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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평]

<옥자>를 보고 육식이 불편해진다면

(스포일러 있음)

 

 

 

6면 옥자.jpg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를 본 뒤 리뷰를 남긴 관객의 상당수는 “더 이상 육식을 못하겠다”고 말한다. 자유롭게 뛰놀던 옥자가 어느 날 기업 관계자들에게 끌려가고, 끔찍한 봉변을 당하고, 무수히 많은 또 다른 슈퍼돼지들이 잔인하게 도살되는 장면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그런 관객들에게 이 영화는 돈벌이를 위해 동물을 한낱 상품으로 전락시키는 인간의 탐욕에 대한 영화이고, 슈퍼돼지 옥자와 산골소녀 미자의 사랑 이야기다. 그런 해석에 반론을 제기할 생각은 없다. 감독의 의도 못지않게 ‘관객의 의도’(주관적 해석)도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주관적 해석에 또 하나의 주관적 해석을 덧붙이고 싶다.

 

 

상품

 

슈퍼돼지 프로젝트를 추진한 기업 미란도의 입장에서 옥자와 같은 돼지들은 그저 상품에 지나지 않는다. 크고, 맛있고, 비용은 덜 드는 유용한 상품이다. ‘인간의 탐욕’을 위해 희생되는 상품. 그런데 그 옥자의 자리에 ‘노동자’를 대입해 보자. 과연 노동자의 처지는 옥자의 처지와 얼마나 다를까?

 

마치 슈퍼돼지가 크고 맛있어야 하는 것처럼, 노동자는 튼튼한 신체와 뭐든 시키는 대로 할 수 있는 유능한 업무능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마치 슈퍼돼지가 적게 먹고도 무럭무럭 자라는 것처럼, 노동자도 최저임금(또는 가능하다면 그 이하)만으로도 불만을 품지 않고 근면성실하게 일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노동력 시장에서 상품으로 팔려나갈 수 있다.

 

 

반 토막 나는…

 

옥자를 구하기 위해 도살장에 뛰어들어간 미자는 거대한 전기톱에 반 토막 나는 슈퍼돼지를 보고 기겁한다. 현실의 노동자가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슈퍼돼지보다 노동자의 처지가 나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마치 슈퍼돼지를 반 토막 내듯 노동자라는 인간의 육체적 능력과 정신적 능력을 분리해 일면적인 삶을 살아가게 만든다. 노동자가 갖는 다양한 개성과 장점을 뭉개고, 자본주의의 ‘효율적’ 생산을 위한 분업체계에 밀어 넣어 작은 부품처럼 파편화시킨다.

 

작업 도중 기계에 몸통이 끼이고, 팔다리가 잘려나가고, 건설현장에서 추락하고 건조 중인 배에서 떨어져 머리통이 으깨지는, 매일매일 벌어지는 산업재해까지 생각한다면 영화적 비유와 현실의 경계선은 거의 사라진다.

 

 

더 이상 육식을 못하겠다는 느낌이 든다면

 

옥자가 끔찍한 봉변을 당하듯이 노동자도 일하면서,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용주, 관리자, 진상고객으로부터 당하는 끔찍한 봉변을 견뎌야 할 때가 있다. 그런 나날을 보내다보면 인간으로서 살아있다는 느낌이 더 이상 들지 않는다. 고통을 겪은 옥자가 미자를 못 알아보고 날뛰듯이, 때로는 노동자도 친구, 가족, 지인과의 관계가 틀어지거나 단절되는 아픔을 겪는다.

 

이 영화에서도 단지 동물만 피해자로 묘사되지 않는다. 동물해방을 목표로 투쟁하는 단체 활동가들 역시, 기업의 돈벌이에 방해된다는 판단이 들자마자 가차 없는 폭력적 억압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묻고 싶다. 영화 <옥자>를 보고 육식이 견딜 수 없을 만큼 불편하게 느껴지는가. 그렇다면, 인간 노동자를 한낱 움직이는 고깃덩어리 상품으로 취급하는 자본주의에 대해서는 얼마나 더 견딜 것인가.

 

오연홍 노동자운동 연구공동체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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