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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조직이 극복해야 할 약점

노건투 2017.11.01 13:52 조회 수 : 215

 사회주의조직이 극복해야 할 약점

 

오연홍 노동자운동 연구공동체 뿌리

 

 

 


지난 기사(이 기사는 지난호에 실린 “SK브로드밴드비정규직지부 : 민주노조로 거듭나기 위해 오류를 직시하는 것부터”의 연속이다)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활동에 대해서도 반드시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섭과 투쟁의 관계 등에 관한 세부적인 이야기를 되풀이하려는 게 아니다. 사회주의자들이 노동조합운동에 뛰어들면서 어떤 약점을 드러내고 있는지, 퇴보하지 않기 위해 어떤 과제에 도전해야 하는지 돌아보며 방향을 분명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오랜 목표, 여전한 과제

 

사회주의운동에 복무하려는 사람이라면 ‘사회주의와 노동자운동의 결합’이라는 과제의 중요성을 잊지 않을 것이다. 만약 노동자계급이 아직 집단적인 사회세력으로 등장하지도 못하고 어떠한 의미 있는 운동도 이뤄지지 못하는 상황(예컨대 선전써클에 머물렀던 러시아 혁명운동의 여명기처럼)이라면, 우리는 사회주의와 노동자운동의 결합을 꿈도 꿀 수 없을 것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더욱이 이제 노동자운동은 특정한 개별사업장의 시각을 뛰어넘어 노동자계급 전체의 단결을 쟁취하기 위한 계급투쟁의 시각에서 ‘대중전’을 준비하고 펼쳐가야 한 걸음이라도 제대로 전진할 수 있는 환경에 처해 있다.

 

그래서 ‘노동자운동과 결합’할 의사가 있는 사회주의조직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대중전’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애써야 한다. 이것은 이를테면 사회주의조직이 시대의 흐름 속에 도태되지 않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요소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는 아직 그런 능력을 충분히 길러내지 못했다. 사회주의와 노동자운동의 결합이라는 오랜 목표는 우리에게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과제와 준비 정도의 간극

 

이런 과제가 너무나 먼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문제는, 우리가 충분히 능력을 키우고 잘 준비될 때까지 현실의 운동이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때로는 사회주의조직의 준비 정도를 앞질러 노동자운동이 새로운 정세와 과제에 직면해버린다. 더욱이 대중전을 치를 수 있는 능력은 바로 대중적인 운동과 투쟁의 한복판에서만 기를 수 있는 것이지, 그것과 동떨어진 사회주의자들만의 세계에서 이뤄질 수 있는 게 아니다. 누구나 아는 비유처럼 물에 뛰어들지 않고 수영하는 법을 배울 수는 없다.

 

이 때문에 바로 그 현실적 과제와 사회주의조직의 준비정도 사이에 간극이 발생한다. 이 지점에서 사회주의조직은 자신의 약점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또한 바로 이 지점을 경과하면서 종종 실수와 오류를 겪게 된다. 그간 조합주의자들이나 노조관료들의 투쟁과 교섭을 보며 비판했던 문제점들을 사회주의자들이 되풀이하기도 한다.

 

이런 실수나 오류는 사회주의조직에 당혹감을 안겨준다. 그 당혹감에 압도당한 나머지 현실을 잘못 해석하고 불합리한 결론을 끌어낼 위험도 생긴다. 이 위험을 막기 위해선,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약점’이 자의적으로 건너뛸 수 없는 ‘역사적으로 규정된’ 것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규정된 약점

 

한국의 혁명적 사회주의운동은 이른바 ‘사회주의권의 붕괴’가 야기한 정치적 혼란과 지배계급의 집요한 탄압을 뚫고 어렵게 전진해 왔다. 현실에서 노동자투쟁과 결합하고 단련되려는 노력도 거듭해왔다. 그렇지만 고난에 찬 계급투쟁 속에서 단련된, 흔들림 없이 대중의 운동을 이끌어갈 수 있는 확고한 사회주의 노동자들을 아직은 다수 배출해 내지 못했다.

