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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브로드밴드비정규직지부

민주노조로 거듭나기 위해 오류를 직시하는 것부터

이청우

 

 

 

9면 sk.jpg

기만적인 자회사를 폭로하고 미전환센터 즉각 전환을 쟁취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SK서린빌딩 앞에서 노숙농성에 돌입한 미전환센터 조합원들.

 

 

가짜 정규직화에 맞선 투쟁

 

SK브로드밴드는 5월 21일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정책에 발맞추듯 비정규직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직접채용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실내용은 진짜 정규직화와는 거리가 먼 자회사를 통한 고용이었다. 임금과 근로조건 개선도 미미했고, SK는 일부 저항하는 업체 사장들과 계약을 갱신해 자회사 미전환센터들을 남겨둠으로써 노동자의 분열을 만들어냈다.

 

이처럼 공공부문에서는 인천공항공사가, 민간부문에서는 SK가 가짜 정규직화 흐름을 대표했다. SK에서 이런 가짜 정규직화를 폭로하고 그것을 넘어 노동자들이 전진할 수 있느냐는 전체 민간부문 비정규직노동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사회적 전투였다. 정부와 자본이 던지는 ‘개량 없는 개량’을 더 폭넓은 단결과 투쟁의 기회로 역전시켜야 했다.

 

 

한계와 가능성

 

SK브로드밴드비정규직지부(이하 지부)는 자회사로 전환되는 7월 1일에 아주 낮은 수준의 임단협 ‘사전합의서’를 잠정합의했다. 자회사로 전환되긴 하지만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불확실한 상황 때문에 혼란스러웠던 노동자들은 ‘사전합의서’를 가결시킴으로써 일단 조금이라도 불확실성을 제거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섣불렀다. 자회사는 온갖 독소조항을 포함한 취업규칙을 들이밀었고, 일방적으로 회사정책을 시행하려 했다. 불만이 쌓여갔다.

 

조합원들은 마침 동시에 진행된 지부 임원선거에서 ‘투명하고 민주적인 노조’ ‘교섭이 아니라 투쟁으로 쟁취’ ‘잠정합의안 반대, 노동자가 주도하는 자회사’라는 기치를 걸고 출마한 전투파 후보를 지지했다. 지난 3년간 중재교섭, 밀실교섭에 넌더리가 났던 조합원들은 어쩔 수 없이 자회사 잠정합의안은 찬성했지만 지도부로는 전투파 후보를 선택했다. SK자본과 제대로 붙기 위해서, 민주노조 기풍을 다시 세워야 한다고 생각하며 전투파 후보를 지지한 것이다.

 

 

잘못된 교섭과 합의

 

새 지부 집행부는 하나씩 문제를 풀어가야 했다. ‘사전합의서’가 가결된 상태였지만 취업규칙의 독소조항을 제거하고, 일방적으로 시행하는 회사정책에 맞서야 했다. 특히 미전환센터 조합원들의 투쟁에 자회사 조합원들도 함께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했다. 사전합의서대로가 아니라 새로 교섭을 요구하고 임단협투쟁을 조직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밀실교섭으로 무너져온 노동자 민주주의를 시급히 회복해야 했다.

 

신임 집행부는 핵심 투쟁목표와 요구를 정리했다. 조합원들과 소통하고 의견수렴을 거치기 시작했다. 조합원들은 자회사에 대한 불만과 민주노조에 대한 열망을 갖고 있었지만, 몇 년간 관료적 지도부 하에서 축적된 수동성과 패배주의 때문에 당장 투쟁에 적극 나서겠다는 결의는 아직 충분하지 않았다. 게다가 자회사 전환 과정에서 가입한 신규조합원이 전체의 1/3을 차지했다. 그래서 신임집행부가 조합원들의 불만을 민주적 토론 속에서 자주적인 투쟁요구로 승화시키고, 직접 참여해 움직일 수 있는 투쟁계획을 제시함으로써 조합원의 힘을 끌어올리는 게 중요했다. 이것이 사전합의서 문구를 몇 개 바꿀 수 있느냐보다 몇배 더 중요했다.

 

그리고 이것은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미전환센터 조합원들은 투쟁을 이어가고 있었고, 현장에서도 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앞서 싸우려는 부위의 힘을 집중시키고 전체 조합원을 낮은 수준에서라도 움직이도록 이끌어야했다. 지부 집행부도 그렇게 방향을 잡았다. 노동자들이 자기 힘을 동원하는 경험이 쌓이고 자신감이 생긴다면 지금 당장 문구 몇 개를 따내지 못하더라도 이후 전체 조합원의 힘을 남김없이 동원하는 전면투쟁으로 전진할 수 있는 중요한 토대를 다질 수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임 집행부는 어이없게도 9월 17일 일요일, 자회사와의 7차 교섭을 밤을 새 연장하며 결국 임단협 잠정합의안을 도출했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사전합의서 조차도 부정하는 사측의 개악안을 부분 철회시키고, 일부 단협 문구를 수정하는 수준의 합의였다. 미전환센터 조합원 관련해선 아무런 내용이 없었다.

