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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인처럼 보였던 버라이즌, 파업노동자가 더 큰 거인이었다

 

오연홍 노동자운동 연구공동체 뿌리

 

 

 

9면 버라이즌_AP.jpg

인종과 성별 차이를 넘어 노동자 단결투쟁의 가능성과 힘을 보여준 2016년 버라이즌 파업. (사진_AP)

 

 

 

1년 전 지금, 미국에선 근래 보기 드물게 크고 역동적인 투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거대 통신업체 버라이즌의 파업노동자 39,000명이 그 주인공이다. 파업 1주년을 맞아 현장 노동자들이 지난 투쟁을 돌아봤다.

 

 

왜 파업을 하게 됐나?

 

도미니크 : 버라이즌이 우리 일자리를 흔들어놨다. 그들은 줄곧 우리를 해고하려 했고, 고용안정이란 말 자체를 없애길 원했다.

 

에이미 : 그들은 인력을 좀 더 “유연하게” 재편하려 했다. 마음대로 전환배치하고, 해고하고, 단협을 짓뭉개려 했다.

 

 

파업 결과는 어땠는가?

 

도미니크 : 일자리를 없애려는 저들의 시도를 물리쳤다. 외주화를 멈췄을 뿐만 아니라, 외주화됐던 일자리를 되돌려놓기까지 했다. 새로 1,000명의 인원충원을 따낸 건 놀랄 일이다. 지금껏 그런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에이미 : 파업 전에 회사에선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직무평가제를 도입했다. 1분 단위로 뭘 하는지 점검받아야 했다. 끔찍하게 기분 나쁘고 모욕적이었다. 내 생각엔 그런 자존감 문제가 파업에 나서게 된 이유의 하나였다. 파업하고 나서 직무평가제는 없어졌다.

 

도미니크 : 또 하나 뜻깊은 점이 있는데, 브루클린 무선사업부 노동자들이 처음으로 단협을 쟁취한 거다. 이제 우리는 그걸 활용해 또 다른 무선사업부 노동자들을 조직할 수 있다.

 

 

파업 중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면?

 

도미니크 : 모든 게 불확실했지만 동시에 감동을 받기도 했다. 청소노동자에서 그냥 지나가던 사람들까지 아주 많은 노동자들이 다가와서 우리를 지지해줬기 때문이다.

 

에이미 : 단협이 체결되는 순간이었다. 그건 진짜 우리의 승리였다. 우리는 투쟁해서 단협의 문구 하나하나를 따낸 것이다.

 

 

예전의 파업과 달랐던 점은 무엇인가?

 

도미니크 : 버라이즌 영업소마다 쫓아다니면서 시위를 벌이는데 조합원들이 그토록 열의를 보였던 게 정말 인상적이었다. 우리의 결속력도 감명 깊었다. 사측은 우리 모두에게 편지를 보내 복귀하라고 꼬드겼다. 우리는 덫에 빠져들지 않았다. 조합원들은 말 그대로 편지를 불살라버렸다.

 

 

이런 파업이 더 큰 영향력을 가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에이미 : 우리 파업의 의미를 상기시킬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 트럼프? 클린턴? 투쟁의 기억을 생생하게 유지시키는 건 우리 같은 노동자들에게 달려있다. 오늘 나는 스펙트럼(케이블회사) 파업현장에 다녀왔다. 거기 노동자들은 우리의 파업을 아주 잘 기억하고 있었다.

 

 

트럼프 시대에 우리가 간직해야 할

지난 파업의 교훈은 무엇인가?

 

도미니크 : 바라는 게 있다면 노동자들이 파업이란 무기를 더 많이 사용하는 거다. 효과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에이미 : 한 가지 교훈은, 사측의 말을 믿어선 안 된다는 거다. 저들의 공격을 받아치려면 노동자들이 자기 손으로 직접 해내야 한다. 그러면 승리할 수 있다.

 

 

[이 글은 2017년 4월 13일자 SOCIALIST WORKER.org에 실린 인터뷰 기사를 간추려 옮긴 것이다. 인터뷰에 응한 두 사람은 도미니크 렌다(Dominic Renda, 미국통신노조 1105지부 콜센터노동자), 에이미 멀둔(Amy Muldoon, 미국통신노조 1106지부 기사 및 현장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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