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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 10년 전 파업

정규직 · 비정규직이 함께 파업해 온전한 정규직화 쟁취하다

 

 

 

5면 서울대병원.jpg

우리는 정규직 조합원들에게 비정규직 문제를 알리고 교육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왜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이해가 같은지, 왜 노동자가 기업의 벽을 넘어 단결해야 하는지를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계속 알렸다.

 

 

 


 

문재인 정부와 SK브로드밴드를 비롯한 민간 자본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떠벌리고 있지만, 실상은 모두 자회사, 무기계약직, 별도 직군 등을 통한 무늬만 정규직화일 뿐이다. 온전한 정규직화는 오직 노동자들의 단결투쟁을 통해서만 쟁취할 수 있다. 그 점에서 10년 전 서울대병원 파업은 우리 모두가 기억할 가치가 있다.


노무현 정부와 자본가들은 전체 노동자의 60%에 육박하는 비정규직을 합법적으로 영원히 비정규직으로 고용하고, 그것을 통해 정규직조차 구조조정하고 비정규직화하려고 비정규직법을 2006년 국회에서 강행 처리했다. 또한 비정규직 양산이 정규직 책임인 양 매도했다.


개악된 비정규직법은 곧바로 현장을 향해 칼을 들이댔다. 서울대병원 사측은 2006년에, 2년 이상 일한 비정규직 239명에 대해 단계적 정규직화를 합의했고 2년 미만의 비정규직이라 해도 “2년이 되었다는 이유로 해고하지 않겠다”고 병원장이 단체교섭에서 약속까지 했다. 하지만 2개월도 지나지 않은 2006년 12월, 병원은 2년 미만 비정규직을 대량해고했다. 노조가 저항하자 계약해지자들을 3개월, 1개월, 18일 심지어 10일로 계약을 연장한 뒤 산발적으로 해고했다.

 

또한 사측은 노사 합의한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대해서는 “무기계약 정규직으로 하겠다”며 별도직군 신설을 통한 분리직군제의 저의도 보였다. 더욱이 2001년에 13일간 파업해 폐지시킨 6급 직급을 부활시켜 또 다른 형태의 비정규직을 양산, 확대하고 정규직을 구조조정하려는 속내까지 보였다.


이에 맞서 서울대병원 노동조합은 ‘비정규직 정규직화, 구조조정 저지, 공공의료 강화’ 등을 요구하며 2007년 10월 10일부터 6일간 파업해, 무기계약직도 아니고 새로운 직군도 아닌 온전한 정규직화를 쟁취했고, 2년 미만 비정규직의 고용보장을 이끌어냈다.


이 파업에는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비정규직도 함께했다. 이것은 서울대병원 노조 역사상 직접고용 비정규직이 파업에 참가한 첫 번째 사례였기에 큰 의미가 있었다. 다음은 당시 투쟁 지도부의 일원이었던 윤태석 동지를 인터뷰한 것이다.
 


 

 

Q. 당시에 비정규직은 파업에 얼마나 참가했는가?

 

A. 숫자는 적었다. 하지만 직접고용 비정규직 당사자가 객체가 아닌 주체로서 최초로 파업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저희도 걱정했다. 본인이 감당해야 할 부분도 있는데, 그 준비가 됐는지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걱정은 기우였다. 그들은 지금 정규직으로서 대의원 활동 등 노조활동을 열심히 하고 계신다.

 

 

Q. 당시 정규직 파업 분위기는 어땠나?

 

A. 2004년 장기파업의 후유증(무노동무임금 등)이 컸다. 그런데도 현장노동자들이 다시 파업에 나왔던 것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문제의식이 매우 강했기 때문이다. 검사실 등에서 근무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하는 일이 같다. 하지만 정부의 정원 규제와 사측의 인건비 절감정책 때문에 비정규직이 많이 들어왔다.

 

그런데 검사실 근무자 등은 전문직이다 보니 학교 인맥으로 연결된다. 그래서 정규직이 비정규직에 대해 미안함을 느꼈다. 더 중요한 것은 비정규직이 너무 많다 보니 업무가 안 돌아간다는 것이다. 오버타임은 있는데 정규직은 적어서 감당이 안 됐다. 인간적으로 안됐다는 것을 넘어 일이 안 된다. 이런 정서가 팽배했다. 당시 직접고용 비정규직이 전체 1,000명이나 됐다. 그래서 투쟁동력 있었다.


간호조무사, 환자 이송 담당, 식당 노동자의 경우에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일했다. 그런데 그쪽 정규직의 경우에도 비정규직이었다가 정규직이 된 노동자들이 많았다. 이들은 비정규직 문제를 잘 알았고, 정규직화에 대해 잘 동의했다.

 

 

Q. 병원 측이 왜 6급을 부활시키려 했는가?

 

A. 간호사는 5급부터 시작한다. 그런데 검사실에 근무하는 의료기사는 6급부터 시작한다. 그래서 2001년에 파업하면서 6급을 철폐해 의료기사도 5급부터 시작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비정규직법이 통과되면서 병원이 별도의 임금체계를 만들려고 6급 직급을 부활시키려 했다. 6급을 신설한 다음, 신규사원을 6급으로 뽑아 그쪽 인원을 늘리면 노동자 분열이 확대된다.

