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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혁명 연재 ⑧]

[번역] 1917년 모스크바금속공장 이야기 2

볼셰비키는 어떻게 현장에서 힘을 얻어갔는가

 

 

 

9면 러시아혁명.JPG

혁명 성공 직후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연설 중인 레닌

 

 

 

* ( ) 안의 설명은 원문에 있는 것이며, [ ] 안의 설명은 옮긴이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덧붙인 것이다.

 

‘모스크바금속’에선 혁명의 첫 몇 달 동안 사회혁명당이 이득을 가장 많이 봤다. 볼셰비키의 모스크바 위원회 회의에서 로고츠키 지구 대표는, 당이 (멘셰비키와 볼셰비키의 통합을 바라는) 통합파와 사회혁명당을 공장에서 몰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그들의 영향력이 강해 상황은 “매우 부정적”이라고 보고했다. “(모스크바금속에서) 다수는 사회혁명당원들이다. 분위기는 좋지 않다. 충돌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 그렇지만 지구 대표는 모스크바금속 노동자들 속에서 “2주 안에 집회를 여는 것도 가능하다”고 했다.

 

모스크바 금속공장 안에서 사회혁명당이 힘을 발휘한 것은 노동자들의 급진성 덕분이었다. “숙련노동자들만이 아니라 모든 노동자가 다 생활할 수 있도록” 더 평등한 임금체계를 보장하라는 사회혁명당 간부의 제안을 지지하며 노동자들은 사회혁명당으로 결집해 있었다. 그런데 이 노동자들의 요구가 점점 더 정치적인 성격을 띠어갈수록, 볼셰비키의 호소가 더 강력해졌다.

 

 

추락하는 사회혁명당, 상승하는 볼셰비키

 

토지와 전쟁문제, 나빠져 가는 경제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부르주아 임시정부에 참여하고, 당 안에서 분열이 증가한 결과 사회혁명당의 세가 기울었다.

 

한 노동자는 이렇게 회상했다. “공장의 노동자대중은 과거에 농민이었다. 그들은 농민이 [2월] 혁명 후에 땅을 받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사회혁명당 출신인] 케렌스키의 통치를 겪고 나서, 자신들이 속았다는 것을 곧바로 깨달았다.”

 

하지만 전쟁 문제가 공장 안에서 볼셰비키 사상이 힘을 얻어가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볼셰비키 현장분회 간부가 나중에 주장했다. 케렌스키가 ‘승리할 때까지 전쟁!’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이후, 공장 안에서 사회혁명당의 영향력은 약해지고 볼셰비키당의 영향력은 커지기 시작했다. 이후에 한 사회혁명당원은 “사회혁명당은 전쟁에 찬성했고 볼셰비키는 반대했다. 이 때문에 노동자들이 볼셰비키 편으로 돌아섰다”고 말했다.

 

6월 말에 전선에서 케렌스키 공세가 시작된 이후, 사회혁명당 지도자들이 공장노동자 5천 명 앞에서 ‘승리할 때까지 전쟁!’을 주장했다. 그러자 볼셰비키 지구 지도자, 로자 젬리아츠카가 이렇게 응수했다. “동지들! 전쟁을 계속하자는 목소리가 많이 나왔다. 그러므로 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즉시 전선에 나가겠다고 자원해야 한다.” 상당한 침묵이 흐른 뒤, 사회혁명당 지도자들은 풀이 죽은 채 연단을 떠났다.

 

 

분명한 정치적 통일, 정력적이고 끈기 있는 활동

 

볼셰비키들은 획일적이지는 않았지만, 공장들에서 극좌파였고, 당시의 중요한 정치적 주제들에 대해 통일돼 있었다. 전쟁에 반대하고, 자본가들과 타협하지 않았으며, 소비에트 권력을 찬성했다. 더욱이 당은 당원들에게 조직적 지원과 정치적 지도를 제공해주고 있었다. 반면, 사회혁명당은 혼란 상태였다. 정치적 모호함에서 출발해 주요 정치적 사안마다 내부는 분명한 차이를 보이며 분열로 나아갔다.

 

한 사회혁명당원은 이렇게 말했다. “(당이) 당원들을 제대로 지도하지 못했다. 혁명 운동에 대해 어떤 정보도 제공하지 못했고, 어떤 방향도 제시해주지 않았다. 공장 분회는 사실상 존재하지도 않았다. 이건 볼셰비키들의 분회와 전혀 달랐다 … 그들은 누군가가 이끌어주고 있었고 방향을 명확히 제시해 주었다. 심지어 매일 그렇게 했다. 볼셰비키들의 끈기는 정말 놀라웠다.”

