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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러시아혁명4]

제국주의 전쟁은 어떻게 노동자혁명의 추동력이 됐는가?

 

유보근

 

 

 

8면 러시아혁명 연재.jpg

1917년 10월 러시아 소비에트정부가 즉각적인 휴전을 천명한 직후 러시아와 독일의 병사들이 어울리고 있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 가장 먼저 걱정하는 것은 바로 생명이다. “토지는 내가 살아있지 않으면 필요 없다.” 이것은 2017년의 한국 대중이나 1차 세계대전에 참가한 러시아의 대중을 비롯해 모든 역사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난다.

 

문제는 이 생명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에서 선택이 갈린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든든한 방어체계를 구축하면 생명을 지킬 수 있다고 믿고, 누군가는 적군을 괴멸시켰을 때 생명을 지킬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 방법들은 전쟁을 확대시키고 피해자의 수를 폭발적으로 늘려갈 뿐이다. 전쟁 그 자체에 맞서고, 이를 끝장내려는 투쟁과 혁명만이 오히려 노동자대중을 죽음의 수렁에서 건저 올릴 수 있는 가장 튼튼한 사다리임을 100년 전 러시아는 보여주고 있다.


 

 

투쟁의 위축

 

1905년 혁명이 패배한 후 러시아의 노동자투쟁은 한동안 침체기를 걷게 된다. 하지만 상처는 아무는 법, 1910년부터 투쟁은 서서히 반등하고 있었다. 1914년 초반에 벌어진 정치파업의 수치는 1905년의 그것과 맞먹었다. 전쟁은 이렇게 서서히 회복하던 노동자 투쟁의 발목을 잡고 다시 침체의 늪으로 끌고 들어가려고 했다.

 

공장에서 투쟁을 외치던 노동자들은 전선으로 끌려와서 총을 들어야 했다. 페테르부르크 노동자의 40%가 징집되었다. 파업에 대한 짜르의 공격은 더 강력해졌다. 상당수의 볼셰비키들이 체포된 것을 비롯해 볼셰비키에 대한 탄압은 거세졌고, 혁명을 외치는 목소리는 잦아들었다. 짜르는 전쟁이 시작되면서 애국주의를 더 강화하고 노동자운동을 억누르려고 했다. 이런 노력은 일시적으로 성공하는 듯했다.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

 

애국주의의 물결은 러시아에서만 발생한 것이 아니다. 전쟁의 하루 전까지 이 전쟁을 비난하던 독일 사회민주당은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입장을 바꿨다. 독일의 제국의회에서 사회민주당의원들이 전쟁예산에 찬성표를 던진 것이다. 전쟁 앞에서 관료들은 자신의 본질을 드러냈고 제2인터내셔널은 붕괴됐다.

 

독일 사회민주당의 배신은 전적으로 이 전쟁의 계급적 성격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하면서 시작됐다. 이 전쟁은 제국주의 전쟁이었고 자본가들의 자본수출과 식민지배에 대한 쟁탈전이었다.

 

다른 한편 전쟁은 자본주의의 목숨을 끝낼 혁명이 다가왔음을 알려준다. 사회주의자들은 이 전쟁에 특정 자본가들의 승리를 원해서는 안 됐다. 자국의 패배. 모든 자본가들의 패배를 통해서 혁명을 이끌어야 했다. 오로지 이것만이 이 전쟁이 노동자계급의 이익에 복무하도록 하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러시아혁명은 이 사실을 증명했다.

 

 

계급 갈등의 첨예화

 

러시아 자본가들에게 이 전쟁은 연합국(영국,프랑스 등)측으로부터 자본을 제공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리고 그들은 이 힘을 이용해 작지만 새로운 식민지(터키, 페르시아 등)를 개척할 길이 열릴 수 있다고 믿었다. 전쟁의 시작과 동시에 러시아의 군대는 패배만 반복했지만 이들은 이윤을 높이는 데에 몰두했다. 군대의 개선이라는 명목으로 군사산업위원회로부터 수십억에 이르는 돈을 제공받았다.

