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본문시작

1987년 7·8·9 노동자대투쟁

(3) 부산, 마산·창원으로 투쟁의 불길이 번지다

 

이용덕

 

 

9면 87년_노동자역사 한내.jpg

사진_노동자역사 한내

 

 

부산지역 투쟁의 기폭제

 

대한조선공사(지금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투쟁은 7월 25일부터 시작됐다. 노동자들의 요구사항은 노동3권 보장, 어용노조 퇴진, 일당 1500원 인상, 해고자 복직 등이었다. 노동자들은 노조 사무실 유리창을 박살내 어용노조에 대한 분노를 표현했고 곧 회사 앞 태종로 도로를 점거했다.

 

노동자들은 비가 심하게 내리자 26일 새벽 2시 30분 회사 신관에 들어가 농성했는데 4시 10분경 경찰이 침탈해 80여 명을 연행했다. 방심했던 노동자들은 이것을 계기로 자위대를 조직한다.

 

한진중공업만이 아니라 수많은 다른 노조에서도 자위대, 정당방위대, 선봉대 같은 투쟁 기구를 구성했다. 구사대와 경찰의 폭력을 이겨내기 위해서였다. 이후에도 이런 선진노동자들의 조직은 조합원과 굳게 결합해 민주노조를 사수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전노협의 핵심조직이었던 마창노련의 경우 전체 조합원 중 10%의 비율로 정당방위대(선봉대)를 두어 노동조합의 투쟁성과 민주성을 발전시켜 나갔다.

 

회사 측이 임금인상, 보너스 인상 등을 제외한 모든 요구를 들어주겠다고 제의했지만 노동자들은 연행 동료 석방을 요구하며 거부했고 마침내 연행자 전원 석방을 쟁취했다. 노동자들이 최고의 가치로 여겼던 것이 무언인가를 알 수 있다.

 

노동자들은 7월 28일 밤 12시쯤 지게차와 물탱크차를 앞세우고 쇠파이프와 망치로 무장해 가두시위를 전개했다. 노동자들의 기세에 놀라 경찰도 길을 터줄 수밖에 없었다. 7월 29일에도 가족들과 합세해 산소통 13개를 도로에 쌓아두고 경찰과 대치했다. 노동자들은 이런 강력한 투쟁으로 어용노조 퇴진, 연 300% 상여금 지급 등 핵심 요구를 쟁취했다.

 

대한조선공사 노동자들의 투쟁은 부산지역 노동자투쟁의 기폭제였으며 1987년 노동자대투쟁의 대표적 투쟁이었다.

 

 

맹렬한 기세로 확산되는 투쟁

 

대한조선공사 투쟁을 시작으로 국제상사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이 벌어졌고, 이후에도 삼익선박, 천일여객, 동아제분, 한창섬유, 동국제강, 화성 등 수십 개 사업장에서 투쟁이 벌어졌다.

 

특히 신발 제조업체 국제상사 어린 여성 노동자들은 일당 3만원을 주고 고용된 깡패들과 회사 관리자 등 600여 명의 구사대에 맞서면서 눈부신 투혼을 보여줬다.

 

"5사업부 옥상 위에 관리직과 깡패들로 만든 구사대 수백 명이 빽빽이 들어서서 기숙사 마당을 향해 돌멩이, 유리병, 골(신발 만드는 데 쓰이는 납덩이)를 마구 던져댔고 기숙사로 통해 있는 육교로는 합판을 방패삼고 쇠파이프, 돌, 골로 무장한 30여명의 깡패들이 쏟아져 나왔다. 삽시간에 온 기숙사 안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어린 여성 근로자들의 비명소리, 신음소리, 돌 깨지는 소리, 병 깨지는 소리, 고함소리로 전쟁터처럼 변했다. 돌멩이를 피하느라 이리저리 우왕좌왕하는 사람, 화단벽돌을 뜯어내 깡패들에게 맞서는 사람, 나무 받침목을 뽑아 들고 육탄돌격하는 용감한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는 지금까지 ‘비폭력’을 외치며 평화로운 시위농성을 해왔지만 이젠 더 이상 저들의 폭력에 맨몸으로만 저항할 수는 없었다.” (『7, 8월 노동자대투쟁』, 민중사, 93쪽)

