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본문시작

 러시아혁명은 단지 한 나라의 현상이었는가?

 

박인국

 

 

 

8면 러시아 세계혁명.png

1919년 1월 베를린 총파업 당시.

 

 

 

1917년 10월 러시아혁명을 단지 러시아만의 특수한 현상으로 이해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그 연장선에 있는 1차 세계대전이 보편적이었던 만큼 러시아혁명은 보편적 현상이었다. 이것은 러시아혁명 전후로 세계에서 혁명의 파도가 얼마나 크게 넘실거렸는지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독일혁명 : 1918~1923년

 

러시아혁명이 일어난 지 1년 만에 독일에서도 혁명이 폭발했다. 1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18년 11월 독일 정부가 잇따른 패배에서 벗어나고 싶어, 영국으로 진격하라고 해군 함대에 명령하자 수병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키일 군항의 수병들이 파업 중인 부두노동자들과 함께 거리를 행진하고, 진압군의 무장을 해제하며 병사평의회를 세우자 독일 전체로 혁명의 불꽃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브레멘, 함부르크, 하노버, 쾰른, 라이프치히 등 여러 도시에서 노동자와 병사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11월 9일 총을 들고 적기를 휘날리는 노동자와 병사의 대규모 시위행렬이 베를린 전역을 휩쓸었을 때, 감옥에서 풀려난 사회주의 혁명가 칼 리프크네히트는 ‘사회주의 공화국’과 ‘세계혁명’을 외쳤다.

 

독일혁명의 물결은 1923년 10월 정점에 이르렀다. 물가가 폭등해 노동자의 삶이 밑바닥으로 추락하자 5~7월에 경제파업이 독일 전역을 휩쓸었다. 이 파업에서 노조 지도부는 통제력을 잃었고, 공장평의회가 실질적인 지도부로 떠올랐다. 그 평의회들에서 독일공산당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나중에 트로츠키는 이런 공장평의회가 소비에트의 독일적 형태가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6만 명가량의 노동자로 이뤄진 8백 개가량의 노동자민병대도 만들어졌다. 노동자대중은 급속히 좌로 나아갔고, “(사회를) 이대로 내버려둘 수는 없다”는 말을 “안녕하세요”만큼이나 매일 얘기했다. 어느 프랑스 공산당원은 그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백만의 혁명가들이 공격신호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면서 준비하고 있었다. 그들 뒤에는 수백만의 실업자, 굶주리는 사람들 … 이 있었다. 군중의 근육은 준비돼 있었다.”

 

 

이탈리아의 ‘붉은 2년’

 

이탈리아는 당시 서유럽 노동자운동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중심적인 국가 중 하나였다. 이탈리아에서는 1차 세계대전 참전으로 50만 명의 사망자와 거액의 전쟁부채가 생겼다. 전쟁으로 생계비는 6배나 올랐다.

 

그 결과 이탈리아 역사에서 ‘붉은 2년’으로 기록된 1919~20년 대투쟁이 벌어졌다. 1919년 6월과 7월에 전국에서 식료품가격을 둘러싸고 일어난 시위들이 몇몇 지역에서는 봉기 수준으로까지 발전했다. 소비에트러시아에 대한 연대감의 표시로 2일간 전국총파업이 전개됐다. 토리노에서부터 공장평의회들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농민들의 토지점거와 병사들의 군대반란이 뒤따랐다.

 

파업물결은 1920년에도 계속 이어져 4월에 토리노 지역에서 50만 노동자들이 공장평의회를 방어하는 파업을 벌였다. 1920년 8월에 금속노조는 임금협상이 결렬되자 태업에 들어갔다. 그러자 밀라노의 한 자본가가 공장을 폐쇄했고, 밀라노 금속노동자들은 모든 공장에 대한 즉각 점거로 맞섰다. 자본가들이 전국적 폐업을 단행하자 9월 4일 50만 금속노동자들은 전국적인 공장점거로 대응했다. 공장평의회를 통해 공장을 통제하고 ‘적위대’를 통해 공장을 방어하면서 노동자들은 생산을 계속했다.

