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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운동의 준비와 단련의 중요성

노동자계급의 힘이란 관점에서 바라본 1987년 6월 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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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6월 항쟁과 7.8.9 노동자대투쟁 2년 전에 벌어진 구로동맹파업은 비록 패배했지만 노동자들이 이미 일어설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여주었다.

 

 

 

문재인 정부 등장 이후 많은 언론이 촛불항쟁과 1987년 6월 항쟁을 비교하며 6월 항쟁의 의미를 재조명했다. 재조명의 핵심은 “민주주의의 소중함”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누구를 위한 민주주의인가’는 묻지 않고, 자본가 민주주의를 뛰어넘으려 했던 노동자계급의 힘은 거론하지 않았다.

 

 

거대한 저항, 그러나 기만적인 선언 앞에 막히다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은 87년 4월 13일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거부하는 ‘호헌조치’를 선언했다. 이에 대한 치떨리는 분노를 안고 있던 노동자민중은 5월 18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은폐, 조작 내막이 알려지자 대대적인 투쟁으로 떨쳐 일어섰다.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에 분노하며 6월 10일 국민대회에 전국적으로 24만이 모였다. 노동자민중 시위대는 폭력경찰과 적극적으로 맞서 싸우며 경찰버스, 파출소, 당시 여당이었던 민정당사를 습격했다.

 

전두환 정권은 80년 광주항쟁 때처럼 군대를 보내 잔인하게 진압하는 걸 검토했지만, 군대를 투입할 경우 군대 안에서 반란이 크게 일어날지 모른다고 미국이 우려해 군대 투입을 취소했다. 어쨌든 계엄설에도 노동자민중은 조금도 꺾이지 않고 6월 18일 전국적으로 200만 명이 모이는 기염을 토했다.

 

6월 26일에도 전국적으로 100만 명 정도가 모여 시위를 전개했다. 서울, 부산 등 주요 도시에서는 날마다 가두투쟁이 끊이지 않았으며, 투쟁규모는 확대되고 투쟁은 더욱 격렬해져갔다. 이런 투쟁압력에 위기를 느낀 전두환 정권은 결국 6월 29일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하는 항복선언을 할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 직선제 쟁취는 분명 소중한 승리였지만 그것은 한편으로 아주 제한된 승리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지배 세력의 교체에 머무르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개혁이었기 때문이다.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요구와 조직

 

자본가 야당과 소부르주아들은 이 정도의 성과만으로도 충분히 배가 불렀다. 자본가 야당은 선거로 달려갔고 소부르주아들도 일상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노동자계급은 달랐다. 자기 삶이 아직 바뀌지 않았고, 자신들에겐 투쟁할 힘이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6월 항쟁의 펀치를 맞고 비틀거리는 정부를 보면서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일어설 때가 왔다는 것을 직감했다.

 

7월 중순 울산에서 시작된 노동자 파업 물결은 7월 하순 부산과 창원으로 퍼지더니 마침내 8월에 이르러 전국의 모든 지역으로 번졌다. 1987년 7월부터 9월까지 석 달 동안 전국적으로 3,337건의 파업이 일어났다.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는 122만여 명에 이르렀는데, 특히 1,000명 이상의 대규모 사업장 가운데 75.5%에서 파업이 일어났다. 그리고 파업 투쟁은 거의 다 불법이었다.

 

투쟁요구에서도 노동자계급의 고유한 계급투쟁 요구가 전면에 부상했다. “임금인상, 해고철회, 민주노조 건설, 노동조합 활동의 자유”와 같은, 자본가 야당들이 결코 동의할 수 없는 노동자계급의 고유한 경제적 요구가 내걸렸다.

 

노동자계급은 87년 6월 항쟁의 제한적인 성과에 머물지 않았고, 노동자계급의 독자적인 요구와 조직을 세웠다. 그 힘으로 지금까지 삼십 년을 싸워온 것이다.

 

 

노동자계급의 양적·질적 발전과 변혁적 노동운동의 성장

 

노동자들이 전면적으로 진출할 수 있었던 직접적 이유는 6월 항쟁이었지만 궁극적으로는 자본주의 성장에 따른 노동자계급의 양적, 질적 발전과 변혁적 노동운동의 성장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노동자계급은 일어설 준비가 되어 있었다.

