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본문시작

“사장들 없어도 우리는 생산할 수 있다”

2001년 이래 노동자통제 아래 있는 아르헨티나 사농(Zanon)공장

 

 

 

9면 사농.jpg

 

 

 


아래 글은 아르헨티나 사농공장 노동자 라울 고도이(Raúl Godoy) 인터뷰 기사다. 고도이는 네우켄 지역 세라믹노조를 노조관료들로부터 탈환한 뒤 초대 사무총장을 맡았고, 아르헨티나 사회주의노동자당(PTS) 전국지도부 소속이기도 하다. 사농공장 노동자 자주관리운동의 의미와 약점에 대해선 <노동자세상> 152호에서 다룬 바 있다. 이 인터뷰는 노동자통제 아래 사농세라믹공장을 점거한 지 10주년이 되는 2011년에 이뤄졌다.


 

 

질문: 2011년 10월 1일은 사농공장 점거 10주년이 되는 날이다. 점거는 금융위기 한복판에서 시작됐다. 이것은 오늘날 어떤 의미를 갖는가?

 

고도이: 사농공장에서의 투쟁은 아르헨티나 자본주의 위기에 맞선 계급투쟁적 응답이었다. 그 무렵 우리는 거의 2,000개나 되는 공장이 폐쇄되는 걸 목격했다.

 

최초의 응답은 실업노동자들의 조직에서 나왔다. 곧바로 직장폐쇄와 해고에 맞선 첫 번째 공장점거가 이뤄졌다. 이런 시도는 사적 소유에 의문을 제기했을 뿐더러, 자본가들이 없어도 된다는 점을 보여줬다. “사장들 없어도 우리는 생산할 수 있다”는 발상이 아르헨티나 곳곳에서 되풀이 나타났다.

 

우리 경험은 파산, 직장폐쇄, 실업에 대해 노동자들이 노동자계급적이고 민중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능력이 있다는 점을 작은 규모로 증명했다. 그것은 자본가들에게 위기의 대가를 지불하게 만드는 것이다.

 

앞으로 몇 주간 우리는 공장을 점거하기로 결정했던 당시의 나날을 상기할 것이다. 또한 우리는 미래를 대비하려는 많은 노동자들에게 우리의 투쟁이 기여하고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질문: 투쟁 과정에서 가장 주요한 대목은 어떤 것이었나?

 

고도이: 우리가 처음으로 한 건 현장위원회를 몬테스(Montes) 일당의 관료적 지배로부터 되찾은 것이다. 그들은 자신을 회사에 팔아넘겼다. 우리는 몇 가지 기본 목표를 제시했다. 예컨대 모든 결정은 총회에서 내릴 것이다, 모든 대표자는 소환할 수 있어야 한다, 정규직 노동자와 계약직 노동자 모두의 권리를 동등하게 지켜낼 것이다 등. 투쟁에서 우리가 가장 앞세우는 건 노동자대열의 단결이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여러 동지들과 나란히 일하러 갔고, 최초의 충돌 이후 사농 경영진이 주도면밀하게 진행한 설비 반출과 공장폐쇄에 맞선 투쟁에 이르기까지 내내 그랬다.

 

2000년에 우리 동료인 다니엘 페라스(Daniel Ferrás)가 사망했다.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는 공장의 열악한 환경 탓이었다. 우리는 아주 중요한 파업을 조직했고, 그것은 우리 투쟁의 상징이 됐다. 또 하나의 중요한 분기점은 노동조합을 노동자의 기구로 되찾은 것이다. 그것은 네우켄 지역 쿠트랄 코(Cutral Có)에서 열린 역사적인 총회에서 이뤄졌다. 거기에서 우리는 몬테스 관료집단이 노조 선거 사기를 치지 못하게 막았다. 바로 거기에서 우리는 노조에 대한 통제권을 쟁취했다. 이미 노동자의 다수가 우리를 지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뒤 진행된 선거는 형식적 승인절차에 지나지 않았다. 또 다른 아주 중요한 분기점은 2001년의 34일 파업이다. 당시 우리가 동지들에게 강조했던 건, 우리 일자리를 지키고자 한다면 맹렬하게 투쟁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회계장부를 공개하라, 지금껏 저들이 얼마나 벌어들였는지 보라”, 이것이 우리의 외침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 파업과 함께 전진했다.

