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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의 탈을 쓴 늑대- 노사정 대화기구

 

최영익 노동자운동 연구공동체 뿌리

 

 노동자세상 172호 (2018년 1월 17일)

 

3면 민주노총 새집행부.jpg

‘불신의 고유명사’였던 노사정위는 ‘사회적 대화’라는 이름으로 다시 등장했다.

 

 

 


 

김명환 신임 민주노총 위원장이 노사정 대화에 적극 나서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김 위원장은 1월 5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노사정 대화가 필요하다고 한 문재인 대통령의 말에 공감하고, 민주노총 신임 위원장과 대통령이 만나는 것 자체가 (사회적 대화의) 커다란 물꼬를 틀 수 있는 기회로 본다”고 밝혔다.

‘불신의 고유명사’가 된 노사정위 참여는 어렵지만, 새로운 형식으로 노사정 대화를 재개하는 것은 적극 찬성한다는 입장이다.

 


 

 

불신할 수밖에 없었던 노사정위의 역사

 

노사정위가 ‘불신의 대명사’가 된 이유는 노사정위의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다. 1998년 1월 15일, 김대중 정부 시절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노사정위)는 발족했다. 탄생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IMF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는 것이 표면적 이유였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당시에는 아직 노조합법필증조차 받지 못했던 민주노총이, 한마디로 법적으로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던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에 초대받았던 것이다. 법적으로는 유령단체가 버젓이 대통령, 정부 고위 장관들, 경총, 전경련과 한 테이블을 꾸리고 대통령자문기구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이런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어떻게 일어났을까? 거기서 머리를 맞대고 논의했던 주제, 그리고 그 논의의 결과물이 그 답을 보여준다.

 

당시 노사정위의 핵심 의제는 ‘경제위기 극복’이었는데, 그 내용은 ‘정리해고와 근로자 파견 합법화’였다. 결국 노사정위 발족으로부터 근 한 달 만에 정리해고제와 근로자 파견제가 합의돼 통과되고 말았다. 한국 노동자계급에게 가장 공포스러운 ‘정리해고제’와 ‘비정규직 제도’가 합법화된 것이다. 그것도 민주노총이 참가한 가운데 말이다.

 

불법조직까지 포함시켜, 정부와 자본이 노사정위를 만든 이유가 숨김없이 드러난 장면이었다. 결국 1998년 2월 노사정위 합의로 민주노총은 지도부가 총사퇴하는 내홍을 앓았고, 민주노총은 대의원대회를 통해 노사정위 불참을 결정했다.

 

이처럼 탄생에서부터 온몸에 노동자계급의 피를 묻히고 태어난 노사정위의 행보는 그 뒤로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또한 민주노총이 빠진 자리에 홀로 남은 한국노총 관료들은 참가와 탈퇴를 반복하면서, 어용의 진면목을 증명했다. 2000년도에는 근로시간단축 및 주5일제 합의가 의제였다. 겉모습만 보면,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를 의제로 했던 1998년 2월과는 완전히 달라 보인다. 하지만 노사정위가 내놓은 주5일제 관련 공익위원안은 초과노동한도 확대 및 할증률 인하 등 노동조건 후퇴를 뼈대로 하고 있었다. 결국 노사정위는 주5일제 관련 합의에 실패했다. 애당초 주5일제는 노동자들에게 더 큰 양보를 강요하기 위한 ‘꿀 바른 독 사과’에 불과했던 것이다.

 

2006년 9월에는 노사정위에서 소위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방안인 ‘노사관계 로드맵’에 합의했다. 특히 필수공익사업을 확대하고, 쟁의행위 기간 중 필수공익사업의 필수유지업무 수행 의무를 부과하며, 필수공익사업장에 대체근로를 허용하는 등 쟁의행위를 무력화할 수 있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 합의는 공공부문에서 노동조합의 파업의 힘과 권리를 과거의 몇 분의 1 수준으로 찌그러뜨렸다.

 

2011년에는 노사정위 산하기구인 ‘노동시장선진화위원회’가 ‘사내하도급 근로자의 근로조건 보호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이것은 당시 활성화되고 있었던 정규직화 투쟁에 찬물을 끼얹고, 불법파견에 면죄부를 주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가령 법적으로 명시되어있던 원청의 사내하도급 노동자 지휘명령 금지를 ‘노력사항’으로 개악했다.

 

박근혜 정권 시절 노사정위는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관철하기 위한 도구였다. 해고요건 완화와 임금피크제, 임금체계 개편, 비정규직 파견 확대 및 기간연장 등이 대거 포함돼 있었다. 다행히 촛불정국으로 박근혜 정부가 탄핵되면서, 이 시도는 좌절되었다.