 

병원 측은 일단 6급을 만든 다음에 나중에 5급으로 편입하겠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어떻게 믿는가? 그리고 똑같은 일을 하는데 왜 임금이 달라야 하는가? 그래서 파업을 통해 6급 신설을 저지하고, 비정규직을 기존 정규직 직급 체계에 통합시키는 온전한 정규직화를 쟁취했다.

 

 

Q. 서울대병원노조는 비정규직을 어떻게 조직했는가?

 

A. 2006년에 서울대병원 전체 직접고용 비정규직의 약 30%에 해당하는 239명에 대해 단계적 정규직화를 쟁취하는 과정에서 현장조합원들이 주축이 돼 비정규직 대책위를 만들고 조직화 사업을 시작했다. 구성원들은 대부분 비정규직이 많은 과에서 일하거나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이 많은 대의원 또는 전 대의원들이었다.

 

먼저 전체 비정규 노동자모임을 통해 현장에서 일하는 비정규 노동자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했다. 이후에는 직종별·부서별 과모임을 통해 비정규직 대표를 뽑고, 이후 3주간 퇴근 후에 비정규 노동자 배움터를 진행해 60여 명의 비정규직에게 노조 가입원서를 받고 비정규직 권리 교육도 했다.

 

그리고 임단투를 앞두고 2주 1회 정기 모임을 통해 현안을 공유하고 투쟁을 결의했다. 그 결과 비정규 노동자도 파업에 참가할 수 있었다.

 

 

Q. 병원 측이 비정규직을 해고하지는 않았는가?
 

A. 병원은 노무현 정부가 통과시킨 비정규악법을 이용해, 2년 미만의 비정규직을 여러 차례 해고했다. 교섭 자리에서는 2년 미만 노동자를 해고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가령, 2007년 7월 2일에 2년을 일했다는 이유로 부서장도 요청한 재계약에 대해 계약연장을 거부하며 상시업무 비정규직 노동자 2명을 해고했고, 그 업무에 3주짜리 아르바이트를 투입하려 했다.

 

이 부당해고에 맞서 당사자는 1인 시위를 했고, 대의원들이 함께 환자보호자 선전전 및 서명운동을 했다. 이후에도 이런 투쟁이 여러 차례 있었는데,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내건 투쟁과 교육을 끊임없이 한 덕분인지 정규직 현장 간부와 조합원들이 비정규직 해고 저지 투쟁을 오랫동안 함께했다.

 

 

Q.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어떻게 조직했는가?

 

A. 직접고용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투쟁을 한 뒤, 의료연대 서울지역지부 활동을 하면서 시야가 확대됐다. 당시 서울대병원 시설관리 부문의 사용자가 근무체계를 새로 만들면서 인원은 덜 뽑고 일은 밤새 시키면서 임금은 줄이려 했다. 그래서 서너 명의 노동자가 우리 노조에 찾아와, 함께 논의한 다음 시설관리(성원개발) 분회를 만들어 학습도 하고 조직화도 했다.

 

그 뒤엔 CJ 회사가 들어와 다 해고된다고 하니 식당 노동자들이 우리 노조에 찾아와 식당 분회를 만들었다.

 

시설관리 노동자들과 식당 노동자들은 임금도 올리고 단협도 쟁취하는 좋은 결과를 냈다. 비정규 대책위는 이런 소식을 소식지로 계속 알렸다. 자신감이 생겨서 시설관리 노동자가 청소노동자도 조직해보자고 했다. 하청노동자가 다른 하청노동자를 조직하자고 한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는 민들레분회도 만들었다.

 

 

Q. 다른 병원보다 서울대병원에서 비정규직이 많이 조직되고, 비정규직 투쟁이 많이 벌어지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A. (조심스럽긴 하지만) 집행부의 의지 차이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게 가장 큰 듯하다. 2007년 파업 때를 되돌아보면, 온전한 정규직화가 아니면 합의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당시 집행부가 확실히 갖고 있었다.

 

우리는 정규직 조합원들에게 비정규직 문제를 알리고 교육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하면 우리에게 손실이 생기지 않느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왜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이해가 같은지, 왜 노동자가 기업의 벽을 넘어 단결해야 하는지를 소식지든 현장순회든, 하루교육이든 특강이든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계속 알렸다.

 

언젠가 간접고용 식당노동자들이 파업해서 밥이 안 나온 적이 있었다. 이런 경우 시간이 부족해 밖에 나가서 밥을 먹기 힘들다. 그런데 어느 평범한 정규직노동자가 “내가 한 끼 굶어서 이 식당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이 좋아진다면 굶겠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비정규직 파업을 지지하는 정규직의 의식을 알 수 있어서 흐뭇했다.

 

정리 박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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