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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량주의 넘어 진정한 전진의 길 보여준 1917년 러시아혁명

 

최영익 노동자운동 연구공동체 뿌리

 

 

 

6면 러시아혁명 개량.jpg

 

 

 

“개량은 혁명적 투쟁의 부산물이다!” 노동운동의 오래된 격언이다. 이 격언의 가치는 혁명투쟁을 가장 높은 수준에서 실현한, 1917년 러시아 10월 혁명의 경험을 통해서 가장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박근혜 정부가 저지른 온갖 만행에도, 최근 수많은 권력자와 부역자가 법원에서 줄줄이 풀려나고 있다. 천문학적 군수비리가 터져 나오지만, 고위 장교들은 국가비밀이란 철갑 뒤에 숨고 있다. 1917년 러시아에서 권력을 잡은 노동자들은 이 모든 것을 한 번에 날려 버렸다.

 

우선 정부 문서고에 숨겨져 있던 모든 외교비밀들이 공개되었다. 구 정부 관리, 구 외교관, 자본가들은 전쟁의 본질을 드러내는 외교문서의 공개에 벌벌 떨었지만, 노동자들은 떨 이유가 없었다. 노동자는 자신을 죽음으로 내모는 전쟁이 왜 발생하고 지속되는지를 알고자 했고, 그 전쟁을 멈추고자 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전쟁의 진실’이었는데, 그것을 드러내는 데는 노동자들이 정부 문서고에 자유롭게 들어가 대중에게 공개할 수 있는 권리면 충분했다. 노동자의 손에 쥐어진 권력이 그것을 가능케 했다.

 

노동자권력 하에서는 사법제도의 변혁도 간단했다. 법은 소비에트라는 노동자대표자회의에서 새롭게 제정했다. 당연히 이 법의 정신은 모든 착취에 종지부를 찍고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었다. 이 법에 따라 판결하는 사법부는 근본적으로 재구성되었다. 판결은 노동자민중의 배심원들이 맡았다. 사건의 특성에 따라 해당 분야에서 일하는 현장노동자로 구성되는 배심원은 자신들의 삶의 경험과 노동자의 정의감을 바탕으로 판결했다. 기존 법관들은 배심원의 판결에 따른 양형이 무엇인지를 소비에트 법에 근거해 안내하는 단순한 법률가 역할을 맡았다. 그 결과 소비에트 사법부는 노동자들의 경험과 권위에 의거해, 노동자에 대한 모든 착취를 철폐하는 무기로 전환했다.

 

은행도 근본적인 변화를 거쳤다. 모든 은행은 국유화되었다. 은행은 더 이상 비싼 이자로 노동자의 피를 빨아먹는 기관이 아니었다. 또한 착취자들의 불로소득을 감추고, 갖가지 투기가 일어나는 기관도 아니게 되었다. 이제 은행은 화폐를 진정 생산적인 곳으로 흐르게 하는 사회의 동맥 역할을 맡게 되었다. 또한 실명, 차명계좌를 막론하고 은행에 있는 착취자들, 투기꾼들의 모든 재산은 사회적으로 몰수 통제되었다. 노동자의 한 달 생활비를 넘는 금액을 인출하는 것은 금지되었다.

 

이렇게 사회가 뒤집어지고 있었는데, 이것은 작업장 수준에서는 더욱 극적이었다. 공장에서 노동자소비에트의 지시를 거부한 사장이나 관리자들은 ‘해고’되었다. 초과노동을 강요하고 노동자들을 함부로 대해왔던 악질 관리자에 대해 “노동자들은 그 자를 외바퀴 수레 안에 처넣은 다음, 머리 위에 붉은색 물감을 들이부었다. 그 자는 수치스러운 모습으로 수레에 실려 공장에서 쫓겨나 길거리에 버려졌다.”

 

이처럼 사회적 수준에서든, 작업장 수준에서든 자본주의 사회에서 늘 노동자들이 요구해왔고, 때로는 부르주아 정치인이나 사장들까지 약속하기도 했지만 결코 조금도 실현되지 않았던 이런 개량들을 혁명 러시아는 단숨에 해치워버렸다.

 

 

가장 극적인 사례- 노동시간 단축

 

1817년, 영국의 로버트 오웬은 8시간 노동제 없이는 노동자들이 도저히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없다고 호소했는데, 이것은 진실이었다. 모든 노동자조직은 그 요구를 전면에 내걸고 투쟁했다. 1817년부터 1917년까지 100여 년 동안 엄청난 노동자투쟁에도 결코 실현할 수 없는 이상으로만 보였고, 또한 온갖 자본주의 이론이 그것을 절대 실현불가능한 요구로 증명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려들었지만, 1917년 러시아혁명은 세계 최초로 그것을 단 며칠 만에 간단히 실현해버렸다.

