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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7년 7·8·9 노동자대투쟁

(6) 노동자대투쟁을 거울삼아 노동자계급의 총단결·총투쟁을 조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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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대투쟁 속에서 노동자계급의 잠재력은 명확하게 드러났다. 아흔아홉 번 패배할지라도, 단 한 번의 승리를 향해 계속 나아가자! (사진_한내)

 

 

 

나는 자랑스러운 노동자

 

3개월 동안 3,000건 넘게 노동쟁의가 벌어졌다. 1,000개가 넘는 노동조합이 새로 만들어지고, 수백만 명이 파업으로 일어서 한국사회를 뒤흔들었다.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잠재력이 얼마나 풍부한가를 입증했다.

 

노동자들은 더 이상 자신을 노동자라 부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이제 노동자들은 ‘나는 자랑스러운 노동자’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사회변혁의 주체’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 노동자들은 공장을 멈추고 전체 경제를 마비시킬 수 있는 힘이 자신에게 있다는 걸 깨달았다.

 

노동자계급은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나날이 그 숫자가 늘어나고, 거대 자본 밑으로 더 강하게 결집하며, 자본이 하늘높이 부를 쌓아가는 동안 더욱더 가난과 불안정의 구렁텅이로 내몰린다. 따라서 자본주의에서는 노동자계급만이 자본주의를 철폐할 수 있는 혁명적 잠재력을 가진 유일한 세력이다.

 

노동자들이 한 번의 파업으로 권리를 쟁취해도, 항상 단결해 싸울 수 있는 조직이 없다면 언제든 자본의 반격으로 권리를 빼앗길 수 있다. 그 점에서 87년 노동자대투쟁의 주요 요구가 임금인상과 함께 ‘민주노조 건설, 사수’인 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87년 이후 계급투쟁이 보여주듯이 한국 노동자계급은 민주노조를 발판 삼아 경제적, 정치적 이익을 위한 투쟁으로 전진했다. 이 시기 민주노조 건설은 노동자계급이 본격적으로 단결해 투쟁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앞으로 경제투쟁 수준에서만이 아니라 정치투쟁 수준에서도 계급적으로 단결하고 투쟁할 수 있으며, 반드시 그렇게 나아갈 것이라는 점을 강력하게 예고한 것이다.

 

 

노조관료제를 과감히 거부하고 무너뜨리다

 

87년 노동자대투쟁의 의의 중 하나는 오랜 기간 노동자투쟁을 가로막아온 관료제를 과감하게 무너뜨리는 전통을 창출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자본과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유지된 한국노총이라는 관료기구를 노동자들은 투쟁이 일어난 곳이라면 어디에서든 과감히 거부하고 새로운 민주노조를 수립했다. 민주노조는 노동자의 단결과 투쟁에 의지했고, 총회로 표현되는 노동자 민주주의 전통을 기반으로 했다.

 

이는 소중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노동자들은 적과의 투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자기 힘을 발휘할 수 없게 꽁꽁 묶어두는 노조관료제의 두터운 사슬을 산산조각내야만 한다. 현실에서는 두 가지가 함께 진행됐다. 노동자의 단결투쟁은 노조관료제를 아래로부터 위협하면서 단번에 붕괴시켰다. 거꾸로 단결투쟁이 제대로 진행되기 위해서 노동자들은 노조관료제에 의지하지 않은 채, 노동자 민주주의에 입각한 새로운 투쟁조직을 건설해야만 했다. 양자는 서로 맞물려 도저히 분리할 수 없는 하나로 작동했다.

 

 

노동자대투쟁은 88~89년 노동운동 고양기로 이어졌다

 

생산직 노동자들의 조직성장과 더불어 사무직 노동운동에서도 중요한 발전이 이뤄졌다. 금융, 언론, 병원, 인쇄업, 정부출연연구소에서 근무하는 사무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 조직에 성공했다. 한국노동운동은 좀 더 잘 조직되고, 강력해졌다. 노동자들은 연대의 필요성을 자각했고, 더 강력한 연대투쟁과 연대조직 건설에 나섰다.

 

마산창원노동조합총연합(마창노련)은 1987년 12월에 마산·창원의 19개 노조로 조직됐다. 1988년 봄 서울·인천·성남을 시작으로 여러 지역에서 연대조직이 건설됐고 1988~89년 투쟁을 거쳐 마침내 1990년 1월 전노협(전국노동조합협의회)이 결성됐다.

