰 사달이 날 발언이었지만 그는 나름대로 내가 자신의 심중을 받아줄 것이라 여겼던 모양이다.

 

 

거래할 문제가 아니건만

 

해직자들은 투쟁과 헌신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공무원노조와 전교조를 향한 합법화의 망령이 전국을 휩쓸면서, 노동진영 일부에게는 이들이 노동조합의 걸림돌인양 취급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합법화 이후 제대로 된 교섭을 단 한 차례도 해보지 못한 전교조의 역사를 조금만이라도 돌아보라. 그러면 합법화가 곧 현실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라는 사실을 금방 이해할 수 있다. 아쉽게도 현실은 그러하지 못하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199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운동이 개량화되던 시기, 단체교섭 과정에서 해직자의 복직을 포기하는 대신 다른 단체협약 안을 하나 더 따내는, 해직자의 복직문제가 이른바 바터제로 교환되던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그때도 해직자들은 노조로부터 생계비를 보장 받는 조건이 항상 병행됐다.

 

신자유주의를 앞세운 정부와 자본의 공세에 노동자운동이 밀려나고 사회적 합의주의가 만연하고 있는 지금, 해직자의 이름으로 살아간다는 건 더욱 힘들고 견디기 어려운 고통의 연속이다. 특히 정부와 자본을 대신해 생계비를 앞세운 노동진영 일각의 양보논리는 그것이 노동조합의 공식적인 입장이 아니라 할지라도 해직자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투쟁을 무장해제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부끄럽지 않은 노동자운동을 위해

 

우리는 광화문광장과 여의도 국회 앞 천막농성장에서 수년간 복직투쟁을 벌이고 있는 비정규노동자들과 함께 하고 있다. 그나마 생계비를 일정 보전 받는 정규직 해고자들과는 달리, 생계 자체를 위협 받으며 투쟁하는 비정규직 해고자들을 볼 때마다 송구스럽고 더 강력하게 연대하지 못하는 우리 자신이 부끄럽기 그지없다.

 

노동의 일정한 양보를 전제로 한 사회적 합의주의는 노동자계급운동의 전진을 가로막는다. 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서 현직자와 해직자를 갈라놓고, 정규직해직자와 비정규직해직자를 분리하는 이데올로기도 동시에 양산하고 있다. 자본에 맞선 총노동전선을 구축하는 것, 하나의 계급으로서 단일하게 투쟁하는 전선이 구축될 때 당당한 해직자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시대가 가능할 것이다.

 

최윤영 전국공무원노동조합 해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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