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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혁명 연재⑤]

자본주의 경제위기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최고 해결책은?

 

이용덕

 

 

 

8면 공장위원회.jpg

1917년 러시아의 공장위원회. 

 

 

 

공장에서의 이중권력

 

1905년에 등장한 소비에트(노동자평의회)는 주로 정치총파업을 조직하기 위한 위원회였다. 페테르부르크 소비에트는 3일 만에 공장 노동자 500명당 한 명의 대의원을 기준으로 뽑힌 226명의 대의원들을 모았다. 1917년에 소비에트는 국가권력의 상당한 부분을 자신의 수중에 집중시킨 대중적 권력기구로 부상했다. 3월 17일에 49개 도시들에 소비에트가 있었다. 5일 뒤에는 77개가 되었고, 6월에는 519개가 되었다. 소비에트의 반대편에는 정통성 있는 국가권력이라고 주장하는 임시정부가 있었다.

 

소비에트가 국가적 수준의 이중권력이었다면 공장위원회는 공장에서의 이중권력이었다. 전쟁이 불러온 사회적 위기가 격화되자 자본가들은 생산을 줄이려 했고, 기술자들은 도피했다. 노동자들은 공장을 지속적으로 가동하기 위해 움직였다. 공장위원회는 각 공장에서 개최되는 대중집회를 통해 선출됐다. 공장의 모든 노동자를 가입시킨 공장위원회는 2월 혁명 이후에 조직된 수많은 집단 가운데 일반노동자들에게 가장 가까운 조직이었다.

 

 

노동자들이 생산을 조직하다

 

공장위원회는 8시간 노동제를 전면적으로 제기했다. 그런데 그런 정도의 경제 투쟁은 한계가 많았다. 임금 인상이 받아들여지더라도 생필품과 숙소 가격의 끊임없는 상승이 이 인상분을 하찮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공장위원회는 원료와 연료공급을 감시하고 생산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감독했다. 그런데 그런 감시와 감독만으로는 노동자들의 생존을 지킬 수 없었다. 공장 폐쇄를 포함한 자본가들의 사보타주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공장위원회에 생산을 조직하는 임무를 맡기는 것으로 대응했다.

 

하르코프 시의 헬페리히사데 공장 경영진이 9월에 노사분규를 이유로 공장을 폐쇄하려 하자 공장위원회는 특별위원회의 감독 아래 작업을 계속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하르코프의 대형 기관차 공장에서는 더 강력한 조처들이 사용됐다. 케렌스키는 9월 20일 다음과 같은 내용의 전보를 받고 잔뜩 긴장했다. “공장의 관리자와 모든 경영진이 노동자들에게 체포됐다. 지역의 군 당국과 민간 당국은 완전히 무기력하다.” 이 마지막 말이 1917년에 얼마 자주 사용됐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당시는 형식적 합법성과 사유재산권의 가치가 땅에 떨어진 때였으니 말이다. (<레닌평전 2>, 토니 클리프, 책갈피, 332쪽)

 

 

권력이 없는 통제는 공문구일 뿐

 

그러나 이것은 일시적인 해결책일 뿐이었다. 경제적 혼란과 파탄, 실업은 한 공장, 한 지역 수준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공장위원회를 통해 지역에서 이행되는 노동자 통제는 전국적 체계로 조직되어야 했다. 그리고 자본가들의 수중으로부터 공장과 기업의 소유권을 빼앗아 와야만 한다. 그래야만 노동자통제는 실질적이고 진정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권력이 그 일을 할 수 있을까? 어떤 정부가 노동력과 물자를 적절하게 배분하고, 자본가들의 생산 파괴행위를 제압할 수 있을까? 어떤 정부가 경제 파국과 기근에 맞서 실질적인 통제, 감독, 회계, 규제 조치를 실행할 수 있을까?

 

사회혁명당과 멘셰비키가 이끈 임시정부는 지주와 자본가의 최고 권력이 훼손당할까봐, 그들의 거대하고 추잡스러운 이익이 훼손당할까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레닌과 볼셰비키는 이중권력을 끝장내고 소비에트 권력을 세워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진짜 혁명적인 정부가 긴급히 실시해야 할 주요한 통제 조치를 제시했다.

 

(1) 모든 은행을 하나의 은행으로 통합하고, 그 은행의 영업을 국가가 통제한다. 즉, 은행을 국유화한다.

(2) 신디케이트, 대규모 독점자본(설탕, 석유, 석탄, 철강 등의 신디케이트)을 국유화한다.

(3) 영업비밀을 폐지한다.

(4) 기업가, 상인, 사용자의 신디케이트 결성을 강제한다(즉, 협회로 강제로 통합한다).

(5) 국민들이 의무적으로 소비자 단체를 조직하게 한다. 또는, 그런 조직을 장려하고 소비자 단체에 대한 통제를 실시한다.

