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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7년 6월항쟁

치열한 노동자민중 투쟁의 연장, 1987년 노동자대투쟁의 산파

 

박인국

 

 노동자세상 172호 (2018년 1월 17일)

 


 

젊은이들은 영화 <1987>을 보고 87년 6월항쟁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영화에서 다룬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은 87년 6월항쟁의 기폭제였다. 그런데 이런 기폭제만으로는 6월항쟁도, 그 뒤의 노동자대투쟁도 일어날 수 없다.

근본적으로 보자면, 6월항쟁과 노동자대투쟁은 노동자민중의 거대한 분노와 도도한 저항물결 덕분에 일어날 수 있었다. 대통령 얼굴만 바꾼 것에 만족하지 않고 노동자민중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꾸고자 한다면, 과거 역사를 통해 무엇이 세상을 바꿀 근본 동력인가를 직시해야 한다.

 


 

 

 

6면 6월항쟁.jpg

87년 6월 항쟁은 노동자 민중의 거대한 분노와 도도한 저항의 흐름 속에서 터져 나왔고, 곧바로 7,8,9월 노동자 대투쟁으로 이어졌다. 사진은 1985년 구로동맹 파업.

 

 

 

영원히 꺼지지 않을 혁명의 횃불, 광주민중항쟁

 

광주민중항쟁은 전두환 정권한테 잔인하게 진압당하며 비록 꺾였지만, 아주 중요한 교훈과 강렬한 영감을 남겨줬다. 먼저 노동자계급이 참으로 혁명적임을 보여줬다. 광주항쟁은 학생들이 시작했지만, 많은 학생이 중간에 겁을 먹고 투쟁을 포기했다. 27일 도청에서 끝까지 싸우다 죽거나 항쟁 과정에서 체포당한 사람의 상당수가 노동자였다. 광주 아시아자동차(현 기아자동차) 노동자들은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던 장갑차를 내주고, 화순 광산노동자들은 다이너마이트를 공급했으며, 나주 섬유노동자들은 트럭을 타고 경찰서 지서를 털어 무기를 도청으로 실어 날랐다. 당시 노동자들은 자기 잠재력의 1/100도 쓰지 못했지만, 혁명적 잠재력을 충분히 보여줬다.

 

다음으로 광주항쟁은 혁명적 노동자당의 사활적 중요성을 가르쳐줬다. 자생적인 민중항쟁을 의식적인 노동자혁명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전국 차원의 노동자혁명 지도부, 즉 혁명적 노동자당이 절실하다는 점을 광주항쟁은 ‘피의 교훈’으로 남겼다. <1987> 영화는 어렴풋하게 보여줄 뿐이지만, 광주항쟁은 80년대 내내 수많은 학생과 노동자의 마음속에서 꺼지지 않는 저항의 불꽃으로, 새로운 세상에 대한 뜨거운 갈망으로 타올랐다.

 

 

다시 일어서는 노동자투쟁

 

원풍모방, 동일방직 등 70년대 민주노조운동의 주축이었던 다른 노조들은 광주에서 2,000명을 학살하고 등장한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의 서슬 퍼런 탄압에 짓눌려 숨죽이면서 서서히 해체돼 갔다. 하지만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받아 안고 탄생해 분투하다가 81년 강제 해산당했던 청계피복노조는 84년 법외노조를 선언하고, 합법성 쟁취를 위해 학생, 진보단체와 함께 치열한 가두투쟁을 벌이는 등 70년대에 이어 80년대 초중반에도 운동의 선봉에 굳건하게 서 있었다.

 

83년에 사회 전반에 민주화투쟁 바람이 불자 84년 대구 택시노동자들이 노동자 대중투쟁의 불을 댕겼다. 84년 5월 24일 대구 택시노동자 1,000여 명은 사납금 인하, 퇴직금 지급, 노조결성 방해중지 등을 내걸고 대구시청 앞 등을 차량으로 봉쇄하고 농성에 돌입해 대구시의 항복을 받아냈다. 이 파업은 부산, 대전, 강릉 등 전국 각지에서 잇달아 택시노동자파업이 일어나게 했고, 운수업계에 노조설립 물결이 일게 했다.

 

인천의 대우자동차(현 한국지엠) 노동자 1,000여 명은 85년 4월 16일부터 ‘18.7%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가, 9일 만에 사측의 양보를 받아냈다. 대공장 노동자들이 역사의 무대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는 점을 보여준 이 파업은 87년 노동자대투쟁으로 나아가는 굳건한 징검다리이자, 훌륭한 예고편이었다.

 

85년 6월 구로동맹파업은 한국 노동운동사에 한 획을 긋는 역사적 투쟁이었다. 6월 24일 전두환 정권이 위원장을 구속한 것을 규탄하며 대우어패럴노조가 아침 일찍 파업에 돌입했고, 효성물산, 선일섬유, 가리봉전자가 오후 2시부터 연대파업에 돌입했다. 다음날은 세진전자, 남성전기, 롬코리아 노조가 동맹파업 지지농성 대열에 합류하면서 한국전쟁 이후 유례가 없던 동맹파업 불길이 거세게 번져나갔다.

