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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자 소비에트

노동자 단결투쟁에서 탄생해, 노동자권력으로 우뚝 섰던 위대한 노동자 조직

 

최영익 노동자운동 연구공동체 뿌리

 

 

 

8면 러시아 소비에트.jpg

1917년 혁명 당시의 소시에트 대회

 

 

 

러시아 1917년 10월 노동자 혁명을 말할 때, 절대 빠질 수 없는 이름이 있다. 바로 ‘노동자 소비에트’다.

‘노동자대표자협의회’로 번역될 수 있는, 이 소비에트는 10월 혁명을 주도했던 투쟁조직이었을 뿐만 아니라

이 혁명을 통해 탄생한 노동자권력, 즉 노동자정부 그 자체이기도 했다. 이 소비에트의 본질은 무엇이었을까?

 

 

소비에트의 근원

 

소비에트를 단순한 조직형태가 아니라 그 속에 담긴 노동자계급의 정신을 중심으로 이해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작업장이나 지역 단위로 1,000명 또는 500명의 노동자당 한 명꼴로 노동자 대표자를 선출하고, 이들로 지역 나아가서 전국적 수준에서 노동자 대표자 협의회를 구성한 것이 소비에트의 조직적 모습이었다. 정말이지 아주 간단한 조직적 형식이었다. 어떤 필요 때문에 러시아 노동자계급은 소비에트를 탄생시켰을까?

 

바로 위력적인 투쟁을 조직하고, 노동자 전체를 하나로 단결시켜야 할 절실한 필요 때문이었다. 경제파업과 정치파업을 결합시켜 위력적인 대중파업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작업장의 범위를 뛰어넘어 노동자 전체를 하나로 결합시켜야 했다. 하지만 단순히 자신의 작업장에서 임금과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것만 목표로 했다면, 소비에트라는 조직적 무기를 통해 전체 노동자들을 하나의 투쟁조직으로 결집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또한 자본가권력을 노동자권력으로 대체해 이 사회의 주인공으로 전진하겠다는 결의가 없었어도 소비에트는 불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 노동자계급은 그렇게 멀리 전진하고자 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것에 필요한 자신의 무기를 소비에트로 벼려냈다. 그 과정은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러시아 노동자계급과 그 전위들의 오랜 기간에 걸친 처절한 분투가 필요했다.

 

 

소비에트의 등장

 

소비에트는 1905년에 등장했다. 1890년대부터 러시아 노동자 파업의 전통은 공단순회선동을 통해, 공장의 담벼락을 뛰어넘어 지역 노동자 전체를 함께 단결시키는 것이었다. 이런 전통 위에서, 1905년 초에 광범위한 경제파업의 물결이 러시아 전체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급기야 1월 22일, 약 20만 명의 노동자들이 페테르부르크에서 니콜라스 2세가 거주하고 있는 동궁 앞으로 행진했다. 노동자에게 선거권을 주고,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라는 요구에 황제는 무차별 살인으로 답했다. 이로부터 노동자들은 대대적인 투쟁으로 들고 일어나기 시작했는데, 이 투쟁이 전진하기 위한 필요조건은 바로 노동자들이 폭넓게 단결하는 것이었다.

 

노동자의 절실한 권리는 황제에게 청원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투쟁을 통해서만 쟁취할 수 있다는 자각이 노동자들을 투쟁으로 일깨웠다. 40개가 넘는 대도시의 노동자들이 파업의 물결 속에서 스스로 대표를 뽑아 시 차원의 공동파업위원회를 만들었다. 이 위원회는 해당 지역의 노동자계급을 대변했는데, 노동자 대표 소비에트라 불렸다. 이처럼 소비에트의 기원은 노동시간단축, 임금인상, 해고금지라는 절실한 공통의 요구를 지역 노동자들이 하나로 단결해 결사적인 투쟁을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필요였다.

 

하지만 초기 소비에트는 아직 지역 수준을 크게 뛰어넘지 못했고, 또한 노동자권력을 수립하겠다는 확고한 의지 또한 갖고 있지 않았다. 심지어는 정치투쟁을 능동적으로 조직하는 기구도 아니었다. 소비에트가 정치투쟁의 조직자이자, 노동자권력의 맹아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투쟁과 단결, 노동자 의식의 확대가 필요했다.

