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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뎁스

사회주의 선동으로 노동자의 심금을 울리다!

 

 

 

하층계급이 있는 곳에 내가 있고, 감옥에 단 한 사람이라도 갇혀 있는 한 나는 자유롭지 않다. 노동자와 착취자 사이의 끊임없는 투쟁에서,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죽을 때까지 운명을 함께할 노동자들을 위해 싸울 것이다.”

 

1918914, 유진 뎁스는 법정에서 이렇게 말했다. 뎁스는 1차 세계대전 기간에 징집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미국판 국가보안법에 걸려 잡혀들어갔다. 뎁스는 법정에서 전쟁을 낳은 자본주의 체제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그는 지배자들에게 선처를 바라면서 자기 사상과 투쟁을 비굴하게 감추지 않았다. “나는 사실을 부정할 생각이 없다. 나는 현 정부를 반대한다. 현 사회체제도 반대한다. 나는 한줌 지배자들이 다수 민중을 지배하는 것을 끝장내고, 산업과 사회의 (새로운)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오래 활동해왔다.”

 

 

내가 참여할 전쟁은 오직 하나뿐

 

그는 전 세계 노동자들에게 줄기차게 외쳤다. “참전하지 말자. 지배자들의 이익과 야망을 위한 살인행위를 중단하자.”

 

그는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비난했을 뿐만 아니라, 억압자들에 맞선 피억압자들의 전쟁에 나서자고 호소했기 때문에 10년형을 선고받았다.

 

1918년 초에 언론은 (다른 상당수의 사회주의자 및 노조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뎁스도 전쟁을 지지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때 뎁스는 이렇게 말했다.

 

노동자에겐 조국이 없다. 현 국가는 자본가국가일 뿐이다. 나는 자본주의 병사가 아니고 노동자혁명가다.” “내가 참여할 전쟁은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전 세계 착취자들에 맞선 전 세계 노동자들의 전쟁이다. 다른 나라를 정복하고 약탈하기 위해 여러 나라 지배자들이 벌이는 전쟁에 노동자계급은 이해관계가 없다. 이런 내 입장은 수년 전부터 지금까지 전혀 변한 게 없다.”

 

재판 과정에서 밝힌 입장을 뎁스는 1926년에 죽을 때까지 일관되게 유지했다.

 

그는 볼셰비키, 즉 러시아에서 노동자혁명을 이끌었던 투사들도 옹호했다. “볼셰비키들이 결국 패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영광스러운 역사를 써왔다. 이것은 그들의 영원한 공적이다.”

 

 

더 넓은 전망

 

물론 뎁스가 성숙한 혁명적 사회주의자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아니다. 그는 노동자당도 없고, 이렇다 할 만한 사회주의운동도 없는 나라에서 자라났다. 하지만 그는 어른이 되었을 때부터 노동자들이 자기 이해를 방어하기 위해 스스로 더 잘 조직할 수 있는 방법을 항상 찾으려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는 자신이 따라왔던 길이 한계를 드러냈을 때,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는 점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더 넓은 전망을 찾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 전망이란 노동자계급한테는 문제투성이인 낡은 자본주의 체제를 철폐하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잠재력이 있다는 것이다.

 

 

철도노동자에서 사회주의 지도자로

 

철도노동자로 일했던 뎁스는 철도의 모든 업종 노동자를 하나의 노조로 단결시키기 위해 투쟁했다. 업종별로 쪼개져 있으면 철도를 완전히 멈춰세울 수 없고, 철도 자본가들을 물러서게 만들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1894년 철도파업에 민주당 정부가 군대를 투입해 파업노동자 30명을 죽이고, 700명 넘게 연행해가는 것을 보면서 뎁스는 민주당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났다. “나는 평생 민주당원이었다. 그 점이 부끄럽다.”

 

1894년 말에 그는 6개월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뎁스는 감옥에 들어갈 때는 민주당원이었지만, 나올 때는 사회주의자였고 나중에는 평생 바뀌지 않았다. 뎁스는 맑스와 엥겔스의 사상을 접한 다음 노동자계급이 자신을 정치적으로 조직해야 하며, 자본주의를 개혁할 것이 아니라 철폐하고 새로운 사회로 대체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사회주의는 선거용 미끼가 아니다

 

다른 노동자투사들과 함께 1901년에 미국 사회당을 창건한 뒤, 뎁스는 전국 곳곳을 순회하면서 노동자들과 농민들에게 사회주의 사상을 체계적으로 전파하기 시작했다. 그는 노동자 출신이었기에 노동자, 농민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지 알았다. 그는 노동자, 빈농 등 평범한 사람들이 사회당으로 몰려들게 했다.

 

그는 공격받는 파업노동자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주기 위해 파업현장들에 돌아다녔다. 그는 파업현장에서 착취자들에 맞선 노동자들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을 보았고, 그 진실을 말했다. 1914년에 록펠러 광산에서 용역깡패들이 파업 현장을 공격해 13명을 죽였을 때, 뎁스는 파업노동자들에게 정당방위대를 꾸리자고 주장했다.

 

그는 연행당한 파업노동자, 깡패 폭력의 희생자가 되고 있던 세계산업노동자연맹(IWW) 및 정치투사들을 방어하기 위해 집회에서 연설했다.

 

1914년 미국 윌슨 정부가 멕시코에 미 해병대를 파병했을 때 뎁스는 그것이 스탠더드 오일 회사의 재산을 지키기 위한 것일 뿐이라며 날카롭게 비판했다.

 

노동자들과 빈농 사이에서 가장 잘 알려진 정치인이었기 때문에, 뎁스는 1900년부터 1920년까지 다섯 차례나 사회당 대선 후보로 출마했다. 뎁스는 평상시처럼 선거운동 공간을 노동자계급이 사회주의를 건설할 필요성과 그 가능성에 대해 노동자들에게 선동하는 공간으로 활용했다. 그리고 그는 득표수를 최고로 여겨, 무슨 수를 써서라도 득표수를 올리려 하는 것은 혁명정당의 단호하고 비타협적 정신에 어긋난다. 사회당의 강령과 정책은 교육수단이지 선거용 미끼가 아니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견지했다.

 

 

새 세상의 건설자

 

유진 뎁스한테 한계가 없었던 건 아니다. 191710월 러시아 노동자혁명 이후 미국 사회당 안에서 격렬한 내부투쟁이 벌어졌고, 사회당의 한계를 넘어설 혁명적 노동자당(공산당) 건설 흐름이 만들어졌지만 뎁스는 거기에 적극 동참하지 않았다. 하지만 뎁스는 모든 선거연단, 모든 파업현장, 모든 집회에서 자본주의와 미국 제국주의를 규탄하면서 노동자계급이 자신들의 사상, 즉 사회주의를 움켜쥐게 하기 위해 분투했다.

 

우리는 노예적이고 수치스런 자본주의 제도를 철폐하고, 자유롭고 인간적인 제도를 건설할 것이다. 세상은 날마다 우리 눈앞에서 바뀌고 있다. 자본주의 태양이 지고 있고, 사회주의 태양이 떠오르고 있다. 자유로운 새 공화국을 건설하는 것이 우리 의무다. 우리 사회주의자들은 아름다운 새 세상의 건설자다.

 

박인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