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본문시작

[러시아혁명 연재②]

 

“우리는 꿈을 꾸어야 한다” - 러시아혁명을 알아야 할 이유

 

오연홍 노동자운동 연구공동체 뿌리

 

 

 

10면 러시아혁명2.jpg

1917년 수도 페테르스부르크의 푸틸로프 공장 노동자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무려 100년 전에 벌어진 사건에 대해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가 있을까? 게다가 이 나라에서 일어난 것도 아니고 머나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1917년 러시아혁명이 바로 그런 사건이다.

 

사실 많은 독자들에게 러시아혁명이란 낯설게 다가올 것이다. 학창시절에 프랑스혁명이나 영국명예혁명 등을 배우긴 했겠지만, 러시아혁명에 대해선 들어보지도 못했거나, 수박 겉 핥기로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이런 사실로부터 한 가지 결론을 끌어낼 수 있다. 지배계급은 러시아혁명에 관한 이야기가 널리 퍼지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가급적 러시아혁명이라는 빛나는 사건을 감추고 싶어 한다.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일어나선 안 될’ 사건

 

1917년 러시아에서 일어난 혁명은 역사상 가장 대규모로, 그리고 가장 높은 수준으로까지 전진한 노동자혁명이었다. 러시아혁명 이전에도 혁명적인 방식으로 노동자권력이 세워진 사례가 있다. 1871년 프랑스 파리코뮌이 그것이다.

 

하지만 파리코뮌은 단명했다. 두 달 정도 버틴 뒤 지배계급의 공격에 무너졌기 때문에 그 잠재력을 꽃피울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했다. 더욱이 1871년의 프랑스는 아직 대공장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산업이 전면적으로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파리코뮌이라는 혁명정부에서도 산업노동자계급의 역사적 주도력이 온전히 발휘되지 못했다.

 

러시아혁명은 파리코뮌의 역사적 한계를 훌쩍 뛰어넘었다. 출발점에서부터 한 지역에 국한된 사건이 아니라, 1차 세계대전이라는 국제적 위기를 바탕으로 등장한 국제적 사건이었다. 스탈린 반혁명이 일어날 때까지 비교적 오래 유지되면서 러시아혁명은 노동자혁명이 겪게 될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난관과 과제를 다양하게 펼쳐보였다. 또한 농민이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면서도, 대공장 산업노동자들의 응집력은 독일을 능가할 정도로 강력했다는 점 덕분에 러시아혁명정부의 성격은 노동자계급적 색채를 뚜렷하게 보여줬다.

 

 

위대한 거인들

 

러시아혁명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노동자들이 새로운 사회세력으로 재탄생하는 모습을 극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인상적이다. 1917년 러시아혁명의 나날을 기록한 미국인 기자 존 리드는 이런 글을 남겼다.

 

“수많은 강연, 논쟁, 연설이 극장, 원형극장, 학교, 술집, 소비에트 집회장, 조합본부, 병영, 전방의 참호, 마을의 광장, 공장의 모임들에서 진행됐다. 푸틸로프 공장에서는 노동자 4만 명이 쏟아져 나와 사회민주당, 사회혁명당, 무정부주의자들과 뭔가를 말하려는 모든 사람의 주장을 경청하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나는 이 병사들처럼 사태를 이해하고 결정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다. 이들은 꼼짝도 하지 않고, 무서울 정도의 집중력으로 연설을 경청했다. … 어린 아이처럼 순수한 눈과 서사시에 등장하는 전사의 얼굴을 한 위대한 거인들처럼 보였다.”

 

 

놀라운 잠재력

 

이런 사실은 아주 의미심장하다. 지금껏 우리 시대를 지배해온 이데올로기는 이런 것이다. 노동자는 근면한 자세로 생업에 종사하는 게 바람직하고, 정치는 정치가들에게 맡기는 게 순리다. 만약 정치가들이 일을 제대로 못한다면 다음 선거를 기다려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면 된다.

 

러시아에서 일어난 노동자혁명은 이런 거짓 이데올로기를 대담하게 날려버렸다. 노동자는 더 이상 자본가 앞에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세상은 원래 그런 거라며 체념하지도 않았다. 떠들썩하지만 하는 일은 없는 의회에 목을 매지 않고, 스스로 토론하고 결정하고 집행하는 자신들의 권력을 세워냈다. 노동자가 결코 허약하고 무능력하고 불쌍한 사람들이 아니라, 투쟁 속에서 자신의 잠재력을 끌어내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위대한 혁명계급이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반동권력의 일부였던 한 장군은 이 놀라운 사건 앞에 혼란에 빠진 채 절규했다. “일용노동자가 시장이 된다. 자물쇠 제조공이 공장주가 된다. 짐꾼이나 경비원이 갑자기 재판장이 된다. 병원의 조수가 병원장이 된다. 이발사가 관리가 된다. 병사가 총사령관이 된다. 누가 이 사실을 믿겠는가?”

 

 

노동자계급의 기억

 

지배계급은 노동자들이 새로운 세상을 꿈꾸지 못하도록 때로는 은밀하게, 때로는 노골적으로 압박한다. 그 꿈을 잊은 채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데 만족하도록, 아니 그것만으로도 허덕이도록 몰아간다.

 

러시아혁명은 노동자들이 잊고 살아가는 꿈이 무엇인지 상기시켜준다. 노동자들에게 새로운 세상이 가능하다는 진실을 알려준다. 절망과 체념이 아니라 희망의 근거를 쥐어준다. 바로 그만큼, 지배계급에게 러시아혁명은 감춰야 할 역사, 지워야 할 역사다. 우리에게 그것은 거듭 발굴하고 되새기고 널리 알려야 할, 노동자계급 자신의 기억이다.