 

 

40만 모스크바 노동자 파업과 볼셰비키의 전진

 

‘모스크바금속’에서 노동자들의 지지 분위기가 사회혁명당에서 볼셰비키로 전환되기 시작한 첫 신호는 8월 12일 국가협의회에 반대해 40만 모스크바 노동자가 일어선 총파업에서 나타났다. 국가협의회는 부르주아 임시정부가 좌우로부터 ‘자문’의 목소리를 균형 있게 들어 비틀거리는 자신의 지위를 정당화해 보려는 시도였다. 국가협의회 참여를 거부당한 볼셰비키는 국가협의회에 맞서 파업을 조직하려 했다. 모스크바의 볼셰비키들은 국가협의회를 지지하는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 세력을 자신들이 뛰어넘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당 내에서 노긴이나 다른 신중한 볼셰비키들은 파업이 이루어질 것 같지 않아 파업 반대를 주장했지만, 결국 볼셰비키당 모스크바위원회에서는 투표 결과 18 대 6으로 파업 찬성을 선동하기로 결정했다.

 

‘모스크바금속’은 도시의 다른 많은 공장의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모든 현장에 파문을 불러일으키면서, 이데올로기 대결에서 왼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모스크바금속에서 공장 대중의 분위기가 우호적이지 않았는데, 이제 점점 좋아지고 있다. 노동자대중은 우리를 지지하기 시작했다. 파업은 의심할 바 없이 성공적이다.”

 

다음 며칠 동안 경쟁하는 사회주의당들은 시험대에 올랐다. 모든 공장과 노동조합, 소비에트에서 노동자들은 모스크바 국가협의회와 임시정부를 규탄하기 위해 볼셰비키가 호소한 파업투쟁에 대해 열정적으로 토론했다. 8월 11일, 모스크바금속 총회에서 노동자들은 투표로 모스크바 국가협의회에 반대하고, 파업이나 시위 형태로 투쟁하는 것에 찬성했다. 아직도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이 잡고 있던 모스크바 소비에트는 364 대 304로 파업 반대를 결정했다. 반면 대다수의 지구 소비에트와 노동조합들은 파업에 찬성했다.

 

볼셰비키들은 공장들 안에서 벌어진 논쟁에서 승리했다. 8월 12일 파업은 임시정부 반대 의사를 밝힌 매우 심오한 정치적 투쟁이었다. 한 멘셰비키 당원은 “이 노동자계급 군대는 자신들의 [타협주의] 소비에트가 아닌 볼셰비키당을 따르고 있었다”고 기록했다. 그 파업은 대중의 혁명적 분위기를 보여준 파업이었다.

 

 

반동쿠데타에 맞선 노동자 적위대

 

모스크바 국가협의회는 점점 더 벌어지는 두 계급 사이에 다리를 놓는 데 실패했다. 오히려 그것은 내전이 임박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반동적 장군인 코르닐로프는 거꾸로 돌아가고 있는[병사들이 병사소비에트를 만들어 장교들을 통제하는] 러시아 군대를 바꾸기 위해서는 독재자가 필요하다며 쿠데타에 나섰다. 오른편에서 불어오는 이 반동의 위협에 맞서 혁명을 방어하려고 4만 명의 노동자 적위대가 형성됐다. 부르주아지의 반동쿠데타 시도는 러시아 사회를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모스크바금속공장에서도 총회를 통해 노동자들이 코르닐로프 쿠데타에 맞서 무장하기로 결정했다.

 

볼셰비키당은 노동자와 병사들을 무장시킬 것, 반혁명적인 부대를 무장해제하고 짜르 체제의 장교들과 자유주의자들을 잡아들일 것, 두마[왕정 시절의 의회]를 없애고, 반혁명을 지원하는 외국정부를 모두 내쫓을 것, 그리고 노동자계급과 농민의 혁명적 독재를 내걸었다. 9만여 명의 노동자가 대중 집회에 모여들어 볼셰비키들의 이런 요구들에 지지를 보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볼셰비키의 사상은 러시아 전역에 깊이 뿌리를 박으면서 붉은 꽃을 피워 올렸다.

 

번역 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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