 

그다음 점거가 시작됐다. 다섯 달간 천막농성을 벌였다. 그것은 노동자계급의 강력한 전투성을 보여준 것이고, 이후 공장을 운영하는 힘으로 전환됐다. 노동자에 의한 관리의 목표로서 우리는 생산을 조직했고, 영업, 구입, 판매, 보건, 안전, 신문, 방송을 위한 부서와 위원회를 창출했다. 모든 부서 담당자와 더불어 지도부도 만들어냈다. 거기에서 우리 투쟁이 나아갈 방향과 경제 관리를 위한 정책을 토론했다. 우리가 ‘조정회의’라고 부른 건 진짜 노동자 평의회였다. 그것은 우리 자신과 우리를 따르는 수천 명의 노동자에게 새로운 경험이었고, 계획경제를 배우는 학교로서 노동자계급의 공장 관리 능력을 보여줬다.

 

그리고 사농공장에서의 노동자 자주관리는, 다른 경험들과는 대조적으로, 단지 다른 노동자로부터뿐만 아니라 지역 전체로부터 강력한 지지를 끌어 모아야 한다는 점을 처음부터 이해했다. 우리는 마푸체(Mapuche) 형제자매들(파타고니아 지방 토착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인권단체들과 예술가들의 지지도 받았고, 심지어 사농공장 인근에 있는 11번 교도소 수감자들의 지지까지 받았다. 이들은 며칠 분량의 식량을 후원하는 방식으로 우리를 향한 연대감을 보여줬다.

 

우리는 실질적인 일자리를 위해 투쟁하던 수천 명의 실업 노동자, 그리고 교육개악에 항의하는 학생들과 함께 했다. 이 과정에서 “사농공장은 이 노동자들을 지지하는 인민의 것이다”라는 구호가 대중화됐다.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사농공장 사례를 위기에 대응하는 하나의 본보기로 여기면서 이 구호를 제창했다.

 

처음부터 우리는 다른 부문들의 요구를 우리 요구로 포함시켰다. 우리는 더 나아가 또 하나의 구호를 내걸었다. “실질적인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공공근로, 주거, 교육, 의료를 위한 계획.” 이것은 모두 주택과 사회 기반 시설의 부족으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위한 아주 긴급한 요구들이다. 이 위기 속에서, 막대한 돈이 석유회사에 로열티로 흘러들어가는 와중에, 사람들은 네우켄 지역의 혹독한 겨울을 나기 위해 작고 형편없는 집까지도 땔감으로 써야 할 지경이다.

 

학생들, 교사들과 함께 우리는 공동으로 ‘무상 공공 보통 교육’ 요구를 내걸었다. 나중에 이는 세라믹노조와 코마우에(Comahue)대학 간의 협정 체결로 이어졌다.

 

퇴거 압박, 관료집단 그리고 정부의 면전에서 다른 노동자들과 공동으로 진행한 우리의 작업은 공동의 조직, 즉 알토 바예(Alto Valle: 네우켄 지역 산업단지) 지역조정위원회 건설을 촉진하도록 우리를 이끌었다. 그것은 네우켄에서 아주 중요한 조직으로서, 우리의 행동들을 조정하고, 대규모 운동과 연대를 조직하며(예컨대 2003년 4월 8일 네우켄 교육노동자연합이 사농공장 노동자들을 지지하며 파업을 벌인 것), 관료집단에 맞서는 노동자들이 토론을 벌일 수 있도록 해줬다.

 

그 경험은, 비록 오래 지속되진 못했지만, 정말 엄청난 것이었다. 그것은 노동자들이 스스로 통치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조직을 보여줬다. 위기, 가령 그 몇 년간 우리가 헤쳐 온 것과 같은 위기의 시기에 우리는 그런 조직을 만들어야만 한다. 그런 조직은 이 세계의 다른 곳에서도 살아 움직이게 될 것이다.

 

우리는 다른 노동자계급 및 대중 부문과 단결하기 위해, 그리고 지난 여러 해 동안 우리가 의지했던 지역 차원의 지지를 획득하기 위한 노력에 착수했다. 그 모든 작업은 이 사회에서 착취와 억압으로 고통을 겪는 모든 부문과의 동맹을 이끌 수 있는 노동자계급의 잠재력을 보여 준다. 이 동맹으로 우리는 자본가들과 맞붙어 싸울 수 있고 그들을 패배시킬 수 있다. 이 동맹 덕분에 우리는 우리를 공장에서 쫓아내려는 온갖 시도에 맞설 수 있었고, 지금은 우리를 경제적으로 목 졸라 죽이려는 시도에 맞설 수 있게 됐다. 네우켄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와 합동으로 부단히 우리를 제압하려 한다. 그 둘 모두 노동자 자주관리의 적이다.

