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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O 협약 비준 둘러싼 치열한 전투

 

오민규 노동자운동 연구공동체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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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에겐 2019년 ILO 100주년이 중요할지 모르지만, 노동자계급은 바로 지금! 2017년 러시아혁명 100년을 되새기며 전투를 준비해야 한다. 사진_노동과세계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시기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국정과제에도 포함됐다.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렇다. ILO는 국제 노사정기구이기에 정부, 노동자, 자본가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놓여 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ILO 핵심협약 즉각 비준’을 요구하며 투쟁의 시동을 걸고 있다. 자본가들은 협약 비준 자체는 반대하지 않지만, 협약과 충돌하는 다수 국내법을 이유로 법 개정 논의를 충분히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부의 태도

 

문재인 정부는 ILO 협약 비준 그 자체를 목표로 하고 있지 않다. 협약 비준을 고리로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실현하는 데 훨씬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한국노총조차 이탈해 의미를 상실한 노사정위원회를 되살리고, 여기에 민주노총을 끌어들여 묶어두는 게 핵심 목표다.

 

9월 초 한국을 방문한 가이 라이더 ILO 사무총장의 행보를 봐도 명확하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한국 정부의 ILO 핵심협약 비준 의지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러고선 돌연 박원순 서울시장과 공동기자회견을 열었다. “2년 전 중단된 노사정 사회적 대화 복원을 촉구한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양 노총이 노사정위의 허구성을 폭로하며 대화에 참여하지 않는 상황이므로, ILO 사무총장의 주장은 양 노총을 정면으로 겨냥한 것이다. 국제‘노동’기구의 본질이 국제 ‘노사정’기구임이 여실히 드러난다.

 

문재인 정부의 기본계획은 2019년 경 ILO 협약을 비준한다는 것이다. 2019년은 ILO 창립 100주년이 되는 해다. 하지만 100주년은 ‘숫자의 정치학’일 뿐 큰 의미는 없다. 지금부터 2년 동안 ILO 협약 비준을 비롯한 국제노동기준을 미끼로 던지며 노사정 사회적 대화에 민주노총을 끌어들이려는 술책에 불과하다.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ILO 헌장 부속문서에 포함된 필라델피아선언의 첫 문구다. 멋진 말이다. 하지만 현실로 돌아와 보자. 오히려 필라델피아선언은 노동(력)을 상품으로 전락시키는 자본주의 체제의 비밀을 은폐하고 있다. 노동자계급이 지향해야 할 목표는 “노동(력)을 상품으로 만들어버리는 자본주의 체제를 극복하고 노동해방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이어야 한다.

 

민주노조운동의 도도한 물결이 조직된다면, ILO 협약 비준이라는 쟁점을 노동자계급의 무기로 활용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우리가 되새겨야 할 정신은 필라델피아선언에 담긴 ILO의 정신이 아니다. 전 세계 자본가계급과 정부들이 ILO 같은 기구를 만들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던 1917년 러시아혁명의 정신, 그리고 노태우 정권과 경총의 정치적 의도대로가 아니라 노동의 무기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던 1987~1991년 민주노조운동의 정신이다.

 

문재인 정부에겐 2019년 ILO 100주년이 중요할지 모르지만, 노동자계급은 바로 지금! 2017년 러시아혁명 100년을 되새기며 전투를 준비해야 한다. ILO 협약 비준을 둘러싼 정부와 자본가들, 그리고 노동자계급이 진행해야 할 치열한 전투를!

 

 

 



 

ILO 탄생의 배경 – 러시아혁명의 충격

 

 

ILO(국제노동기구)는 1919년에 국제연맹(UN의 전신)의 노동전문기구로 설립된, 가장 오래된 국제기구 중 하나다. 그때까지만 해도 국제적인 노동기준과 입법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자본가들과 정부들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오히려 자본가들의 탐욕은 인류를 절멸 위기로 내몬 제국주의 전쟁을 잉태했다.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 1917년, 세계대전 한복판에서 러시아혁명이 성공하고 세계 최초로 노동자권력이 수립된다. 유럽 전역에서 사회주의 노동운동과 혁명운동이 성장한다. 탐욕스런 전쟁에 정신이 팔려있던 자본가들과 정부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혁명의 물결이 번져나가는 걸 막기 위해 국제노동기준과 입법을 주장한 전문가 및 노동조합의 요구를 대폭 수용하기로 결정한다. 이렇게 해서 1차 세계대전 종결 후 ILO가 탄생했다.

