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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7·8·9 노동자대투쟁

(5) 투쟁의 정점과 내리막길

 

이용덕

 

 

 

6면 87년.jpg

 

 

 

1 투쟁의 정점

- 울산 현대노동자부대의 자랑스러운 진군

 

노동자투쟁의 거센 불길은 8월 17일 현대그룹노동조합협의회(현노협)가 주도했던 현대그룹 노동자들의 연합가두시위에서 절정에 달했다. 8월 8일 현대그룹 노동자를 대표하는 현노협이 탄생했는데 현대 자본은 현노협은 불법단체라고 주장하면서 현노협이 제안한 세 차례의 협상(8월 11, 14, 17일)에 모두 응하지 않았다. 이후 현대자본은 17일 그룹 전체 공장에 무기한 휴업 조치를 내렸고, 독신자 숙소의 전기와 물을 끊고 식사제공도 중단했다.

 

한국 최대의 재벌 현대자본과 10만 현대 노동자의 정면대결이 벌어졌다. 8월 17일 장대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3~4만에 이르는 현대그룹 노동자들이 현대중공업 운동장에 모였다. 그들은 ‘정주영 회장 화형식’을 가진 뒤, 대형 철구조물을 앞세우고 정문을 나와 길을 가로막는 전투경찰에 맞서 돌을 던지며 싸웠다. 18일에는 다시 7만여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모여 공설운동장까지 5시간에 걸쳐 가두시위를 벌였다. 시위대열 선두에서 오토바이 15대와 마이크를 장치한 1톤 트럭이 대열을 이끌었으며, 그 뒤에는 헬멧, 방진마스크를 착용한 500여 명의 노동자선봉대가 따랐다.

 

또 샌딩머신, 덤프트럭, 소방차, 지게차 등 중장비 10대가 동원됐다. 이것은 마치 잘 훈련된 노동자군대의 행진연습을 보는 듯했다. 이 시가행진을 담은 사진은 지금까지도 1987년 노동자대투쟁의 상징이자 위풍당당한 한국 노동자계급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2 자발적 무장

 

- 18일 나가실 때 샌딩머신을 가지고 나가셨죠?

: 예.

- 그럼 그런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겁니까?

: 그렇죠. 앞에 경찰이 막으니까, “야! 우리 이렇게 가다가는 완전히 그냥 너무 당한다. 그러니까 우리도 무장이다, 무장한다.” 무장 차원에서 한 거죠.

- 근데 그때 샌딩머신이 고장 나 있었다고도 하던데요?

: 그게 에어가, 압축 에어잖아요. 공기를 압축해서 가지고 있다가 그걸 쏘잖아요? 이미 많이 위협한다고 많이 쐈어. 공기가 더 이상 없어. 없어서 쏠래도 못 쏴.

(<1987년 울산노동자대투쟁Ⅰ> 107쪽, 김형균 인터뷰)

 

- (9월 2일 가두시위 동원에 대하여) 거의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거군요?

: 예. 그 담당하는 수송부에 일하는 사람들도 다 우리 조합 노동자들이고, 그러다 보니까 자기가 알아서 차를 끌고 나왔고. 다 알아서, 그 만지는 사람들이니까 끌고 나왔고. 가장 위력을 발휘했던 게 샌딩기라고, 아까 그 도장부 작업하는, 고압으로 조그만 철판 알갱이를 분산 그거 … 철판을 뚫는 건데, 뚫는 건데 경찰들 방패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 결국 효문 네거리에서 길을 터주더라구요.