 

국제상사 자본은 불순분자, 외부세력이 개입했다는 이유로 노동자들을 두들겨 패고 대학생 출신 여성 노동자를 감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농성 노동자들은 남성 노동자들을 파견해 그녀를 구해오기도 했고 시위현장에서는 필사적으로 그녀를 방어했다. 대한조선공사에서도 사측은 몇몇 해고자를 ‘위장취업자’, ‘불순분자’로 몰아가려 했으나 노동자들은 해고자 복직 요구를 내걸었다. 이렇듯 노동자들은 자본의 추잡한 분열 시도를 거부하며 오직 단결만 생각했다.

 

 

마산·창원 노동자들의 폭발력

 

울산 현대정공 노동자들의 투쟁에 고무된 창원 현대정공 노동자들이 7월 30일 노조를 결성했다. 같은 날 한국중공업에서는 노동자들이 어용노조 성토대회를 열었다. 다음날 효성중공업에서는 500여 노동자들이 농성에 들어가며 어용노조 집행부 퇴진, 상여금 인상 등을 요구했다.

 

8월 6일과 7일에는 기아기공과 (주)통일 노동자들이 어용노조 분쇄 책동을 폭로하고 농성에 돌입했다. 그리고 삼성중공업 노동자들이 노조민주화 투쟁을 전개했다. 8월 10일 550여명의 노동자들이 모여 민주노조 결성식을 진행하자 자본은 가까운 데 있는 삼성 계열사 관리자들을 동원해 각목을 휘두르고 소방호스로 물을 뿌리며 대회장으로 난입했다. 노동자들은 똘똘 뭉쳐 물리쳤다.

 

(주)통일 노동자들의 선도적 투쟁이 다른 사업장에 영향을 많이 미쳤다. 통일 노동자들은 ‘해고노동자 복직’을 으뜸 구호로 내세워 지도자를 되찾겠다는 강한 결의를 보여줬으며, ‘민주노조 쟁취 시범업체’라는 구호를 정문에 내걸어 민주노조운동의 선봉에 서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밝혔다. 이들은 매일 가두방송을 진행했고 현장 안에서는 ‘6·29선언의 허구성과 노동자와 민주주의 관계’ 등의 문제로 현장토론을 진행했다.

 

노동자들은 8월 11일 금성사(지금의 LG) 노동자들의 가두시위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가두 투쟁에 돌입했다. 풍성전기 노동자들은 8대의 통근버스를 동원해 차량 가두시위를 벌였다. 금성사 노동자들의 가두진출 때는 창원기화기, 동우정기, 풍성전기, 동환산업 노동자들이 함께했다. 창원공단 안의 모든 노동자가 동지였다.

 

이 시기 노동자들의 투쟁은 주로 조선·자동차·석유화학 공장이 집중돼 있던 울산과 기계·철강 공장이 집중돼 있는 창원, 그리고 부산 등지에서 전개됐다. 이들 지역엔 현대·삼성·대우·금성 등 독점 자본의 주력 기업과 그 하청 공장들이 있었다. 공장의 밀집과 산업의 연관성은 파업이 연쇄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중요한 조건 중 하나였다. 그해 8월 22일 기준으로 창원 공단 공장의 3분의 2가 조업 중단 상태에 빠져 있었다. 마산 수출자유지역에서는 9월 3일 기준으로 총 73개 기업 중 41개 기업에서 투쟁이 발생했다.

 

 

현장노동자들의 직접행동

 

87년 노동자대투쟁으로 탄생한 마창노련은 전노협의 중심이 돼 88~89년으로 이어진 노동운동의 고양기를 이끌었다. 숱한 탄압을 이겨내며 전진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끊임없는 현장토론과 현장투쟁을 통해 노동자들의 크고 작은 직접행동을 조직했기 때문이다.

