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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방송’을 넘어 ‘노동자의 방송’을 향해

오연홍 노동자운동 연구공동체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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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보도국에서 파견직으로 일했던 비정규직 노동자 다섯 명은 더 이상 파업기간에 부역자로 일하고 싶지 않다며 퇴사를 선택했다. 이들을 그냥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는가.

사진_언론노조 MBC본부
 

 

 

방송사파업을 볼모로 활용해 서로 상대방을 공격하려는 지배계급 파벌들(민주당과 자유한국당) 간의 다툼이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저들 내부의 다툼에 우리가 휘말릴 이유가 없다. 반대로 파업노동자들은 투쟁의 전선을 간결하고 명확하게 만들어가야 한다. 이 투쟁을 어디로 밀어갈 것인지 방향이 분명해야 한다.

 

 

공정방송

 

파업에 나선 방송노동자들은 언론의 자유, 공정방송을 외친다. 정권의 개입으로 입을 틀어막힌 방송노동자들은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현실에 자괴감을 느꼈다. 겉모습은 다를지라도, 이들 역시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외치며 싸워왔던 다른 모든 노동자들과 다를 바 없다. 방송에 채워진 부당한 족쇄를 끊고 싶은 이들의 열망을 우리는 지지해야 한다.

 

그런데 공정방송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투쟁의 초점이 된 사안에 대해 똑같은 시간을 분배해 자본가에게 한마디 듣고 노동자에게 한마디 들으면 되는 걸까? 노동자의 절박한 목소리가 거의 전달되지 않는 언론 현실에 비춰볼 때, 이런 방식이 공정하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다. 예컨대 손석희의 JTBC뉴스가 이런 ‘이미지’로 많은 인기를 끌었다.

 

 

함정

 

그러나 잠깐의 감흥을 거두고 냉철하게 그 결과물을 돌아보자. JTBC뉴스에서도 노동자의 진실한 목소리는 가뭄에 콩 나듯 거의 듣기 힘들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서로 적대하는 계급들의 목소리를 공정하게 들려주는 ‘공정방송’을 상상해보더라도 그 귀결점은 결국 ‘공정한 자본주의’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않은가.

 

그런 방송이 흘러나오는 사회에서도 노동자들은 여전히 ‘공정’하게 착취당하며 자본가들의 부를 늘려줄 것이다. 게다가 그런 공정한 프로그램들은 그저 양념처럼 곁들여질 뿐 결코 우리 사회 방송 전체의 색채를 바꾸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방송이라는 매체는 자본주의라는 토양과 뗄 수 없이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체제 관리 도구

 

자본가들에게 방송은 단순한 돈벌이용 상품에 그치지 않는다. 자본가들은 여러 방송을 이용해 노동자의 의식과 심리를 장악하려 한다. 뉴스에선 파업을 비방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다큐에선 기계처럼 죽어라 일하는 노동자를 달인이라고 칭송한다. 드라마는 역경을 이겨낸 평범한 주인공의 성공 신화를 보여주며 환상을 부추긴다. 오디션 프로그램들은 피 말리는 경쟁과 승자 독식의 논리를 학습시킨다.

 

이런 속성들이 하나로 뒤섞이면서 방송은 노동자계급을 체제에 순응하는 무기력한 대중으로 전락시킨다. 지배계급에게 이런 방송은 마법의 지팡이 같은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방송을 자신의 손아귀에서 결코 놓치지 않으려 한다. 방송이 자본가계급의 나팔수 역할에 충실할 수 있도록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국정원 개입도 그런 수단의 일부다.

 

 

누가 통제할 것인가

 

그러나 가장 강력한 수단은 방송사들을 자본가계급이 소유한다는 데 있다. 자본가들이 직접적으로, 또는 그들의 국가라는 매개체를 통해 방송사 건물, 프로그램 제작과 송출에 필요한 모든 장비와 시스템을 통제한다. 이를 바탕으로 방송노동자들의 모든 작업을 지시하고 통제하며 착취하는 강력한 권한을 행사한다(이것이 ‘사적 소유’라는 말의 의미다).

