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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노동자는 하나”라는 정신을 지켜야 했다

온수역 비정규직노동자 사망 사고에 대한 정규직노동자의 반성

노동자세상 171호 (2018년 1월 3일)

 

 

4면 철도 온수역 사고.jpg

노량진역 사망 사고 당시의 추모 공간. 정규직의 죽음과 비정규직의 죽음이 어떻게 다를 수 있단 말인가?

 

 

 

지난달 14일 온수역에서 배수로 칸막이 작업을 하던 비정규직노동자가 열차에 치여 목숨을 잃었다. 열차운행을 차단하지 않고 작업한 것이 직접 원인인데, 문제를 더 깊이 들여다보면 노동자의 죽음을 먹고 사는 ‘자본주의 자체’의 작동원리가 훤히 드러난다.

 

 

지뢰밭에 비정규직노동자가 던져졌다

 

사망한 비정규직노동자가 자기 목숨을 지킬 수 있는 수단은 도저히 찾을 수 없다.

 

첫째, 열차운행 중에 작업했다. 그런데 바로 얼마 전, 노량진역 선로보수 작업자 사망사고가 있었기 때문에 노동청의 행정명령과 안전보건공단의 권고가 있었다. 그렇지만 철도공사는 무시하고 공사를 강행했다.

 

둘째, 열차가 오가는 위험천만한 선로주변에서 작업해야 했지만 안전교육은 전혀 받지 못했다. 비정규직노동자는 외주업체 소속도 아니고 인력사무소에서 파견된 일용직노동자였는데 사고 사흘 전부터 작업장에 투입됐다. 안전교육도 받지 못한 상황에서 열차운행 중 작업에 투입되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인지하지도 못한 채 사고를 당했을 가능성이 크다.

 

셋째, 코레일은 고인이 예정 작업시간보다 30분가량 일찍 작업현장에 들어갔다는 이유를 대며 사고의 책임을 고인에게 떠넘겼다. 하지만 작업에 투입되기 전에 현장감독자와 역장의 협의조차 없었다. 작업을 승인받기 위해 필요한 기본절차도 교육시키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게다가 현장감독자와 작업자 간의 협의도 없었다. 그야말로 주먹구구식으로 작업 투입이 이뤄졌다. 이제 겨우 사흘째 일하는 고인이 작업이 이루어지는 전 과정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넷째, 시공사는 온수역 인근을 통과하는 열차를 운행하는 기관사들에게 주의조치를 주거나 속도 경감을 요구하는 ‘철도운행 안전협의’도 하지 않았다. 기관사들에게 전방 작업이 이뤄지고 있음을 알리기 위해 200m 전방에 설치해야 할 ‘공사 중’ 표지도 설치하지 않았다. 선로 주변에서 작업할 경우, 법에는 열차감시자를 별도로 두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이것도 지키지 않았다.

 

다섯째, 코레일은 “선로가 아니라 배수로 공사여서 낮에 공사를 해도 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배수로는 기차가 다니는 선로 바로 2미터 옆이다! 이따위 탁상행정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사람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위험한 일을 시키면서 말이다.

 

여섯 번째, 철도노조 조사에 따르면 배수로를 덮는 스틸 그레이팅 덮개가 크고 무거워 운반이 쉽지 않음에 따라 변칙적으로 선로 측면에 설치된 방음벽을 임시로 뜯어내 스틸 그레이팅을 운반한 흔적이 확인됐다.

 

결국 이 작업은 바로 2미터 옆에 기차가 지나다니는 상황에서, 그리고 사람이 지나다닐 공간마저 나오지 않아 방음벽을 뜯어야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상황에서 진행됐다.

목숨을 담보로 하는 엄청나게 위험한 작업에 아무 경험 없는 고인을 투입했다.

 

 

‘철도노동자는 하나’라는 정신을 놓지 않겠다 !

 

이렇게 말해도 된다면, 사망한 비정규직 노동자가 죽기 전까지 살았던 3일은 매우 운이 좋은 날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철로에서, 그리고 이 작업에서 노동자가 살아남을 가능성은 매우 적었다. 그가 비정규직노동자, 일용직노동자였기 때문에 그 가능성은 더 많이 줄었다.

 

선로 작업 중 사망사고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6월 노량진역에서 보수작업공사 표지판을 설치하기 위해 선로 위를 걸어가던 정규직 시설노동자도 열차에 치여 사망했다. 그는 정년을 얼마 안 남긴 노장이었고, 전 노조 시설지부장이었다. 노조는 노량진역에 농성장을 차리고 한 달 이상 그를 추모하며, 코레일과 정부의 대책을 요구했다. 철도노동자로서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본다. 열차에 치여 사망한 비정규직노동자에 대한 우리의 행동은 어땠는지, 어땠어야 하는지 말이다.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가 제대로 실현되지 않고, 정규직으로 인원충원이 되지 않아 발생한 일이다. 그런데 철도노동자들의 분노와 행동은 6월 사고 때보다 훨씬 작았다. 우리 조합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시 이런 사고가 발생한다면, 정규직이 아니라 비정규직이 죽더라도 우리는 행동해야 한다. 정규직의 죽음과 비정규직의 죽음이 어떻게 다를 수 있단 말인가? 부끄럽다. 반성하고 성찰하며 다시 한 번 ‘노동자는 하나’라는 정신으로 싸우겠다는 결의를 다진다.

 

김민성 철도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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