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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혁명은 어떻게 차별과 억압에 결정타를 날렸는가?

 

유보근

 

 

 

8면 러시아혁명 연재.jpg

1917년 혁명의 시작을 열어젖힌 여성 노동자들. 러시아혁명은 이미 여성노동자들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끌어올렸다. 여성노동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혁명이라는 무대에서 빛을 발했다. 이는 여성해방과 사회주의 혁명이 걷는 길이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중요한 창이다.

 

 

 

우리는 인류 역사에서 오랫동안 차별을 보아 왔다. 그렇기에 차별은 없앨 수 없다고 쉽게 체념하는 장면을 곳곳에서 목격한다. 하지만 차별은 계급 착취와 마찬가지로 영원하지 않다. 차별의 역사와 계급의 역사는 분리할 수 없다. 인류 역사에서 계급과 차별은 함께 등장했으며, 함께 퇴장할 것이다. 오직 계급사회가 무너지고 진정한 인류 평등의 조건이 창출될 때 차별은 사라질 것이다. 러시아 혁명은 인류 역사에서 그 가능성을 보여준 유일한 사례다.

 

 

러시아혁명과 여성해방

 

1917년 2월 23일(현재 달력으로 3월 8일)은 국제 여성의 날이었다. 이날 러시아 여성노동자들은 빵과 평화를 요구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 투쟁이 기폭제가 돼 2월혁명이 터졌고 짜르는 4일 만에 물러나야 했다.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전쟁을 다시 시작하려는 임시정부를 규탄하는 파업을 벌일 때도, 코르닐로프의 반혁명에 맞서기 위한 바리케이드 앞에서도 여성노동자들은 남성노동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투쟁했다. 사회주의 혁명은 그 과정에서 이미 여성노동자들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끌어올렸다. 여성노동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혁명이라는 무대에서 빛을 발했다. 이것은 여성해방의 길과 사회주의 혁명의 길이 결코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중요한 창이다.

 

10월 봉기가 성공을 거두고 노동자계급이 권력을 잡으면서 여성해방을 위한 구체적 조치들이 이루어졌다. 여성들의 보통선거권이 보장되었다. 당시 가장 발전된 자본주의 국가 중 하나인 영국에서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더불어 여성을 얽어맸던 모든 법률이 사라졌다. 남녀 어느 한쪽의 의사로도 언제든 이혼할 수 있게 되었으며, 서자 차별이 사라졌다. 여성들에게 수치심을 안겨주고 억압을 정당화하는 법률도 폐지되었다. 최초로 낙태가 보장되었다. 여성들의 법적지위 자체만 봐도 그 어떤 부르주아 국가들보다 높았다.

 

 

여성해방의 조건

 

그러나 여성해방은 단순히 몇 가지 법률을 폐기하거나 새로 만든다고 해서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법률은 가정 속에서 또는 도시에서 농촌으로 갈수록 사문화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여성들은 억압의 굴레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여성해방의 두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단계는 토지와 공장의 사적 소유를 폐지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여성들이 완전하고 실질적으로 해방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즉, 개별 가정의 자질구레한 집안일을 대규모로 사회화된 가사 서비스로 이전함으로써 여성을 ‘가내노예’ 상태에서 해방해준다.”(레닌, <여성해방의 두 번째 단계로 나아가자>)

 

“여성해방의 문제는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가족생활의 변혁이라는 문제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현재의 가족 구조는 여성을 몰아넣어 가둬 두고 숨 막히게 만드는 우리와도 같은데, 여성을 소나 말 같은 짐승까지는 아니더라도 노예로 만들고 있는 그 우리의 빗장을 제거해야 합니다. 이 과제는 공동 급식과 육아방식의 조직화를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습니다.”(트로츠키, <가족의 일상생활을 변혁하자>)

 

자본가들에게 대다수 여성을 옭아매고 있는 가족사회의 사슬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소비의 주체로서 가족이 유지되고 여성이 그 속에서 ‘희생’하며 살았을 때 자본주의 시스템은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은 이중으로 노예의 역할을 부여받는다. 이런 처지는 오로지 생산수단을 사회적으로 소유하고, 개별가정의 주된 업무를(가사노동을) 사회화할 때 극복할 수 있다.