 

수많은 노동자가 70년대의 끈질긴 투쟁 전통을 이어받아 80년대에도 투쟁을 확산시켜갔다. 84년 택시노동자 투쟁, 85년 대우자동차 파업, 구로동맹파업이 대표적이다. 85년 6월 24일부터 시작된 구로동맹파업은 한국 전쟁 이후 최초의 정치적 동맹파업이었다. 29일까지 6일에 걸쳐 5개 사업장 1,100명이 지지 연대투쟁을 벌이는 등 총 2,500명의 노동자들이 참가했다. 투쟁은 패배했지만 수많은 선진노동자가 배출됐고, 이 선진노동자들은 서노련(서울지역노동운동연합)을 만들며 노동운동을 단련시켜 나갔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의 봉화를 올렸던 울산 현대엔진에서는 8개의 현장기초모임, 2개의 독서모임, 1개의 조합설립추진 모임 등 11개의 소모임이 가동되고 있었다. 마창노련의 모태가 됐던 청년노동자회도 1987년 투쟁 이전부터 지역 소모임 활동을 같이 해 왔던 10여 개 사업장 위원장들로 구성된 모임이었다.

 

노동자들은 6월 항쟁에도 적극 참여했다. 비록 조직적 대열을 갖추지는 못했을지라도, 노동자들이 6월 항쟁 후반부로 갈수록 광범위하게 시위에 참여했다. 한 예로 경기도 성남시청에서 작성한 <6월 20일~21일 가두시위 종합보고서>에 따르면 6월 19일에는 연행자 80명 가운데 근로자 34명(42.5%), 대학생 8명(10%), 막노동자 6명(7.5%) 순이었다.

 

이처럼 1987년 노동자대투쟁은 어느 날 갑자기 터져 나온 것이 아니다. 수많은 활동가와 선진노동자가 꾸준히 준비하고 있었고, 노동자들이 6월 항쟁으로 열린 정치적 공간을 십분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물론 갓 출발한 민주노조들은 숱한 약점을 가지고 있었고 공권력을 동원한 탄압, 보수야당의 회유와 통제를 뚫지 못하고 내리막길을 걸었다. 하지만 노동자대투쟁으로 얻은 성과는 스스로의 힘과 연대로 쟁취한 것이기 때문에 결코 일시적이지 않았다. 민주노조운동은 전노협을 만들어 90년대 초까지 수많은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을 전개했다.

 

 

다시 한 번 떠오를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의 상호 결합

 

2016년 촛불항쟁은 제2의 87년 노동자대투쟁으로 “바로” 연결되지 못했다. 그때와 달리 자본가계급은 노조 관료제 등 노동자 투쟁을 가로막는 방파제를 많이 쌓아 두었고 비정규직을 확대하면서 노동자계급을 여러 갈래로 분열시켜왔다. 노동운동이 이것을 극복할 힘을 마련 못했기 때문이다. 촛불항쟁을 주도하고 촛불항쟁을 능동적으로 발전시킬 힘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또한 87년에는 많은 대공장에서 노동자들이 20% 이상의 임금인상을 쟁취할 정도로 자본가들의 여력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극심한 경제위기 때문에 자본가들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이 자본가계급의 저항을 분쇄할 노동자계급의 총단결투쟁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87년 6월 정치투쟁과 7~9월 경제투쟁의 상호작용이 다시 재현될 가능성, 나아가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을 하나로 종합해 자본주의에 도전하는 거대한 투쟁이 탄생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촛불항쟁에 나선 노동자민중의 마음속에는 실업과 생활의 불안정성, 저임금 등 자본주의 위기가 토해낸 사활적인 문제에 대한 분노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관건은 전체 노동자대중을 하나의 세력으로 결집시킬 수 있고, 특히 미조직노동자와 청년층의 이해를 대변할 수 있는 조직노동자운동의 힘이다. 그리고 이런 조직노동자운동을 앞장서 이끌 수 있는 선진노동자 부대의 결집이다.

 

어디에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노동자계급의 독립적 요구와 조직, 투쟁을 사수하고 계급적 연대를 조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자.

 

이용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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