 

“준법투쟁은 ··· 작업복 뒤집어 입기, 구두 신고 사복 입고 작업하기, 1인 1벽보 붙이기 등 초보적인 투쟁에서부터 ··· 배식구 하나만 이용하여 점심 먹기, 한 화장실만 이용하기, 한 공중전화 이용하여 부모님께 전화하기, 신협통장 찾기 ··· 수미다노조의 ‘단체로 소화제 타먹기’, 전원 조퇴하여 ‘야유회’ 갖기, 통일노조의 ‘작업전표 기재 거부 및 화형식’, 조합원에게 망언을 한 회사 간부 사무실 앞에 ‘식사를 마친 식기 갖다 놓기’, 삼미금속노조의 휴식 시간마다 임투 구호 외치며 행진하기, 야간 횃불 집회, 싸이트포크 지게차 타고 사내 행진하기, 민방위 훈련 1, 2, 3(청색, 황색, 적색 - 10%, 50%, 90% 생산량 감축), 짬밥 본관 투척, 사장실로 식판 반납하기, 타코마노조의 휴식 시간에 바닥에 깔린 철판을 쇠망치로 두드리며 노래 불러 온 공장을 진동시키기 등 다양한 전술이 구사되었다.” (『내사랑 마창노련』김하경, 갈무리, 94~95쪽)

 

다음 호에 계속···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18 [투쟁의 기억(연재)] 1987년 7‧8‧9 노동자대투쟁 (4) 노동자계급은 전국적 세력 : 인천‧경기‧서울로, 운수와 광산업으로 확산되는 대투쟁 file 노건투 2017.04.03 232
» [투쟁의 기억(연재)] 1987년 7·8·9 노동자대투쟁 (3) 부산, 마산·창원으로 투쟁의 불길이 번지다 file 노건투 2017.03.21 228
216 [투쟁의 기억(연재)] 1987년 7·8·9 노동자대투쟁 (2) 노동자대투쟁의 시작-울산에서 불길이 솟구쳐 오르다 file 노건투 2017.03.06 243
215 [투쟁의 기억(연재)] 1987년 7·8·9 노동자대투쟁 (1) - 노동자대투쟁의 배경 file 노건투 2017.02.16 405
214 [투쟁의 기억]프랑스 68년 5월 노동자계급의 잠재력과 과제를 뚜렷하게 보여주다 file 노건투 2017.02.09 160
213 노동자민중은 왜 블랙리스트를 아주 뒤늦게 알 수밖에 없는가 file 노건투 2017.02.05 88
212 빈 수레가 요란한 문재인의 일자리 정책 file 노건투 2017.02.03 210
211 올바른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해 위험한 경향과 맞서야 file 노건투 2017.02.03 217
210 [투쟁의 기억] 박정희 사망 후 타오른 80년 봄 노동자투쟁 file 노건투 2017.01.21 119
209 [투쟁의 기억]4·19와 이승만 하야 그리고 노동자투쟁의 분출 file 노건투 2017.01.10 113
208 [박근혜퇴진투쟁]촛불이 기억해야 할 역사의 가장 위대한 유산 1917년 러시아 10월 혁명과 노동자 민주주의 file 노건투 2016.12.30 157
207 [기획]대규모 노조는 어떻게 역사의 선봉에 서 왔는가? file 노건투 2016.12.15 191
206 [박근혜퇴진투쟁]러시아판 박근혜를 퇴진시킨 다음 러시아 노동자들은 어디로 전진했는가? file 노건투 2016.12.01 115
205 [박근혜퇴진투쟁]러시아 노동자들은 ‘러시아판 최순실 사태’에 어떻게 대응했는가? file 노건투 2016.11.11 99
204 [박근혜퇴진투쟁]87년 6월 항쟁과 7·8·9월 노동자대투쟁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file 노건투 2016.11.10 166
203 [투쟁의 기억] 70년 전-1946년 9월 총파업이 해방정국을 강타하다 file 노건투 2016.10.09 157
202 [투쟁의 기억] 유진 뎁스 사회주의 선동으로 노동자의 심금을 울리다 ! file 노건투 2016.09.12 211
201 [기획]'중국 혁명의 비극' 1925~27년 중국 혁명의 진실을 낱낱이 파헤친 책 file 노건투 2016.09.10 293
200 [기획]스페인혁명 80주년에 다시 보는 '랜드 앤 프리덤' file 노건투 2016.09.09 385
199 [정치]민주노총 정책대대 ‘정치전략’ 논쟁과 진정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길 file 노건투 2016.09.01 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