 

그렇기에 노동자권력은 여성들을 가사노동의 굴레에서 해방시키려 했다. 러시아에서는 그 어떤 자본가 국가와 비교할 수 없을 규모의 공동식당, 세탁소, 유치원·어린이집이 만들어졌다. 가사노동을 사회가 담당하는 만큼 여성의 사회참여는 더욱 늘어났다. 여성노동자들의 노동생산성은 높아졌다. 국가의 경영에 참여하고 소비에트 대의원에 나서는 등 적극적으로 정치에 나설 것이 독려되었다.

 

 

억압받는 민족

 

러시아는 다민족국가였다. 러시아인은 43%밖에 되지 않았고 나머지는 다양한 이민족으로 이루어졌다. 짜르는 각 민족의 문화를 억압했다. 공식 언어는 러시아어만 사용해야했고, 러시아 민족의 종교는 제국의 종교가 되었다. 짜르가 무너진 후에도 각 민족의 권리는 보장되지 않았다. 임시정부는 혁명의 단결을 외쳤지만, 실상은 전쟁을 위해서 피억압민족의 자유를 짓밟았다. 피억압민족의 자유는 독일군의 공작으로 치부되었다.

 

각 민족의 자유에 대한 열망에 정확히 대답한 세력은 레닌과 볼셰비키밖에 없었다. 레닌은 분리·독립을 포함한 피억압 민족의 자결권을 주장했다. 민족적·종교적 특권을 폐지하고 소수민족의 자유로운 발전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2월 혁명은 러시아의 피억압계급과 민족들이 자신들의 요구를 마침내 소리 높여 외칠 기회를 제공했다. 그러나 농민의 정치적 각성은 이들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될 수밖에 없었다. 이 결과, 학교 교육, 법정, 자치행정 등은 큰 변화를 강요받았다.”(트로츠키, <러시아혁명사>)

 

10월 혁명 직후 소비에트 정부는 이런 방향의 민족정책을 펼쳤다. 소비에트 연방국가는 소수민족, 피억압민족에 대한 억압과 폭력, 통제를 통해서가 아니라 민족의 자결권 보장과 노동자민중의 자유롭고 자발적인 연합을 통해 구성됐다.

 

 

제국주의와 민족해방

 

가장 악랄하고 강력한 민족억압의 배후는 바로 제국주의였다. 피억압민족의 지식인이나 자본가계급은 형식적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것에 머물렀다. 이들은 민족해방을 일구어낼 능력도 의지도 없었다. 반면에 노동자계급과 가난한 민중은 식민지 억압의 근본원인이 사라지기를 원했다. 민족자결·민족해방은 사회주의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이었다. 제국주의에 맞서기 위해서는 사회주의라는 무기가 없어서는 안 됐다.

 

모든 식민지에서 사회주의 운동이 들불처럼 퍼졌다. 1917년 4월, 레닌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소비에트공화국을 수립한 것을 보면, 우크라이나인들은 분리 독립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밀류코프의 공화국을 수립한 것을 보면, 이들은 분리 독립할 것이다.”(트로츠키, <러시아혁명사>)

 

러시아 혁명 후 소수민족의 자결권을 보장해준 조치들을 보면서 피억압민족의 노동자민중은 스스로 제국주의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대안을 갖게 됐다. 그들은 국제사회주의 운동의 전진에 이바지했다. 러시아혁명은 노동자계급이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 노동자에 대한 착취와 더불어 자본주의 때문에 발생한 여성, 민족·인종에 대한 억압을 함께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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