 

 

우물가에서 숭늉 찾기

 

노사정위의 치떨리는 역사는 무엇을 보여주는가? 노사정위는 사회적 대화와 대타협의 기구가 아니라 노동자계급을 더 강력하게 쥐어짜기 위한 자본과 정부의 일방적 도구에 불과했다.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가? 이 질문에 대답하는 것은 김명환 신임 민주노총 위원장의 노사정 대화 적극참여 계획이 왜 잘못된 것인지를 설명해준다.

 

개별 사업장에서 사측과 노동조합이 ‘대화’를 통해 풀 수 있는 게 있는가? 그리고 서로 마음만 연다면, ‘대타협’이 가능한가? 불가능하다. 자본가들이 원하는 것과 노동자들이 원하는 것이 정면으로 충돌하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자본가의 이익과 노동자의 이해는 화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령 임금인상이나 노동강도 완화는 자본의 이익, 즉 이윤을 침해한다. ‘대화’가 아닌 ‘투쟁’ 즉 힘의 논리가 지배하게 되는 이유다.

 

이것은 사회적 수준에서도 마찬가지다. 경총과 전경련이 원하는 것과 민주노총이 원하는 것은 서로 정면으로 충돌한다. 그렇다면 칼자루는 바로 정부가 쥐고 있다. 그런데 노사정위의 역사는 무엇을 보여주는가?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정부는 오직 경총과 전경련의 요구, 즉 자본가계급의 요구를 명백히 대변했다.

 

왜 정부는 그럴 수밖에 없었는가? 이 정부는 한 줌 자본가계급이 다수의 노동자계급을 착취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관리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자본가 정부이기 때문이다. 또한 민주당이든 새누리당이든 모두 자본가 정당이기 때문이다. 노사정위는 중립의 탈을 쓴 자본가 정부가 노동조합 지도자들을 덫에 묶어두고 노동자계급이 피눈물을 쏟게 하는 양보와 굴종을 강요하는 장치에 불과하다. 우물가에서 숭늉을 기대할 수는 없다.

 

 

새로운 노사정위가 대안인가?

 

노사정위의 가장 큰 폐해는 개별 사업장에서의 노사협조주의와 마찬가지로, 노동자의 유일한 무기인 단결 투쟁력을 적과의 타협에 대한 환상으로 해체한다는 것이다. 즉 노동자운동을 포획해 손과 발을 묶은 뒤 투쟁의 힘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거대한 덫인 노사정위가 가장 치명적인 위험을 드러내는 순간은 어느 때였나? 포악스런 늑대가 순한 양의 탈을 쓰고 있을 때였다. 바로 김대중 정부 시절이었다. 국민의 정부라는 포장지, 민주당 정부라는 포장지가 마치 이 자본가 정부가 노동자들에게 우호적이거나 최소한 중립적인 정부라는 환상을 불어넣었고, 민주노총은 여기에 걸려들었던 것이다. 반대로 이 ‘늑대’가 ‘양’의 탈을 벗어던졌을 때, 가령 이명박, 박근혜 정부 하에서는 민주노총만이 아니라 한국노총조차 쉽게 걸려들지 않았다. 한국노총 조합원들에게도 늑대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보여, 한국노총 관료들의 운신의 폭이 좁았기 때문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뒤를 이어 이제 또 다시 ‘양의 탈’을 쓴 늑대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바로 문재인 정부다. 노사정위란 불신의 고유명사를 다른 명사로 바꾼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양의 탈이 보다 정교해져, 더 위험해질 뿐이다. 민주노총은 또 다시 덫에 걸려들 것인가 아니면 자본가 정부와 자본가 당에 대한 환상을 거두고 단결투쟁의 한길로 진군할 것인가?

 

이미 양의 탈은 누더기가 되고 있고, 늑대의 발톱은 여기저기 적나라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대선 전 약속한 ‘전교조와 공무원노조 합법화’는 ‘대법원 판결을 지켜보겠다’로 바뀌었다. 공무원노조에 대해서는 해고자의 조합원 자격을 없앨 것을 요구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해고와 변형근로 확대, 노동강도 증대, 기본급에 상여금 산입 등 자본가들의 갖가지 무력화시도에 대해 방치하고 있다. 정규직화 약속은 기만적인 자회사 도입이나 별도 직군제 등으로 변질하며 껍데기만 남고 있다.

 

그런데 바로 이 순간, 김명환 위원장은 새로운 덫을 향해 걸어가자고 말하고 있다. 민주노총의 주인인 조합원들이 일어나야 한다. “절대 안 된다! 단호한 단결투쟁만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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