 

 

정치투쟁의 조직자이자, 노동자정부로의 도약

 

전진의 방향을 제시한 것은 러시아 노동자계급의 대중적 선진 부위였다. 러시아의 핵심 공업 도시이자 수도였던 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의 노동자들, 특히 페테르부르크의 비보르크 지구 노동자들은 짜르 정부에 맞선 정치파업에 떨쳐 일어났다. 이것은 자연스레 소비에트를 지역적 수준을 넘어서서 전국적 수준의 노동자 대표자 기구로 밀어 올렸다.

 

동시에 소비에트의 성격을 경제투쟁만이 아니라 정치투쟁을 조직하는 기구로 탈바꿈시켰다. 가장 선진적인 지역과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전개하는 정치투쟁과 이제 막 투쟁에 눈을 뜨기 시작하는 후진 부위의 경제투쟁이 대중파업으로 맞물렸다.

 

소비에트는 충분한 힘을 갖고 있는 작업장과 지역에서 일종의 노동자정부처럼 기능했다. 그 곳의 노동자대중에게 절대적인 권위를 누렸을 뿐만 아니라 노동자권리를 전적으로 대변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 소비에트는 짜르 정부와 공존할 수 없었고, 필사적인 격돌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1905년에는 러시아 노동자들이 충분히 준비되어 있지 못했다.

 

대중적 선진 부위의 결사적인 시도에도 불구하고, 후진 부위를 정치투쟁 부대로 결속하려는 노력은 충분히 성공하지 못했다. 대중적 선진 부위 또한 소비에트를 새로운 정부, 권력으로 밀어올리는 데 필요한 대담성과 확신을 충분히 갖고 있지 못했다. 그래서 1905년 혁명은 성공하지 못했다.

 

 

1917년, 소비에트가 부활해 승리하다!

 

1905년 혁명은 1917년의 예행연습이었다. 1917년 2월, 짜르 체제가 흔들리자, 기회가 왔음을 직감한 노동자들은 들고 일어났다. 1905년의 경험 속에서 단련된 그들은 이번에는 승리자가 되기에 충분했다. 1917년 2월 마치 잘 짜인 각본의 배우처럼, 노동자들은 행동했다. 노동자들은 즉각 소비에트를 전국적 수준에서 건설해 짜르 정부를 간단히 무너뜨렸다.

 

노동자들은 소비에트로 똘똘 뭉쳐 있었고, 무장하고 있었다. 노동자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소비에트를 노동자정부로 전환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자신이 새로운 권력을 세워, 스스로 세상을 운영할 수 있음을 충분히 확신하지 못했다.

 

그런 허점을 자본가계급이 파고들었다. 자본가계급은 임시정부라 불렸던 자본가정부를 세워, 노동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이 호소에 소비에트의 기회주의 지도자들이 응답했다. 이들은 소비에트에 권력으로 전진하지 말고, 단순히 야당으로 남아 있으라고 요구했다. 이렇게 소비에트 지도자들이 권력 장악을 겁내는 사이, 자본가정부는 짜르 장군들을 재소집해서 쿠데타를 준비했고, 이를 통해 소비에트를 박살내버리려 했다.

 

이에 맞선 투쟁 속에서, 소비에트로 결집한 러시아 노동자계급은 자본가정부를 넘어서서 노동자 권력을 세워야겠다고 결단했다. 소비에트로 단결한 노동자계급이 진실로 희망했던 일자리, 인간다운 삶, 자유, 평화는 소비에트가 권력으로 전진해야만 달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노동자들은 세상의 주인이 되고자 했는데, 그것은 소비에트를 노동자정부로 세워냄으로써만 비로소 시작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1917년 10월에 노동자들은 자본가정부를 무너뜨리고 소비에트 정부, 즉 노동자권력을 수립했다.

 

이처럼 소비에트는 노동자계급의 힘의 조직적 표현이었고, 나아가서 노동자계급이 해방되어 사회의 주인공으로 우뚝 서는 것을 표현했다. 이러한 의지는 러시아 노동자계급만이 갖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똑같은 의지를 가졌던 세계의 노동자들은 독일에서는 레테, 이탈리아에서는 공장평의회, 한국에서는 전평(전국노동조합평의회) 등을 만들어 자본주의 체제에 도전했다.

 

이 모든 위대한 도전들은 승리하지 못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당장’ 승리하지 못했을 뿐이다. 노동자가 세상의 주인공이 되겠다는 위대한 결의로 들고 일어날 때 소비에트는 다시 찬란히 부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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