 

29일, 구사대와 경찰에 진압당해 연대파업이 막을 내렸지만 ‘노동자는 하나’, ‘동맹파업’이라는 노동자의 정신은 높이 솟구쳐 올랐다. 영화 <1987>에서는 역사의 주인공으로 우뚝 일어선 여성들의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지만, 구로동맹파업에서는 그런 여성들의 모습을 매우 많이 볼 수 있다.

 

 

87년 7·8·9 노동자대투쟁의 산파, 6월항쟁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은 87년 4월 13일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거부하는 호헌조치를 선언했다. 이에 치떨리는 분노를 안고 있던 민중은 5월 18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은폐 조작 내막이 알려지자 대대적인 투쟁으로 떨쳐 일어섰다.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에 분노해 6월 10일 국민대회에 전국적으로 24만이 모였다. 서울의 대규모 집회시위를 막기 위해 전국에서 전투경찰들을 서울로 집결시켰지만, 이것은 오히려 지방의 치안공백을 낳아 지방의 시위가 분출되는 것을 도왔을 뿐이다.

 

명동성당 농성투쟁이 타오르는 투쟁의 불꽃을 더욱 거세게 키우자 군사정권은 비상계엄 발동설을 퍼뜨려 농성단을 해산시키기도 했다. 실제로 전두환 군사정권은 80년 광주항쟁 때처럼 군대를 보내 잔인하게 진압하는 걸 검토했지만, 군대를 투입할 경우 군대 안에서 반란이 크게 일어날지 모른다고 미국이 우려해 군대 투입을 취소했다. 어쨌든 계엄설에도 민중은 조금도 꺾이지 않고 6월 18일 전국에서 200만 명이 모이는 기염을 토했다.

 

특히 부산에서 투쟁이 가장 고조됐다. 10년쯤 전 부마항쟁 경험을 가진 부산에서는 수십만 명이 모인 가운데 노동자들이 대형트럭, 트레일러 10여 대를 앞세우고, 200여 대의 택시를 가세시켜 시청으로 돌진하는 등 과감한 투쟁을 벌여 도시 전역을 해방구로 만들어버렸다. 투쟁은 호남, 강원 일대로, 중소도시로 시간이 갈수록 확대됐다.

 

6월 26일에도 전국적으로 100만 명 정도가 모여 시위를 전개했다. 서울, 부산 등 주요 도시에서는 날마다 가두투쟁이 끊이지 않았으며, 투쟁규모는 확대되고 더욱 격렬해져갔다. 비록 조직적 대열을 갖추지는 못했을지라도, 노동자들이 6월항쟁 후반부로 갈수록 광범위하게 시위에 참여했다. 이런 투쟁압력에 위기를 느낀 전두환 정권은 결국 6월 29일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하는 항복선언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제2의 6월항쟁, 즉 박근혜 정권 퇴진 촛불항쟁과 마찬가지로 87년 6월항쟁은 자본가정권을 타도하고 노동자계급의 직접민주주의 권력을 건설해 노동해방으로 나아가겠다는 뚜렷한 계급적 지향을 갖지 못했다. 단지 ‘독재타도, 민주(정부)쟁취’나 ‘호헌철폐, 직선제쟁취’에 머물렀을 뿐이다. 또한 6월 민중항쟁에는 혁명적 정치조직과 연결된 일부 선진노동자들과 미조직노동자들이 꽤 참여하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노동자계급이 주도력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6월항쟁은 4.19혁명 및 80년 광주항쟁을 뛰어넘는 전국적이고 전 계급적이며 폭발적인 민중항쟁의 위력을 보여주긴 했지만, 6.29선언이라는 기만적 선언 앞에 중단돼 버리고 말았다. 이것은 자본주의 안에서 정치적, 경제적 개량만을 추구하며 끊임없이 동요하는 소부르주아가 주도하는 민주주의 운동의 계급적 한계를 분명히 보여줬다.

 

박종철 열사가 목숨 걸고 지켰던 선배 박종운이 결국 한나라당에 들어갔고 극우언론 논설위원 역할까지 맡은 것, <1987>에 등장하는 민주화운동가 김정남(설경구)이 김영삼정부 교육문화수석 비서관을 한 것, 2016년에 박근혜정부가 성과연봉제를 밀어붙였을 때 87년 연세대 총학생회장 출신 더민주당 원내대표 우상호가 ‘성과연봉제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는다’고 했던 것은 소부르주아 민주주의 운동이 결국 자본가계급에 얼마든지 투항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줬다.

 

한편, 6월항쟁은 수십 년 동안 숨죽여 지내왔던 노동자계급이 어깨를 활짝 펴고 억센 주먹을 치켜든 채 역사의 무대로 성큼 뛰어올라 자신의 혁명적 잠재력을 유감없이 보여줄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을 열어줬다. 특히 6월항쟁에 적극 참여했던 선진노동자들과 노동자투사들은 거대한 항쟁에서 큰 자신감을 얻고, 7월부터 한국을 뒤흔든 거센 노동자투쟁의 파도를 만들어냈다.

 

우리가 계승해야 할 것은 6월항쟁의 소부르주아 계급적 한계가 아니다. 반독재 민주화를 넘어 노동자의 생존권 쟁취로, 민주노조 건설로, 노동자해방으로 뻗어나가려 했던 선배노동자들의 헌신적인 투쟁을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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