 

 

질문: 노동자 자주관리와 함께 세라믹노조도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고도이: 물론이다. 2000년에, 많은 이들이 알고 있듯이, 우리는 몬테스 관료집단을 무너뜨렸다. 네우켄 세라믹노조에서 계급투쟁 강령을 기초로 한 브라운그룹(일종의 평조합원 운동 조직)이 조직됐는데, 곧 이 지역에서 일어난 여러 사건들이라는 시험대에 올랐다. 네우켄 지역에 국한된 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투쟁이 있는 모든 곳에 다가갔다. 살타 지역의 모스코니, 브루크만(2001년 노동자들이 점거했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의류공장), 석유 노동자들, 대규모 집회, 부에노스 아이레스 지하철 등. 우리는 공장들 간의 회합을 조직했고, 피케테로(실업자 시위운동) 총회에 참여했으며, <우리의 투쟁>이란 제목의 신문을 창간했다. 이 모든 게 관료집단과 사장들에 맞서 투쟁하던 여러 부문의 노동자들과 단결할 수 있게 해줬다. 그들 모두가 우리의 형제자매들이었다. 우리는 다양한 형태의 협력기구를 제안하고 출범시켰다.

 

그리고 세라믹 노동자들 사이에서 우리는 노조를 혁명적으로 변화시키자는 목표를 세웠다. 많은 전투적인 동지들이 그들의 노조를 되찾았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남아 있는 관료제의 잔재를 없애기 위해 투쟁하진 않았다. 많은 이들이 노조를 거쳐 가지만, 노조를 잃고 나면, 모든 게 예전 그대로 돌아간다.

 

이런 이유로, 그리고 많은 토론, 논쟁, 참여활동을 거쳐, 우리는 노조에 다음과 같은 새로운 규칙을 세웠다. 총회가 최고 결정기구다. 지도부는 누구라도 소환될 수 있고, 직책도 변경될 수 있다. 소수파도 지도부에 대표를 파견한다. 우리 노조는 계급투쟁적 노동조합이며, 따라서 국가, 고용주, 대자본가들의 정당으로부터 독립적이다. 그리고 국경에 얽매이지 않고 계급투쟁에 복무한다. 노조에 대한 국가의 통제에 맞선 투쟁, 노동자 민주주의를 향한 투쟁, 이것은 혁명가들의 강령의 일부다. 또한 우리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우리는 순전히 노동조합적 요구만을 위해서 투쟁할 순 없다. 아무리 영웅적이고 자기희생적인 것일지라도 말이다. 우리는 가장 근본적인 목표, 즉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를 폐지하는 정치적 전망을 지향한다.

 

마지막으로 브라운그룹 동지들과 함께 착수한 아주 중요한 과제가 있었다. 노동자계급으로서, 사회주의자로서 네우켄 지방의회에서 의석을 획득하는 것이다. 이것은 적들의 영역 안에서 “우리의 깃발을 휘날리며” 최전선을 장악한다는 성격을 지닌다. 우리는 결속력을 유지했고 지난 시기 내내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높여 왔다. 2003년부터 지도부 집단은 노조 활동에서 정치적 활동으로 도약을 감행할 필요성에 대해 심사숙고했고, 노동자들이 정치활동을 벌일 수 있는 도구를 만들어내도록 추동했다.