 

 

 


 

 

다시 한 번 “우리는 꿈을 꾸어야 한다”

 

 

이 말은 러시아혁명가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인용한 문구다. 이어서 레닌은 “불행하게도 우리 운동에는 이러한 종류의 꿈꾸기가 너무 적다”고 일갈했다.

 

레닌과 볼셰비키는 러시아혁명을 거치며 ‘새로운 유형의 당’을 건설했다. 그 이전 시대에 전형적인 노동자당은 독일사회민주당 같은 개량정당이었다. 개량정당의 일상은 좀스러운 개량주의, 조합주의 관점으로 덧칠됐고, 혁명이란 꿈은 평화로운 주말집회의 설교 주제 같은 것으로 전락했다. 그들의 삶은 단조로운 개량주의적 실천과 공허한 추상적 혁명선전의 기괴한 혼합물이 됐다.

 

러시아혁명은 노동자계급의 선진부위가 이 역사적 한계를 돌파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레닌이 “이러한 종류의 꿈꾸기가 너무 적다”고 한탄했을 때, 그는 사회주의자들이 대중의 ‘낮은 수준’을 핑계 대며 그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꽁무니주의에 빠져선 안 된다고 역설한 것이었다. 러시아혁명이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며 역사적 고비를 맞을 때마다 레닌은 노동자운동 속에서 나타난 꽁무니주의를 규탄하며, 투쟁을 이끌어가야 할 선진부위의 임무를 강조했다. 그렇게 해서 볼셰비키는 새로운 유형의 당, 즉 혁명정당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한국의 노동자운동이 후퇴하고 정치적으로 해체되면서 이와 같은 레닌의 관점도 ‘죽은 개’ 취급을 받고 있다. 이는 노동자계급의 기억을 희미하게 만드는 행위다. 기억을 잃은 계급은 방향감각을 잃고 방황하게 된다. 우리 운동을 전진시키고자 한다면, 러시아혁명이라는 역사적 사실과 더불어 그 주요 국면을 수놓았던 혁명가들의 주장과 토론의 성과를 배우는 데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27 [러시아혁명 연재③] '노동자 소비에트' 노동자 단결투쟁에서 탄생해, 노동자권력으로 우뚝 섰던 위대한 노동자 조직 file 노건투 2017.07.27 55
226 [투쟁의 기억] 서울대병원 10년 전 파업 정규직 · 비정규직이 함께 파업해 온전한 정규직화 쟁취하다 file 노건투 2017.07.24 137
» [러시아혁명 연재②] “우리는 꿈을 꾸어야 한다” - 러시아혁명을 알아야 할 이유 file 노건투 2017.07.12 105
224 한미정상회담에서 드러난 자본가정부의 두 가지 민낯 file 노건투 2017.07.06 63
223 [러시아혁명 연재①] 러시아노동자들은 어떻게 정권교체의 환상을 넘어 전진했는가? file 노건투 2017.06.29 115
222 “사장들 없어도 우리는 생산할 수 있다” - 2001년 이래 노동자통제 아래 있는 아르헨티나 사농(Zanon)공장 file 노건투 2017.06.05 136
221 거인처럼 보였던 버라이즌, 파업노동자가 더 큰 거인이었다 file 노건투 2017.06.02 70
220 [투쟁의 기억(연재)]1987년 7·8·9 노동자대투쟁 (6) 노동자대투쟁을 거울삼아 노동자계급의 총단결·총투쟁을 조직하자 file 노건투 2017.05.01 120
219 [투쟁의 기억(연재)] 1987년 7‧8‧9 노동자대투쟁(5) 투쟁의 정점과 내리막길 file 노건투 2017.04.17 105
218 [투쟁의 기억(연재)] 1987년 7‧8‧9 노동자대투쟁 (4) 노동자계급은 전국적 세력 : 인천‧경기‧서울로, 운수와 광산업으로 확산되는 대투쟁 file 노건투 2017.04.03 184
217 [투쟁의 기억(연재)] 1987년 7·8·9 노동자대투쟁 (3) 부산, 마산·창원으로 투쟁의 불길이 번지다 file 노건투 2017.03.21 173
216 [투쟁의 기억(연재)] 1987년 7·8·9 노동자대투쟁 (2) 노동자대투쟁의 시작-울산에서 불길이 솟구쳐 오르다 file 노건투 2017.03.06 163
215 [투쟁의 기억(연재)] 1987년 7·8·9 노동자대투쟁 (1) - 노동자대투쟁의 배경 file 노건투 2017.02.16 188
214 [투쟁의 기억]프랑스 68년 5월 노동자계급의 잠재력과 과제를 뚜렷하게 보여주다 file 노건투 2017.02.09 120
213 노동자민중은 왜 블랙리스트를 아주 뒤늦게 알 수밖에 없는가 file 노건투 2017.02.05 61
212 빈 수레가 요란한 문재인의 일자리 정책 file 노건투 2017.02.03 162
211 올바른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해 위험한 경향과 맞서야 file 노건투 2017.02.03 186
210 [투쟁의 기억] 박정희 사망 후 타오른 80년 봄 노동자투쟁 file 노건투 2017.01.21 81
209 [투쟁의 기억]4·19와 이승만 하야 그리고 노동자투쟁의 분출 file 노건투 2017.01.10 89
208 [박근혜퇴진투쟁]촛불이 기억해야 할 역사의 가장 위대한 유산 1917년 러시아 10월 혁명과 노동자 민주주의 file 노건투 2016.12.30 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