 

의회와 언론은 1914년과 1915년의 전쟁이윤을 일부 공개했다. 랴부신스키 가문의 모스크바 직물회사는 75%, 트베르 회사는 111%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콜추긴 구리회사는 1천만의 기초자본금에서 1천2백만이 넘는 이윤을 챙겼다.(트로츠키, <러시아혁명사>)

 

빵과 연료는 부족했지만 금과 보석은 넘쳐났다. 러시아 군대의 승패와 무관하게 자본가들에게는 전쟁을 지속할 이유만 널려있었다. 전쟁은 노동자들에게는 가난과 죽음을, 자본가들에게는 이윤과 향락을 제공했다.

 

 

전쟁, 혁명의 추동력

 

숙련 노동자들은 전장으로 떠나고 미숙련 노동자들이 그 자리를 메꾸었다. 더불어 이윤에 대한 자본가들의 탐욕은 노동조건의 대대적인 하락을 초래했다. 반면 전쟁으로 식량공급은 줄어들고 물가가 올라 노동자들의 생활비가 증가했다. 자본가들의 이윤이 쌓이는 만큼 노동자들의 처지는 하락했다.

 

전쟁 초반 애국주의의 물결로 잠들어있던 대중의 투쟁이 다시 재개되는 데는 채 1년이 걸리지 않았다. 1915년 6월 섬유공업지구의 투쟁을 시작으로 경제파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전쟁으로 황폐화된 것은 개별자본도 마찬가지였다. 1915년부터 분출한 투쟁은 시간이 흐를수록 전체 자본을 목표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1915년과 1916년의 정치파업의 횟수는 경제파업 횟수의 반에 지나지 않았지만 1917년에 와서는 경제파업의 6배로 늘어났다.

 

 

결과는 상관없다. 끝나기만 바랄 뿐

 

러시아의 낙후성은 죽음과 후퇴의 반복만 초래했다. 승리는 딴 나라 이야기였다. 끝없는 패배 속에서 애국주의의 마약도 곧 효력을 다했다. 전장에 있는 모든 병사, 노동자들은 생각한다. 하루빨리 전쟁이 끝나기를! 이런 분위기는 전방에 있는 병사뿐만 아니라 후방에서 전방에 투입되기를 대기하고 있는 병사(예비군)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어떤 노동자와 병사도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 왕정을 비롯한 지배계급을 증오했고 독일군과 싸우기보다는 화해하고 싶어 했다. 그리고 이런 정서는 군대 내 반란으로 이어졌다.

 

2월 23일 시작된 혁명에 짜르는 진압명령을 내렸다. 26일 밤 볼란스키 연대의 병사들이 처음 반란을 시작했고, 27일 이 반란은 확산됐다. 혁명과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투입된 부대들은 군중 속에서 흩어졌다. 병사들은 전쟁을 끝낼 수 있고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은 러시아·짜르의 승리가 아니라 바로 혁명이라고 생각했다.

 

 

혁명을 통해서 전쟁을 끝낼 것인가?

전쟁을 이용해서 혁명을 끝장낼 것인가?

 

전쟁은 대중을 행동하게 만들었다. 제국주의 전쟁 속에서 자본주의의 파괴적인 본성은 곳곳에서 드러났다. 1917년 2월 혁명은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요구하는 노동자와 병사의 결합으로 완성됐다. 하지만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전쟁은 전쟁을 통해서 혁명을 중단시키려는 자들과 혁명을 통해서 전쟁을 중단시키려는 자들을 선명하게 대립시켰다. 2월 혁명 이후 정권을 잡은 임시정부의 자본가들과 개량주의 세력들은 전쟁을 멈추기는커녕 혁명을 애국주의로 뒤집어씌우려 했다. 짜르의 군대질서를 복원하려고 했고 병사들이 쟁취한 군대 내부의 통제력을 다시 빼앗으려고 했다. 옛 장교들이 돌아왔다. 러시아·독일·오스트리아 병사들의 참호 속 우애활동은 금지했고 다시 서로 총구를 겨누도록 명령했다.

 

노동자들은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쟁에 맞서 싸우기 위해 혁명에 참여했다. 끝나지 않은 전쟁은 노동자계급이 혁명을 제대로 완성하기를 요구하고 있었다. 그리고 10월, 다시 한 번의 혁명을 통해서 러시아 노동자계급은 이 요구에 응답했다. 모두 평화를 원한다. 평화는 전쟁에 시달린 대중을 행동에 나서게 하는 주요한 구호다. 하지만 이 평화는 오로지 이 평화를 가로막는 자본가들에 대한 투철한 투쟁을 통해서만 쟁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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