 

우리가 참여했던 여러 선거에서, 사회주의노동자당(PTS), 노동자당(PO), 사회주의좌파(IS)가 전국 차원에서 형성한 노동자좌파전선(FIT)은 많은 노동자들 사이에 크나큰 열정을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우리는 네 개의 세라믹공장 브라운그룹이 참여하는 공개총회를 소집했다. 그것은 우리를 [그간 조직에 참여하지 않았던] 개별 활동가들과 연결시켜줬다. 그리고 우리는 네우켄 지역의 노동자좌파전선에 참여하기로 함께 결정했으며, 알레한드로 로페스(Alejandro López)와 나에게 투표함으로써 의원단의 선두에 설 수 있게 만들었다. 네우켄 지역 노동자좌파전선의 또 다른 의원단에 포함된 다른 동지들도 있다. 우리는 또한 노동자좌파전선과 전투적 노동자들을 겨냥한 키르츠네르 정부의 법적 탄압에도 맞섰다. 지금 우리는 모든 노동자 민중 투사들의 무죄방면을 위한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그 숫자가 전국적으로 5,000명, 네우켄 지역에 500명 이상 되는데, 세라믹 노동자들도 많이 포함돼 있고, 그 중엔 알레한드로와 나 자신도 들어 있다.

 

 

출처: 2017년 4월 11일자 <레프트보이스 Left Voice>

(http://www.leftvoice.org/Zanon-Under-Worker-Control-Since-2001)

 

 

옮긴이: 오연홍 노동자운동 연구공동체 뿌리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37 민주노총 선거- 우리 운동의 진정한 원동력을 질문한다 file 노건투 2017.12.08 90
236 [러시아혁명 연재 ⑩] 1917년 러시아혁명의 패배를 넘어서 더 멀리 file 노건투 2017.11.30 87
235 [러시아혁명 연재⑨] 러시아혁명은 단지 한 나라의 현상이었는가? file 노건투 2017.11.29 52
234 [러시아혁명 연재⑧] 1917년 모스크바금속공장 이야기 2 - 볼셰비키는 어떻게 현장에서 힘을 얻어갔는가 file 노건투 2017.11.17 77
233 [러시아혁명 연재 ⑦] 러시아혁명은 어떻게 차별과 억압에 결정타를 날렸는가? file 노건투 2017.11.03 68
232 [러시아혁명 연재⑥] 1917년 모스크바 금속공장 이야기 1 노동자가 어떻게 현장권력을 장악해 갔는가 file 노건투 2017.11.03 58
231 [투쟁의 기억] 국가에 대한 어떠한 환상도 유해하다는 진실을 알려준 칠레 노동자들의 뼈아픈 경험 file 노건투 2017.11.02 112
230 사회주의조직이 극복해야 할 약점 file 노건투 2017.11.01 134
229 [러시아혁명 연재⑤] 자본주의 경제위기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최고 해결책은? file 노건투 2017.10.13 52
228 [러시아혁명 연재④] 제국주의 전쟁은 어떻게 노동자혁명의 추동력이 됐는가? file 노건투 2017.09.25 79
227 [러시아혁명 연재③] '노동자 소비에트' 노동자 단결투쟁에서 탄생해, 노동자권력으로 우뚝 섰던 위대한 노동자 조직 file 노건투 2017.07.27 113
226 [투쟁의 기억] 서울대병원 10년 전 파업 정규직 · 비정규직이 함께 파업해 온전한 정규직화 쟁취하다 file 노건투 2017.07.24 197
225 [러시아혁명 연재②] “우리는 꿈을 꾸어야 한다” - 러시아혁명을 알아야 할 이유 file 노건투 2017.07.12 168
224 한미정상회담에서 드러난 자본가정부의 두 가지 민낯 file 노건투 2017.07.06 105
223 [러시아혁명 연재①] 러시아노동자들은 어떻게 정권교체의 환상을 넘어 전진했는가? file 노건투 2017.06.29 172
» “사장들 없어도 우리는 생산할 수 있다” - 2001년 이래 노동자통제 아래 있는 아르헨티나 사농(Zanon)공장 file 노건투 2017.06.05 168
221 거인처럼 보였던 버라이즌, 파업노동자가 더 큰 거인이었다 file 노건투 2017.06.02 97
220 [투쟁의 기억(연재)]1987년 7·8·9 노동자대투쟁 (6) 노동자대투쟁을 거울삼아 노동자계급의 총단결·총투쟁을 조직하자 file 노건투 2017.05.01 162
219 [투쟁의 기억(연재)] 1987년 7‧8‧9 노동자대투쟁(5) 투쟁의 정점과 내리막길 file 노건투 2017.04.17 148
218 [투쟁의 기억(연재)] 1987년 7‧8‧9 노동자대투쟁 (4) 노동자계급은 전국적 세력 : 인천‧경기‧서울로, 운수와 광산업으로 확산되는 대투쟁 file 노건투 2017.04.03 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