 

(같은 책 125~126쪽, 박철모 인터뷰)

 

 

3 단련되지 못한 지도부가 가질 수밖에 없었던 약점

 

7만의 노동자부대는 4km나 되는 끝도 없이 긴 행렬을 이루며 시청을 향해 분노의 행진을 벌였다. 이런 대부대의 진군은 경찰들도 감히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지도부는 “시청으로!”를 외치는 시위대를 가까스로 방향을 틀어 공설운동장으로 집결시켰다. 지도부는 비타협적 투쟁원칙을 철저하게 고수할 만큼 단련되어 있지 못했다. 노동자들의 위력에 놀란 정부가 노동부장관을 급파해 “9월 1일까지 임금교섭 타결을 정부가 보장”, “현대중공업의 이형건 (민주)노조 집행부를 노동자대표로 인정” 등을 서둘러 합의하고 일단 투쟁을 수습했다.

 

하지만 합의사항에는 “각 계열사별로 임금교섭을 벌인다”는 조항도 들어가 있었다. 현대그룹 노동자들의 연대가두시위는 독점자본과 자본가정부의 심장부를 강타했고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왔지만 현노협을 10만 현대그룹 노동자들의 진정한 대표기구로 정착시키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4 언론의 새빨간 거짓말

 

언론은 8월말부터 ‘과격 난동’, ‘인륜 파괴’, ‘서민 생계 위협’, ‘실업자 대량 발생 위험’을 대문짝만하게 보도하며 노동자투쟁을 공격했다. 그들은 새빨간 거짓말도 서슴지 않았다. 전경련의 한 자본가가 “기아기공 근로자들이 부사장을 포클레인 삽에 싣고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위협한다”, “영창악기에서는 사장을 드럼통에 넣고 굴렸다”고 얘기하자, 자본가언론은 이를 대서특필했다.

 

하지만 기아기공 사측은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밝혔고, 영창악기에는 애당초 사람을 넣을 수 있는 드럼통이 있지도 않았다.

 

사기, 폭력 등 전과 17범이었던 대원운반기계 사장 이승춘은 노동자들이 파업하자 부도를 내고 도망쳤다. 노동자들이 집 앞까지 찾아가 밤을 새며 교섭을 요청하다가 분노를 못 이겨 담벼락에 ‘악덕기업주의 집’, ‘이승춘 개새끼’라고 낙서했다. 그러자 언론은 기다렸다는 듯 노동자들이 폭력적으로 기물을 파괴했다며 ‘해도 너무 한다’고 떠벌렸다.

 

자본가들과 그 언론은 이토록 파렴치했다. 안타깝게도 노동자운동은 이런 이데올로기 공세에 제때에 정확하면서도 강력하게 대처하지 못해 자신감과 투쟁력이 점차 떨어졌다.

 

 

5 전면적인 탄압

 

이렇게 공권력 투입 명분을 쌓은 후 정부는 물리적 탄압을 강화했다. 8월 22일 폭력경찰은 가두시위를 벌이던 대우조선의 청년 노동자 이석규의 가슴에 최루탄을 쏘아 박았다. 8월 22일 한국중공업 3명 구속, 9월 3~4일 대우자동차 100여 명 구속, 현대중공업 50명 구속, 경동산업, 영창악기 노조집행부 구속 등 정부의 탄압이 비 오듯 쏟아졌다.

 

7·8월 내내 가시방석에 앉은 듯 안절부절 못하던 어용노조들은 이 시기 두드러진 활약을 했다. 가령 9월 3일 서울의 택시 노동자들이 잠실 교통회관에서 대규모 농성으로 투쟁의 기세를 올리고 있을 때, 일부 서울택시지부 임금교섭위원들은 당국·정보기관원들과 야합해 조합장들조차 모르게 교섭 장소를 옮겨 교섭위원들을 감금시킨 상태에서 협상을 진행하도록 강요했다. 언론, 정부, 어용노조의 대공세에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대처하지 못해 상당수 노조들이 다시 어용화됐고 해산한 노조만도 340여 개나 됐다.

 

9월 1일 하루 쟁의발생건수 233건을 정점으로 하루하루 쟁의발생건수는 줄어들었다. 9월 20일을 전후해서는 불과 몇몇 공장에서, 그것도 아주 소극적인 방식으로 투쟁이 벌어지고 있을 뿐이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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