 

당시 상황을 잘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어느 운송기업 사장이 토리노 피아트공장에 전화를 걸어 그곳 사장과 통화하려 했다. “여보세요, 누구십니까?” “여기는 피아트소비에트입니다.” “이런 … 미안합니다. … 다시 걸겠습니다.”

 

 

영국, 스페인, 미국 등 승전국의 혁명투쟁 물결

 

혁명의 물결은 1차 세계대전 패전국은 물론 승전국도 휩쓸었다. 영국군과 프랑스군은 본국으로 돌아가려고 대기하는 병사들의 반란 때문에 흔들렸다. 1917년 10월 혁명으로 등장한 러시아 노동자권력을 분쇄하기 위해 파견된 영국군, 프랑스군, 미군도 혁명의 소용돌이에 영향 받았다.

 

영국에서 노동자투쟁이 높이 솟구쳤다. 1919년 초 기계노동자들의 파업으로 글래스고에서는 경찰과 노동자들이 격렬하게 충돌했다. 철도노동자들이 9일 동안 파업했다. 1920년 1월 광부노조, 운수노조, 철도노조가 ‘삼각동맹’을 형성하자 정부는 공포에 휩싸였다.

 

스페인에서도 대규모 파업물결이 일어났다. 1919년 초 카탈루냐에서는 노동자들이 파업을 일으켜 바르셀로나 전력의 대부분을 공급하던 라 카나디엔세 공장을 점거했고, 대중교통을 마비시켰다. 카탈루냐 섬유공장의 70%에서 파업이 일어났으며, 가스노동자들과 수도노동자들도 파업했다.

 

미국에서도 1919년에 노조가 없는 업종에서 노조를 결성하려는 사상 최대 규모의 시도가 있었고, 철강노동자 25만 명이 격렬한 파업을 선언했다.

 

조선, 중국을 휩쓴 혁명의 불길

러시아 노동자권력이 민족자결권을 선포하고 피억압민족의 민족해방을 실제로 보장하자 세계 곳곳에서 민족해방투쟁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석 달 이상 1,542회 집회를 열고 202만 명이 참가한 1919년 3.1운동도 1917년 10월 러시아혁명의 영향을 받았다. 미국 대통령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선언은 패전국 식민지에만 적용된다는 점을 깨닫고, 제국주의 열강에 실망한 사람들이 사회주의 러시아를 선호하며 사회주의 사상이 빠르게 퍼졌다.

 

3.1운동의 영향도 받아 중국에서 1919년 5.4 학생시위가 벌어지자 중국이 크게 흔들렸다. 무엇보다 뒤이은 수년 사이에 중국 노동자계급의 저력이 강력하게 뿜어져 나왔다. 1925년 여름 광저우에서 파업위원회는 일종의 노동자정부로까지 발돋움했다. 1927년 상하이에서는 60만 노동자가 참여하는 총파업이 벌어졌고, 노동자 민병대의 봉기가 상하이를 휩쓸기도 했다.

 

 

세계혁명정당

 

안타깝게도 러시아 외에는 어디서도 노동자혁명이 성공하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볼셰비키와 같은 단련된 혁명적 노동자당이 다른 나라에서는 없었기 때문이다. 1917년 10월 혁명 직후 볼셰비키와 러시아혁명에 고무된 각국 혁명가들은 세계혁명을 이끌기 위해 1919년에 제3인터내셔널(코민테른)을 건설했다. 그러나 이제 막 건설된 코민테른의 각국 지부는 혁명을 승리로 이끌기에는 약했으며, 러시아에서 스탈린 반혁명이 진행될수록 세계혁명의 도구에서 스탈린 권력의 외교도구로 변질해갔다.

 

비록 100여 년 전의 세계혁명 물결이 승리로 이어지지 못해 대공황, 파시즘, 2차 세계대전이라는 재앙이 뒤따랐지만, 세계 노동자계급 속에 얼마나 커다란 혁명적 잠재력이 존재하는지 똑똑히 볼 수 있다. 100여 년이 흐른 지금, 혁명세력의 힘은 그때보다 훨씬 약해졌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은 훨씬 더 규모가 커졌고 거의 모든 나라에서 다수가 됐다. 그만큼 잠재력도 더 거대해졌다.

