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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

영화 <1987>

1987년의 한 단면만, 그것도 약간 뒤틀리게 보여준 영화

노동자세상 171호 (2018년 1월 3일)

 

 

8면 1987.jpg

영화에서 다루지 않는 7,8,9월 노동자대투쟁을 빼놓고 1987년을 말할 수는 없다. (사진_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영화에서 연희 역을 맡은 김태리는 “이번에 (영화) 작업하면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됐음을 알게 됐어요”라고 했다. 87학번 어머니와 영화를 함께 본 촛불 세대 딸이 “엄마 고마워”라고 했다고 장준환 감독은 인터뷰에서 전했다.

이렇듯, 실화에 기초한 이 영화는 젊은이들이 1987년 반독재 민주항쟁의 역사를 알고, 저항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해볼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 영화엔 치명적 한계들도 있다.

 

 

‘모두가 뜨거웠던 그해’

 

공안경찰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박종철 열사를 물고문하다 죽인 뒤, 부검도 하지 않고 화장하려 하고,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며 새빨간 거짓말을 늘어놓는다. 그리고 고문치사를 더 이상 감출 수 없자 경찰관 2명이 죽인 것이라며 사건을 축소 조작한다.

 

오래 묻힐 뻔했던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은 검사, 기자, 교도관, 민주화운동가, 대학생 등 여러 사람이 각자의 역할을 하며 널리 폭로돼, 전두환 정권을 끝장내는 6월항쟁의 기폭제가 됐다. 영화는 ‘모두가 뜨거웠던 그해’, ‘모두가 주인공이었던 그때’를 생생하면서도 박진감 넘치게 보여준다.

 

그런데 우리가 단지 자본주의는 그대로 둔 채 군사독재 자본가정부를 민간인 자본가정부로 바꾸길 원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길 원한다면 ‘모두의 저항’을 노동자계급의 눈으로 비판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누굴 위한 직업윤리인가

 

<1987> 영화의 각본을 쓴 김경찬은 인터뷰에서 “이 영화를 통해서 보여주고 싶은 궁극적인 것은 직업윤리(다) … 영화 속 검사나 의사 같은 사람들은 권력의 압력에도 자기 직업윤리를 지킨 사람들”이라고 했다.

 

영화 속 최환 공안부 검사(하정우)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서 권력의 압력에 굴하지 않은 건 괜찮은 일이지만, 검사의 직업윤리란 노동자들이 이미 숱하게 겪어서 알고 있듯 자본가들의 신성한 소유권을 충실히 지키는 것이다.

 

보도지침을 깨고 박종철 사망기사를 크게 보도했던 동아일보는 6월항쟁 직후 “노사분규 급증 … 생산활동 위축”이란 제목으로 7·8·9 노동자대투쟁을 비난하는 기사를 크게 보도했다. 동아일보를 비롯한 자본가언론의 ‘직업윤리’란, 반독재 민주화운동은 마지못해 허용하더라도 노동자투쟁은 인정하지 않는, 기껏해야 ‘개혁파’ 지배계급의 윤리일 뿐이었다.

 

이 영화는 노동자계급의 계급투쟁 윤리 대신 추상적인 직업윤리, 즉 얼핏 보면 건전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착취질서’를 만들려고 하는 지배계급의 윤리에 기초해 있다. 구미유학단 간첩단 사건의 피해자인 강용주 씨를 고문한 교도관 안유(최광일)를 미화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민주항쟁에 머물 건가 노동자투쟁으로 나아갈 건가

 

1987년을 아우르는 제목과는 달리, 이 영화는 6월항쟁까지만 다룰 뿐 같은 해 7·8·9월 노동자대투쟁을 전혀 다루지 않는다. 마지막 자막에서조차 한 마디 언급도 없다. 6월항쟁의 진정한 역사적 의의는 7·8·9월 노동자대투쟁을 통해 노동자계급이 역사의 무대에 성큼 뛰어오를 수 있도록 정치적 공간을 활짝 열어주었다는 것인데 말이다.

 

6월항쟁의 결과로 전두환 군부독재 정권이 노태우 정권이란 과도기를 거쳐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민간정부로, 그리고 지금의 문재인 정부로까지 바뀌었지만, 대통령의 얼굴이 군인인가 민간인인가 자체는 노동자계급에게 본질적으로 전혀 중요하지 않다. 대통령이 군인이든 민간인이든, 이 사회는 자본가계급이 독재를 펼치고 있는 사회이며, 노동자의 삶은 노동자가 단결해서 투쟁하는 만큼만 향상된다.

 

5개월 동안의 뜨거운 촛불항쟁으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지만, 노동자의 현실은 달라진 게 없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는 ‘진짜 정규직화 제로’를 감추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물고문, 전기고문을 통한 살인은 역사책 속으로 사라졌지만, 조선산업이나 한국지엠에서처럼 해고살인은 수시로 노동자의 가족을 덮치고 있다.

 

<1987> 같은 상업영화는 군사독재를 끝장낸 1987년 민주항쟁(그리고 그 연장선에 있는 2016년 겨울 촛불항쟁)을 개혁파 지배계급의 시각에서 찬미하는 데 그친다. 하지만 노동자들과 젊은이들은 자본가독재를 끝장내고 노동자가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 때까지 투쟁을 멈출 수 없다.

 

박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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