 

 

명백한 실책과 오류

 

이번 투쟁의 목표가 조합원을 교섭과 투쟁의 주인으로 참여시키면서 민주노조의 기본 원칙을 세우고 조합원의 힘을 최대치로 끌어내는 것이었다면, 이제 막 현장투쟁 계획을 실천하기 시작했고 분위기를 점차 달궈가던 시기에 덜컥 합의한 건 완전한 오류다. 더구나 일요일 밤샘교섭은 조합원들이 교섭과정, 내용, 합의여부를 통제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했다. 앞장서 싸우고 있는 미전환 조합원들, 투쟁하려는 조합원들과 어떠한 의견수렴이나 설득과정도 없이 합의함으로써 투쟁하려는 부위의 의지를 꺾어버리고 단결을 훼손했다. 선거과정에서, 투쟁을 조직하기 위해 조합원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했던 약속을 스스로 부정한 것이다.

 

집행부의 한 동지는 “조합원들의 투쟁열기가 생각보다 올라오지 않으면서 단협 문구에 사로잡혔다”고 고백했다. 후진적인 압력에 미끄러진 것이다. 전혀 예상 밖의 일이 아니었는데도 자본이 강한 힘을 발휘하는 교섭장에서, 투쟁하려는 노동자들의 압력이 전혀 미치지 않는 일요일 밤샘교섭으로 떠밀리면서 오류를 범했다.

 

 

무엇에 의지해야 하는가

 

지부장은 합의 직후 문제제기가 나오자 스스로의 오류에 대해 핑계대거나 합리화하지 않고 솔직하게 인정했다. 뒤늦게라도 조합원들에게 잘못을 사과하고 사태를 바로잡고자 했다. 그러나 스스로 실책의 당사자였기 때문에 간부들과 조합원들에게 잠정합의안 폐기를 설득하고 호소할 정당성과 명분을 잃었다. 결국 잠정합의안을 폐기하자는 주장은 전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노동조합 민주주의의 원칙을 훼손하는 전례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 최소한 찬반투표로 조합원들이 결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7월 1일 잠정합의한 사전확인서에 대한 찬반투표가 가결된 상황에서 또 다시 찬반투표하는 것은 불필요하다”는 주장에 밀렸다. 오류를 합리화하는 최악의 상황으로까지 굴러떨어지지는 않았지만, 잘못을 바로잡는 데서도 실패한 것이다.

 

다행히도 단결과 투쟁으로 제대로 된 민주노조를 세워내려는 전투적인 조합원들은 잘못된 교섭에 대한 비판 입장을 제출했다. 신입 집행부에 대한 신뢰와 기대가 컸지만 실책과 오류를 감싸기보다는 정확히 비판함으로써 제대로 된 민주노조의 길을 가야 한다고 질책했다. 미전환 조합원 일부가 SK 서린빌딩 앞 농성에 들어갔다. 잠정합의가 잘못된 것이고 이를 바로잡는 건 투쟁밖에 없다는 걸 실천으로 보여줬다. 이곳은 조금씩 미전환 조합원들의 투쟁거점이 되어갔다. 자회사 조합원들도 함께하기 시작했다.

 

집행부가 의지해야 했던 것은 바로 이것이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합의문구 상의 성과’가 아니라 노동자의 단결과 투쟁이 성장하는 것이 진정한 성과이고, 오직 이것을 통해서만 민주노조와 노동자생존권을 지켜낼 수 있다는 정신, 또한 싸우려는 노동자의 힘에 의지해 전체 노동자를 설득하는 정신, 바로 그것이다. 이런 정신으로 무장해 전투적이고 선진적인 노동자들이 집행부, 교섭, 투쟁을 아래로부터 통제할 수 있게 보장하고 이들의 힘을 노동조합 속에서 부단히 강화하는 것, 바로 이것이 이번 뼈아픈 실책과 오류를 통해 분명히 되새겨야 할 원칙이다.

 

 

노건투는 이번 SK브로드밴드비정규직지부 잠정합의 과정을 평가할 때 우리 자신의 활동에 대해서도 반드시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스스로의 실책과 오류에 대해 철저한 평가와 반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이후에 꼭 그 내용을 제출하겠다는 약속을 드린다. 교섭장에서의 압력을 견뎌내고 아직 투쟁 결의가 높지 않은 조합원들을 앞선 부위가 이끌도록 조직하고 전체 조합원의 단결된 투쟁으로 전진하기 위해서 무엇에 의지해야 하는지, 조직은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 깊이 성찰하는 또 한 번의 계기가 됐다. 실책과 오류를 곱씹으며, 열 배의 책임성과 원칙성으로 옳게 전진할 수 있도록 분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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