 

8시간 노동제와 함께, 야간노동 전면 철폐, 여성에 대한 동일노동 동일임금, 그리고 충분한 출산휴가가 보장되었다. 산재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안전수칙이 마련되었는데, 이 안전수칙은 지금까지 인류 역사상 가장 정교하고 방대한 산업안전법으로 알려져 있다. 오직 한줌 자본가의 이익을 전면적으로 무시하고 거부하는 것만으로 그것들은 완벽하게 실현되었다.

 

의미 있는 개량은 혁명투쟁의 부산물이라는 점은 러시아에서 이뤄진 8시간 노동제 쟁취의 파도가 세계 전반으로 퍼져감으로써 더 확실히 증명되었다. 독일뿐만 아니라 영국, 프랑스 등 노동자투쟁이 혁명으로 뻗어나갈 가능성이 증대하는 모든 나라에서 8시간 노동제를 자본가계급은 수용해야 했다. 그들은 러시아에서처럼 노동자들에게 권력을 빼앗기는 것보다는 개량을 수용함으로써 착취 체제를 보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가장 극적인 사례는 ‘ILO 협약 제1호, 하루 8시간 노동’이다. 1918년 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유럽과 미국 등 제국주의 국가는 물론이고, 아시아와 남미 같은 식민지까지 사회주의 혁명의 물결이 넘실댔다. 사회주의 사상이 노동자들에게 급속히 유포되는 상황에서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열강은 노동자의 기본요구를 짓밟고서는 자본주의 체제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다고 느끼게 되었다. 이런 배경 속에 국제노동기구(ILO)는 국제연맹의 산하기관으로 설립되어 러시아혁명이 일어난 지 2년 후인 1919년 10월 미국 워싱턴에서 첫 세계총회를 열게 된다. 이 ILO 협약 1호는 바로 ‘하루 8시간 노동’이었다.

 

이상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노동시간을 단축하기 위한 투쟁은 오랜 기간에 걸쳐 아주 조금씩밖에 전진하지 못했지만, 자본가의 지배체제를 위협하는 노동자들의 혁명투쟁은 그러한 오랜 기간의 투쟁이 힘겹게 조금씩 달성해나가던 과제들을 순식간에 완전하게 쟁취하게 만들어주었다. “개량은 혁명적 투쟁의 부산물이다!”

 

 

완전한 개량- 오직 자본주의 철폐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

 

또 하나 주목할 지점은 자본주의 하의 노동시간 단축은 자본가들의 수천 가지 반격에 의해 무력화되어온 역사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1840년대 영국의 노동자들이 10시간 노동제를 쟁취했다. 하지만 자본가들은 ‘교대제’를 도입해 교묘히 빠져나갔다. 한 공장에서 10시간만 노동시킨 뒤, 다른 공장에서 또 다시 10시간을 노동하게 한 것이다.

 

또 다른 대표적인 방법은 노동강도를 강화시키는 것이었다. 가령 방적공이 실을 잣는 횟수는 1815년에는 12시간 동안 1,640회였던 것이 1832년에는 4,400회, 1844년에는 4,800회로 점점 더 증가했다. 이런 식으로 노동강도를 증대시킴으로써 자본가들은 노동시간의 법적 제한에 따른 손실을 충분히 만회했고, 노동자에게 장시간 노동보다 더 무서운 ‘실업’의 공포를 선물했다.

 

영국의 10시간 노동제로부터 근 180년이 흘렀지만 자본주의의 모습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8시간 노동제는 허울뿐이고, 노동자들은 잔업 특근으로 부족한 임금을 벌충해야 한다. 최저임금인상은 갖가지 변형근로와 노동강도 증대, 해고 확대의 문제와 맞닥뜨린다.

 

이것이 ‘자본주의 체제 내 개량’의 민낯이다. 1917년 러시아에서 쟁취한 ‘8시간 노동제’는 그와는 완전히 달랐다. 잔업 특근, 노동강도 증대는 허용되지 않았고, 해고는 애당초 불가능했다. 왜 그것이 가능했는가? 작업장의 주인이 노동자들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사회주의였기 때문이다. 모든 생산수단이 사회 공동재산으로 바뀌어, 생산의 목적이 한줌 자본가들의 이윤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생존과 번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모두는 1917년 러시아에서 노동자들이 혁명을 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노동시간 단축투쟁, 최저임금인상투쟁, 해고분쇄투쟁 등 모든 개량투쟁은 이 노동자혁명의 사활적 필요성을 느끼고, 그것을 이룰 수 있는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투쟁능력, 혁명적 투쟁정신을 키우는 수단일 때 비로소 참된 의미를 갖는다. 러시아 노동자들은 바로 그렇게 투쟁하고 전진했기에 1917년 노동자혁명의 고지에 도달할 수 있었고, 진정한 개량을 움켜쥘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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