 

 

국제 노사정기구(협의체)

 

ILO는 부족하나마 노동조합과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노력을 진행해야 했다. 당시 러시아혁명의 영향력이 실로 엄청났기 때문이다. 10월 혁명 후 나흘 만에 소비에트정부는 8시간 노동제를 선포한다. 세계 최초로 여성 참정권이 인정됐고, 이혼과 낙태의 자유가 전면 보장됐다. 모든 피착취인민에게 언론 결사 집회의 자유가 선언됐다. 전 세계 노동자가 러시아 혁명에 환호했고, 각국 정부와 자본가들은 혁명의 압력 앞에 놓였다.

 

러시아혁명 꼭 2년만인 1919년 10월, ILO 제1차 총회에서 각국 노사정 대표들은 역사적인 제1호 협약에 합의한다. “공업부문 사업장에서 노동시간을 1일 8시간, 1주 48시간으로 제한하는 협약” - 러시아혁명의 영향력을 쉽게 알 수 있는 대목 아닌가.

 

 

한국의 ILO 가입

 

1991년 노태우 정권은 노동탄압 후진국 이미지를 벗기 위해 ILO 가입을 활용하려 했다. 경총도 마찬가지였다. 노동자 대투쟁과 전노협 결성이 없었다면, ILO 가입은 노태우 정권의 정치적 목적대로 활용됐을지도 모른다. 도도하게 전개된 민주노조운동의 진출이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놓았다.

 

1991년 10월, 전노협, 업종회의, 전국노운협, 전국노련 등이 함께 ‘ILO공대위’를 결성하고 ILO 협약 비준과 노동법 개정투쟁에 돌입한다. 그해 11월, 6만 규모의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했고, 1992년 2월에는 한국 정부를 ILO에 제소하기에 이른다. 1993년 3월, ILO 결사의자유위원회는 ILO공대위의 제소내용을 거의 그대로 수용하는 권고를 채택했다. 한국 정부가 불법으로 낙인찍은 전노협의 대표성이 국제기구에서 인정되는 순간이었다.

 

민주노조운동은 여세를 몰아 1993년에 전노협, 업종회의, 대노협, 현총련이 모여 ‘전국노동조합대표자회의(전노대)’를 구성했으며, 이는 1995년에 민주노총 결성의 모태가 된다. 민주노조운동의 적극적인 진출은, 정부와 자본가들의 도구로만 활용될 수도 있었던 ILO 문제를 노동자계급이 활용할 수 있는 무기로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모든 노동자에게 노조할 권리를!

   

ILO 협약에는 노동조합을 갖지 못한 수많은 미조직 비정규직노동자의 권리가 담겨 있다. “결사의 자유 원칙에 의해 군인과 경찰을 제외한 모든 근로자는 스스로 선택한 단체를 설립하고 그런 단체에 가입할 권리가 있어야 한다.” 실업자와 구직자는 물론이고, 한국 정부가 한사코 자영업자로 분류해 노동기본권을 빼앗으려 하는 특수고용 노동자도 예외가 될 수 없다.

 

고용관계 존재 여부를 노동기본권 보장의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내용도 있다. 하청노동자가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하면 “근로계약 당사자가 아니다”라는 이유로 거부당하곤 하는데, ILO가 적용하는 노동기준에 따르면 이것은 심각한 노동기본권 침해다.

 

현대자동차, 기륭전자, 하이닉스매그나칩, 삼성전자서비스 등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원청의 사용자책임을 요구하며 투쟁해온 수많은 사건들에 대해, 민주노총은 한국 정부를 ILO에 여러 차례 제소했는데 ILO 결사의자유위원회는 일관되게 이렇게 판정했다.

 

“위원회는 노조할 권리 행사를 회피하기 위해 사내하청을 활용한다는 지속되는 혐의에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위원회는 이에 관해 관련 노조와 간접고용 노동자의 고용기간, 조건을 결정하는 당사자 사이의 단체교섭이 항상 가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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