 

방송을 여전히 자본가 또는 자본가국가가 소유한다면, 따라서 방송노동자들에 대한 자본가들의 지휘 통제가 그대로라면, 언론의 자유란 한낱 허상이다. 방송노동자들이 박탈당했던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는 실질적인 길은 방송에 대한 자본가들과 정부의 지휘 통제권을 박탈하는 것이다. 노동자 스스로 방송산업을 통제해야 한다. 그 도달점은 ‘공정방송’같은 어중간한 환상이 아니라 철저하게 노동자계급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노동자의 방송’일 수밖에 없다.

 

 

다른 길이 없다

 

당연히 자본가들과 정부는 이런 요구를 거부할 것이다. 체제 관리 도구로서 방송의 위상을 뒤흔드는 치명적인 위협으로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국장책임제 같은 최소한의 견제장치도 폐지하고 노동조합과 맺은 단협 자체를 해지하는 방식으로 노동자의 권한을 말살하려 한다.

 

벼랑 끝에 서 있는 방송노동자에게 다른 길이 있을까? 여기에서 투쟁을 멈춘다는 것, 뒤로 물러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할지 누구보다도 방송노동자들 자신이 잘 알고 있다. 전진해야 한다. 그러려면 절충적 목표를 넘어 노동자에 의한 방송산업 통제, ‘노동자의 방송’이라는 명확한 목표를 내걸어야 한다.

 

 

그런 투쟁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방송사파업이 장기화되는 건 한편으로 자본가들과 정부의 저항이 만만치 않다는 걸 뜻한다. 이는 동시에 저들의 저항을 제압할 만큼 충분한 파업의 힘을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 호 기사에서도 민주노총 같은 조직노동자들의 연대가 큰 힘이 될 거라고 이야기했다.

 

이와 함께 방송사 내부에서 파업의 힘을 극대화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다. 그 잠재력은 충분하다. 파업이 시작되면 방송사에선 프리랜서 작가와 PD 등 비정규직노동자들에게 작업을 지시하며 파업대체인력으로 부려먹는다. 제작 거부란 곧 해고를 뜻하는 비정규직 방송노동자들에게 이런 회사의 요구는 거역할 수 없는 압력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라디오 작가와 리포터, TV 프로그램 작가와 PD, 여러 장비를 다루는 스태프 등 그동안 노동조합 가입조차 어려웠던 비정규직노동자들이 대거 파업 지지의사를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MBC 보도국에서 파견직으로 일했던 비정규직노동자 다섯 명은 더 이상 파업기간에 부역자로 일하고 싶지 않다며 퇴사를 선택했다.

 

 

누가 이들의 손을 잡을 것인가?

 

정규직 조합원들은 해고돼도 ‘돌아갈 직장’이 있지만, 이들에겐 돌아갈 곳이 없다. 그래서 많은 방송사 비정규직노동자들이 파업을 지지하면서도 쉽사리 파업에 동참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노동자들의 마음을 붙잡지 않은 채 파업의 위력을 도약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파업하는 노동자들이 이 비정규직노동자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불안감에 맞서 노동조합이 함께 싸우고 기꺼이 울타리가 되어야 한다. 파업을 지지하기 위해 퇴사를 선택하는 방송사 비정규직노동자들에게 ‘퇴사 대신 노동조합 가입’을 제안하고 함께 단결해 투쟁하고 그들의 일자리를 보호해야한다. 정규직인가 외주업체 비정규직인가를 가리지 않고, 작가인가 아나운서인가 스탭인가를 가리지 않고 방송사에서 일하는 노동자라면 누구라도 두려움 없이 노동조합과 파업에 함께할 수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거기에서 파업 승리의 원동력이 나올 것이고, 노동자가 통제하는 방송이 결코 불가능한 꿈이 아니라는 확신도 자라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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