 

이런 잠재력이 폭발적으로 분출해 온 세상을 뒤흔들기까지는 지난한 과정을 거칠 것이다. 그리고 강력한 세계혁명정당 없이는 세계혁명의 승리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다음 세계혁명 물결이 올 때, 노동자계급의 잠재력을 굳게 믿는 투사들은 100여 년 전의 세계혁명 물결을 디딤돌 삼아 미래로 힘차게 뻗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37 민주노총 선거- 우리 운동의 진정한 원동력을 질문한다 file 노건투 2017.12.08 90
236 [러시아혁명 연재 ⑩] 1917년 러시아혁명의 패배를 넘어서 더 멀리 file 노건투 2017.11.30 87
» [러시아혁명 연재⑨] 러시아혁명은 단지 한 나라의 현상이었는가? file 노건투 2017.11.29 52
234 [러시아혁명 연재⑧] 1917년 모스크바금속공장 이야기 2 - 볼셰비키는 어떻게 현장에서 힘을 얻어갔는가 file 노건투 2017.11.17 77
233 [러시아혁명 연재 ⑦] 러시아혁명은 어떻게 차별과 억압에 결정타를 날렸는가? file 노건투 2017.11.03 68
232 [러시아혁명 연재⑥] 1917년 모스크바 금속공장 이야기 1 노동자가 어떻게 현장권력을 장악해 갔는가 file 노건투 2017.11.03 58
231 [투쟁의 기억] 국가에 대한 어떠한 환상도 유해하다는 진실을 알려준 칠레 노동자들의 뼈아픈 경험 file 노건투 2017.11.02 112
230 사회주의조직이 극복해야 할 약점 file 노건투 2017.11.01 134
229 [러시아혁명 연재⑤] 자본주의 경제위기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최고 해결책은? file 노건투 2017.10.13 52
228 [러시아혁명 연재④] 제국주의 전쟁은 어떻게 노동자혁명의 추동력이 됐는가? file 노건투 2017.09.25 79
227 [러시아혁명 연재③] '노동자 소비에트' 노동자 단결투쟁에서 탄생해, 노동자권력으로 우뚝 섰던 위대한 노동자 조직 file 노건투 2017.07.27 113
226 [투쟁의 기억] 서울대병원 10년 전 파업 정규직 · 비정규직이 함께 파업해 온전한 정규직화 쟁취하다 file 노건투 2017.07.24 197
225 [러시아혁명 연재②] “우리는 꿈을 꾸어야 한다” - 러시아혁명을 알아야 할 이유 file 노건투 2017.07.12 168
224 한미정상회담에서 드러난 자본가정부의 두 가지 민낯 file 노건투 2017.07.06 105
223 [러시아혁명 연재①] 러시아노동자들은 어떻게 정권교체의 환상을 넘어 전진했는가? file 노건투 2017.06.29 172
222 “사장들 없어도 우리는 생산할 수 있다” - 2001년 이래 노동자통제 아래 있는 아르헨티나 사농(Zanon)공장 file 노건투 2017.06.05 168
221 거인처럼 보였던 버라이즌, 파업노동자가 더 큰 거인이었다 file 노건투 2017.06.02 97
220 [투쟁의 기억(연재)]1987년 7·8·9 노동자대투쟁 (6) 노동자대투쟁을 거울삼아 노동자계급의 총단결·총투쟁을 조직하자 file 노건투 2017.05.01 162
219 [투쟁의 기억(연재)] 1987년 7‧8‧9 노동자대투쟁(5) 투쟁의 정점과 내리막길 file 노건투 2017.04.17 148
218 [투쟁의 기억(연재)] 1987년 7‧8‧9 노동자대투쟁 (4) 노동자계급은 전국적 세력 : 인천‧경기‧서울로, 운수와 광산업으로 확산되는 대투쟁 file 노건투 2017.04.03 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