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본문시작

독자투고

영화 <예고범>

노동자운동이란 대안이 있었어도 예고범이 나타났을까 ?

 

 

 

범죄자가 있다. 신문지로 정체를 숨긴 채 자신이 저지를 범행을 인터넷에서 미리 알린다. 그들이 심판하는 대상은 법망을 피하는 사회의 암적 존재들이다. 그들은 화면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나를 위한 게 아니라 너희를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또 너희를 모욕하는 인간을 자신들이 죽이겠다고 외친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이런 범행을 저지르는 것일까?

 

 

노력으로 될 수 있다면

 

정직원으로 채용되기 위해 3년간 파견사원으로 일하며 사장의 부당한 처우를 참아내는 주인공 오쿠다 히로아키. 대부분의 파견사원이 그렇듯 정규직 사원들의 비웃음을 견뎌내며 야근을 밥 먹듯 하고 청소까지 도맡아 한다. 그러다 그는 병으로 입원하고 회사는 그를 해고한다. 실직당한 뒤로는 그 어떤 노력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사회를 향한 그의 분노는 신문지남을 만들어냈다. 그런데도 그가 택한 결말이 자살이었다는 점은 슬프게 다가온다.

 

이에 떠오르는 사건이 있다. 작년 10월 서울대생 스무 살 청년의 자살이다. 그 청년에게도 이 사회가 용인한 선택지는 자살이었다. 자살이 아니었다면 청년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대안은 없던 것일까. 영화 속 인물 오쿠다는 현실 속 절망적인 우리와 다름없다.

 

또 다른 삶이 있다. 불우했던 시절을 노력과 근성으로 극복하고 형사가 된 요시노 에리카. 그녀는 자신의 가치관인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노력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신문지를 쓴 예고범을 재단한다. 모든 문제를 사회 탓으로 돌리는 놈들이라고. 이에 오쿠다는 노력으로 될 수 있다면, 이미 행복한 거야라고 응수한다. 노력하면 못할 것이 없다는 말을 내뱉는 기득권층에게 날리는 일침으로 들려 통쾌하기까지 하다.

 

 

 

 

9면 예고범.jpg

 

아키하바라 살인사건 이후 일본에서는 파견법 개정을 요구하는 여론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지난 2009년 일본의 노동자들이 집회를 벌이는 모습.  (사진_매일노동뉴스)

 

 

 

영화보다 참혹한 현실

 

20086월 일본 도쿄 아키하바라에서 무차별 살인사건이 일어나 7명이 죽고, 10명이 다쳤다. 일본인 대부분이 충격적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고 반응했다. 그런데, 7명이나 살해당한 사건에 대해 그 방식은 용서할 수 없지만, 공감한다.’는 반응도 나왔다. 어찌 된 일인가?

 

용의자는 범행을 저지르기에 앞서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천 번 가까이 비정규직 관련 글을 써 올리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는 자동차 부품회사에 파견된 비정규직노동자였으며, 해고불안에 항상 시달렸다. 불안과 분노를 나눌 친구도 없는 상황에서 방향을 잃은 폭력이 참사를 낳았다. 그는 자기 목소리를 듣지 않는 사회에 불만을 품었을 테고, 이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지자 무차별 살인을 벌였다.

 

이런 문제의 원인은 오롯이 개인에게만 있는 것일까? 살인자를 처벌하면 더 이상 이런 범죄는 일어나지 않을까? 오히려 거듭 비정상적인 범죄가 발생하도록 강제하는 사회구조를 직시해야 하지 않을까?

 

 

무엇이 예고범을 만드는가?

 

누군가가 올라서면 또 다른 누군가는 추락한다. 이 체제가 없앨 수 없는 모순이다. 자살을 택한 영화와 현실 속 모든 이에게 노동자계급 운동의 대안이 보였다면, 그들이 그렇게 극단적으로 나아갔을까? 한편으로 이 영화가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점은 현재 일본 노동자운동의 현주소를 나타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도 이 영화에서 우리가 되새겨야 할 것은 무엇인가? 신문지집단이 소박한 꿈을 이루기 위해 서로 인간적인 관계를 맺고 보여준 행동이다. 돈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는 사회에 대한 저항과, 자존심을 빼앗아가려는 그 무언가에 대해 분노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다. 이런 분노와 저항은 모든 평범한 노동자가 갖고 있는 소중한 잠재력을 보여준다. 일상에서 노동자의 분노가 하나로 모이고, 방향성을 갖는다면,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될 것이다. 우리가 꿈꾸는 미래는 우리 자신 속에 있다.

 

김누로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24 [투고] 해고자의 이름으로 산다는 것 file 노건투 2018.02.08 313
123 [투고] 서평 '역사의 무대에 뛰어오른 노동자계급(87년 7.8.9노동자대투쟁)' 선배 노동자들이 쌓아올린 고지에서 다시 출발하자 file 노건투 2017.09.22 335
122 [투고] 전교조, 학교비정규직노동자들의 손을 잡지 못했다 file 노건투 2017.09.18 601
121 [투고]부당해고 대법승소,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조직화로 동지들께 보답하겠다   file 노건투 2017.07.19 429
120 [투고]청소노동자의 행진은 계속된다 ! file 노건투 2017.05.02 377
119 [투고] “반항하면 쇠고랑 찰 줄 알라”고? - 도시가스 검침원 노동자들의 파업 이야기 file 노건투 2017.02.17 309
118 [투고] 대표 구호 ‘일요일엔 쉬고 싶다’-인천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비정규직지회 출범식을 다녀와서 file 노건투 2017.02.17 248
117 이재용 구속영장 기각 그래도 반올림의 농성은 이길 때까지 이어진다 file 노건투 2017.02.06 144
116 [투고]허울 좋은 반값등록금 file 노건투 2016.12.14 199
115 11월 9일 창원 집회 자유발언 “선출되지 않았지만 모든 걸 쥔 권력이 진짜 권력” file 노건투 2016.11.29 169
114 [투고]고3 학생의 투고 우리는 ‘하야 클럽’… 열심히 뛰며 ‘박근혜 하야’를 목 터져라 외쳤다 file 노건투 2016.11.28 157
113 조선소 하청노동자 대행진은 이제 시작이다 file 노건투 2016.11.15 171
112 [투고]작은 파열-창원대에서 불붙은 촛불 file 노건투 2016.11.11 159
111 [투고]세브란스병원과 용역업체 태가비엠의 탄압이 거세질수록 우리 투쟁의 정당성은 더욱 커진다 file 노건투 2016.11.02 180
110 [기고]구조조정 이후 원청 사용자성 지워진다 '분사 구조조정, 하청 대량해고 현대중공업, 100% 물량팀 공장 추진 중' file 노건투 2016.09.22 259
109 [독자투고]청년수당도 취업수당도 실업청년 기만할 뿐 생활임금 보장 아래 노동시간 줄여 일자리 나눠야 file 노건투 2016.09.08 215
108 [독자투고]삼성중공업 하청노동자, 골리앗 상대로 싸움 시작하다 file 노건투 2016.09.06 248
107 [기고]하나되어 승리하는 투쟁 - 갑을투쟁을 지지하며 연대한 학생으로부터 - 노건투 2016.08.26 132
» [문화-독자투고]영화 [예고범] 노동자운동이란 대안이 있었어도 예고범이 나타났을까 ? file 노건투 2016.05.20 780
105 [기고] ‘대륙의 실수’에 노동자가 응답한다 file 노건투 2016.04.20 10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