 

 

누가 누구를 통제하는가?

 

레닌과 볼셰비키는 오직 은행을 국유화할 때만 국가는 어디에서 어떻게, 언제 수백만 루블, 수십억 루블이 흘러가는지 알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설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가의 입장에서 보자면 처음으로 공개된 상태에서 주요한 화폐 업무를 검토할 수 있을 것이며, 그런 다음에는 이 업무들을 통제하고, 그 다음에는 경제생활을 규제하고, 마지막으로 자본가 신사들에게 “용역”을 대가로 천정부지의 “수수료”를 지불하는 일 없이 주요한 국가 거래에 필요한 수백 만 수십 억 루블을 얻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불과 두 명의 석유 귀족이 수백만 루블, 수억 루블을 주무르고, 막대한 이익을 긁어모으고 있는 석유산업은 이미 사실상 기술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전국 규모로 조직되어 있으며, 이미 수십만 명의 직원, 엔지니어 등이 운영하고 있었다. 볼셰비키당은 즉시 이루어질 수 있는 석유산업 국유화를 지연시키거나 소득이나 회계를 감추거나, 생산을 사보타주하면 재산을 몰수하고 징역형으로 처벌해야 하고 노동자와 다른 고용인들의 주도권을 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본가들이 인민을 강탈하고 생산을 사보타주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인 영업비밀을 폐지하지 않으면 생산과 분배의 통제는 공허한 약속이 된다고 주장했다.

 

부르주아 사회는 임금 노동자의 노동이나 소득을 자신들의 공개된 장부로 간주한다. 모든 부르주아가 어떤 순간에라도 임금 노동자의 노동이나 소득을 살펴 볼 자격이 있으며, 어느 순간에라도 노동자의 “사치스러운 생활”이나 그들의 눈에 “게으름”으로 비치는 것을 폭로할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볼셰비키당은 그 반대방향의 통제는 불가능하냐고 물었다. 민주적 국가가 고용인, 사무원, 집안 하인들의 조합을 불러 자본가의 수입과 지출을 확인하고, 이와 관련된 정보를 공표하고, 소득 은닉과 싸우는 것을 도와 달라고 요청하면 어떻게 되냐고 물었다.

 

사실상 통제의 모든 문제는 누가 누구를 통제하느냐, 즉 어떤 계급이 통제하고 어떤 계급이 통제당하느냐로 요약된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은 자본가들과 부자들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통제를 확립했다.

 

 

혁명정당의 영향력

 

공장위원회가 소비에트와 함께 혁명에서 중요한 구실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볼셰비키당의 혁명적 영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멘셰비키 소속 노동부 장관 스코벨레프는 “기업체를 민중에게 넘겨주는 것은 현 단계 혁명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임시정부가 주도하는) 국가의 통제만 주장했다.

 

볼셰비키당은 산업에 대한 임시정부의 통제, 즉 ‘부르주아 자본가 정부’의 통제에 반대하면서, ‘노동자 통제’를 주장했다. 이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통제에 기반해 위로부터의 ‘노동자 국가’의 통제를 결합시킬 때 자본가계급에 맞서 노동자계급의 경제적 요구를 대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업장과 산업을 스스로 통제하려는 노동자들의 투쟁을, 자본가 통제를 부활시키려는 자본가 정부에 맞선 투쟁으로 전진시켜 노동자 권력을 위한 투쟁과 하나로 결합시켰다. 이렇게 노동자계급의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은 하나의 혁명적 노동자 투쟁으로 융합해갔다. 마침내 노동자계급은 10월 혁명을 성공시켜 사회주의 경제 건설로 나아갔다.

 

“노동자의 통제가 수립된 후에 공장을 몰수하는 데로 넘어가는 것도 또한 극히 쉬운 일이었다. … 노동자의 통제로부터 우리는 [소비에트 산하의] 최고인민경제회의 창설로 넘어갔다. 오직 이 조치만이 가까운 시일에 실시될 모든 은행 및 철도의 국유화와 함께 새로운 사회주의 경제 건설에 착수할 가능성을 우리에게 줄 것이다. …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당신들이 곧 정권이오, 당신들이 하고 싶은 모든 것을 다 하시오, 당신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가지시오, 우리는 당신들을 지지할 것이오. 그러나 생산에 관심을 돌려 생산이 잘 이루어지도록 배려하시오, 유익한 사업으로 넘어가시오, 당신들은 오류를 범할 것이지만 그러나 당신들은 배울 것이라고. 그래서 노동자들은 이미 배우기 시작했으며 그들은 벌써 생산을 사보타지하는 분자들과 투쟁을 개시했다.” (레닌, ‘제3차 전 러시아 소비에트 대회 연설’,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하여>, 앎과 함, 36~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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