 

 

계급적 정치투쟁으로 도약하지는 못했다

 

노동자들은 자본가정부가 전면에 나서기 전까지는 개별 자본에 맞선 개별 사업장 차원의 경제투쟁에서 거의 항상 승리했다. 이것은 당시가 87년 6월 항쟁의 승리에 힘입어 ‘총노동 대 총자본’의 대결국면에서 총노동에 유리한 정세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런데 이제 총자본으로서 정부가 전면에 나서 탄압했기 때문에, 노동자계급은 하나로 굳게 결집해 대항해야 했다. 하지만 노동자운동은 아직 계급적으로 단결해 ‘계급 대 계급’의 전면대결로 나아갈 만한 의식적, 조직적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그 결과 자본가정부는 이데올로기투쟁에서만이 아니라 정치투쟁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노동자운동을 강하게 찍어 눌렀다. 자본주의에 대한 위협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각오로 단결해 일어선 총자본 앞에서, 단순히 같은 시기에 비슷한 요구를 내걸고 싸웠을 뿐 사실상 개별 자본가들에 맞서 싸웠던 파업은 점차 격파될 수밖에 없었다.

 

김대중이 고문으로 있고 김영삼이 총재로 있었던 당시 보수야당 통일민주당은 ‘한꺼번에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된다’며 노동자에게 자제를 주문했고, 촛불항쟁 때처럼 투쟁국면을 서둘러 선거국면으로 바꾸는 데 앞장섰을 뿐이다.

 

이것은 다음과 같이 묘사할 수 있다.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의 대결은 거인 대 거인의 대결이었다. 자본가계급이란 거인은 착취, 억압, 기만으로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도덕적 정당성이 약했고, 6월 항쟁으로 코너에 몰린 상황에서 7, 8월 대투쟁을 맞아 처음에는 수세적이었다. 하지만 노동자계급이라는 거인이 자기 잠재력에 걸맞은 계급의식을 갖추지 못하자 자본가계급이라는 거인이 재빠르게 힘을 회복해 노동자계급에게 결정타를 날린 것이다.

 

정부는 이데올로기 공격, 공권력 투입, 지도부 해고, 구속, 폐업 협박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해 노동자운동을 공격했다. 자본가들은 정부를 등에 업고 8월 중순부터 본격적으로 반격에 나섰다. 노동자계급에게는 뚜렷한 목표의식, 풍부한 경험, 총체적 계획, 비타협적 투쟁의지를 가진 확고한 지도부가 아직 없었다. 연대의 수준도 높지 않았다. 노동자계급은, 거인이기는 했지만,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나 몸이 제대로 풀리지 않은 거인임이 드러났다. 그때 노동자계급의 패배는 불가피했다.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잠재력 믿고 전진하자

 

1987년 많은 대규모 사업장에서 노동자들은 20% 이상의 임금인상을 얻어냈다. 많은 자본가가 갑자기 폭발한 노동자운동에 전혀 대비하지 못했기 때문에, 민주노조를 인정하면서 물러섰다. 1986년부터 1988년까지 한국경제는 이른바 3저 호황(낮은 국제금리, 낮은 유가, 낮은 달러가치)을 누렸고, 기업들은 양보할 여력이 있었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경제위기 아래 정부와 자본가들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으려 한다. 많은 민주노조가 87년 대투쟁 정신을 잃어버리고 조합주의, 관료주의, 개량주의에 물들었다.

 

하지만 1987년 노동자대투쟁에서 볼 수 있듯 노동자계급은 거대한 힘을 갖고 있다. 그 이후에도 계속 투쟁전통을 쌓았다. 숫자도 엄청 늘었다.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잠재력을 믿고 계급투쟁을 조직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한다면 제2의 7·8·9 대투쟁은 충분히 가능하며, 87년 대투쟁의 한계를 극복해 노동해방 세상을 열 수 있다.

 

87년 노동자대투쟁에서 나타난 투쟁성, 계급성, 연대성은 용기 있는 수많은 노동자의 피나는 투쟁의 결과라는 점, 적은 승리와 많은 실패를 겪으며 축적된 투쟁의 성과라는 점을 기억하자. 아흔 아홉 번 패배할지라도 단 한 번의 승리를 향해 전진, 또 전진하자!

 

이용덕

 

 

연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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