 

그 점에서 우리 조직은 명백히 약점을 지니고 있으며 이는 객관적인 현실이다. 그런 조건에서 우리는 준비정도와 무관하게 대중전이라는 과제에 책임 있게 대응해야 하는 상황에 때때로 직면한다. 예를 들어 사회주의자들이 아주 강력한 현장조직력을 갖추지는 못했지만 민주노조라는 근거지를 지키기 위해 (또는 되살려내기 위해) 노동조합 집행부를 책임져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민주노조를 매개로 전개되는 대중운동에서, 특히 소수의 조합원들과 함께하는 소규모 활동을 넘어 대중전을 수행해야 한다는 과제 앞에서 사회주의조직은 여전히 경험도 부족하고 단련되지도 못했다. 그런 영역에서 미끄러지고 넘어지는 건 거의 불가항력적이다. 투쟁 조직화나 교섭 진행, 또는 그 둘의 관계를 올바로 세우는 데에서 터무니없는 실책이 벌어진다.

 

 

나쁜 해결책들

 

이런 상황을 단지 ‘불가항력적’이라는 말로 끝낸다면 그건 불건전한 정당화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약점 앞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태도는 오류를 정당화하고, 그럴싸한 명분으로 포장하는 것이다. 그런 태도는 해결책이 아니라 단지 우리의 눈을 가리고 이성을 마비시킬 뿐이다.

 

이런 태도가 지속되면 결과는 더 나빠진다. 노동자운동의 역사에서 배운 소중한 원칙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점점 더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여겨지고, 그 다음엔 원칙을 지키는 게 뭐 그리 중요하냐는 이야기를 서슴없이 하게 된다. 최선을 다해 싸워보기도 전에 타협하려는 태도가 습관으로 자리 잡으면서, 사회주의조직으로서의 정체성은 희미해진 채 어느덧 그간 비판해왔던 노조관료들, 조합주의자들의 모습을 닮아갈 수 있다.

 

또 다른 나쁜 해결책은 우리가 대면해야 할 과제에서 도망치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 대중전이라는 무대에서 사회주의와 노동자운동의 결합을 추진할 준비가 안 돼 있다는 하나의 사실로부터, 그러므로 자신을 단련시키기 위해 더 맹렬하게 거듭 도전해야 한다는 결론이 아니라 학습과 선전의 시대로 돌아가야 한다는 결론을 끌어내는 게 그런 경우다.

 

이런 ‘해결책’은 무척 간편한 것이긴 하지만, 사회주의조직을 돌이킬 수 없이 쓸모없는 집단으로 전락시킬 것이다. 사회주의조직의 정당성과 존재가치는 현실의 정세와 과제로부터 벗어나 자기만의 안전한 울타리 안에 웅크리는 게 아니라, 현실의 계급투쟁을 조직하고 밀어가는 데에서 주도적이고 적극적인 역할을 온전히 해낼 때 비로소 입증되기 때문이다.

 

 

 

4면 SK 조직평가.jpg

더 끈기 있게 계급운동에 달라붙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도전하는 것 외에 사회주의조직의 약점을 극복할 다른 길은 없다. 사진은 노조 결성 이후 장기파업을 이어가던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노동자들.(2015년)

 

 

 

 

퇴보하지 않기 위해

 

 

사회주의조직이 현실의 과제 앞에 퇴보하지 않기 위해 역설적으로 노조관료들의 성장과정을 돌아보자. 그들의 강력한 무기는 일부 대중의 후진성을 부추기며 거기에 영합하는 것, 자본가들의 비위를 맞춰 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노조관료들의 성공을 설명할 순 없다.

 

노조관료들은 때로는 대중의 분노를 조직하고 압력카드로 동원하기도 한다. 그런 동원력은 거저 생긴 게 아니다. 모두 똑같지는 않더라도, 노조관료들의 배경에는 투쟁의 역사가 있다. 그것은 동시에 배신의 역사이기도 하겠지만, 그들은 끈덕지게 노동조합이 당면한 현실의 쟁점과 과제에 달라붙었다.

 

때로는 구속과 수배의 탄압도 불사했다. 그렇게 그들은 노조관료로서 ‘단련’됐고, 관료적이고 조합주의적 시각에서 대중전을 치를 수 있는 능력을 길렀다. 그렇게 누적된 오랜 역사 없이 노조관료들의 영향력은 성립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에 비하면 우리는 여전히 첫걸음을 뗐을 뿐이다. 게다가 우리는 대중 속의 후진성에 영합하지 않고 원칙을 지키려고 한다. 그래서 더 어려울 것이고, 더 많은 경험과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더 끈기 있게 운동에 달라붙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도전하는 것 외에 사회주의조직의 약점을 극복할 다른 길은 없다. 당연히 오류와 실책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진지한 태도가 그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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