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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들꽃, 공단에 피다>

지옥 같은 현실에서 핀 들꽃이 민주노조운동에 보내는 비판과 희망

 

 

5면 들꽃공단에피다.jpg

 

 

 

 


<들꽃, 공단에 피다>는 대표적 투쟁사업장의 하나인 아사히비정규직지회 22명의 이야기를 엮은 책이다. 이 책에 지금의 민주노조운동을 직접 비판하는 내용은 아주 드물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진지하고 헌신적인 투쟁 자체가 형식화되고 관료화된 노동운동에 대한 살아 있는 비판이다. 그리고 아사히글라스 투쟁에서 우리는 가라앉아 있는 민주노조운동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다는 희망을 볼 수 있다.


 

 

내가 비정규직이고 싶어서 비정규직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사히글라스의 점심시간은 20분이었고, 생산시간이 초단위로 체크될 정도로 노동강도는 엄청났다. 늘 최저임금을 받았다. 차헌호 지회장은 몇 년 동안 일을 마치고 대리운전을 했다. 실수한 사람에게 ‘징벌용 조끼’를 길게는 한 달 이상 입혔다. 불만과 분노가 가득했다. 이직하는 사람도 많았고 잘려 나가는 사람도 많았다.

 

“지금까지 내가 비정규직이고 싶어서 비정규직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어딜 가도 비정규직이고, 어딜 가도 열악한 환경에서 일해야 하는데, 이젠 갈 곳도 사실 없다. 일자리가 그만큼 많지 않아서 선택의 폭도 넓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래서 이왕 하게 된 거, 노동조합 믿고 끝까지 가보고 싶다.”(최진석 조합원)

 

22명의 노동자 중 대부분은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그 굴레를 벗지 못하고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노동자가 됐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될 때마다 누구는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자격증 따서 힘들게 정규직이 됐는데 누구는 노력도 안 하고 무임승차 한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공부하고 자격증 따는 것만 노력인가?

 

아사히글라스 노동자들이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정규직이 된 게 아니다. 그들은 어느 공장에서든 성실하게 일했다. 부모님 농사일까지 맡아가며 일했다. 식당이나 옷가게를 차려보기도 했다. 그러나 삶은 나아지지 않았고, 안정적인 일자리는 없었다.

 

어딜 가도 비정규직이고, 어딜 가도 열악한 환경이다. 이런 처지의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민주노조는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고, 그래서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소중한 수단이다.

 

물론 그렇다고 노동자들이 쉽게 민주노조를 결심한 건 아니다. 용기가 필요했다. 삼성, LG 등 대기업이 입주해있고, 수많은 하청업체가 있는 구미공단에서 아사히글라스지회가 최초의 비정규직 노동조합이란 사실은 그만큼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조 건설이 어렵다는 의미다.

 

 

고통 받는 노동자를 넘어 당당한 노동자로

 

자본은 냉혹했다. 온갖 비열하고 악랄한 방법으로 노동자를 흔들었다. 138명이 들불처럼 노조에 가입하자 노조 설립 한 달 만에 문자 한 통으로 조합원을 전원 해고했다. 하청업체와 도급관계를 끝내는 방식이었다. 노동자들은 아직 계약기간이 남아 있기 때문에 충분히 대비하지 못했는데 자본은 그 틈을 찔렀다. 꼴랑 돈 천만 원에 위로금 얼마 얹어 나가라고 회유했고, 일부 간부를 매수하기까지 했다.

 

고용노동부와 경찰, 검찰은 아사히글라스와 한통속이 돼 투쟁을 가로막았다. 아사히글라스에 토지 50년간 무상임대, 법인세 등 국세 5년간 전액 감면, 지방세 15년간 감면 등 파격적인 특혜를 줬던 구미시도 농성장을 강제철거하며 투쟁을 가로막았다. 노동자들은 오직 믿을 건 노동자 자신의 힘이라는 진실을 깨달았다.

 

“지자체, 노동부 모두가 자본가와 권력의 편이 되는 이런 사회에서 어찌 올바른 법의 판단과 정의를 바란단 말인가.”(조합원 민동기)

 

처절한 투쟁의 과정에서 많은 조합원이 떠났지만 22명은 2년 넘게 투쟁하고 있다. 책에는 조합원들의 감동적인 투쟁 얘기가 빼곡히 담겨 있다.

 

아사히글라스 노동자들은 형식적인 걸 싫어했다. 목소리가 쉴 정도로 노래연습을 했고, 어깨가 나갈 정도로 율동연습을 했다. 연대온 500여 명의 노동자를 위해 집에서 10인분씩 밥을 해 오기도 했다. 한 노동자는 자신의 이발 기술을 살려 갑을오토텍 노동자들에게 이발 연대를 하기도 했다.

 

노동자들은 더 열악하고 힘든 현장으로 달려갔다. 매일 아침 구미공단의 미조직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알렸다. 그리고 구미를 넘어 전국의 노동자와 함께 싸우기 위해 노력했다. 전국 10여 개 노조가 함께 만든 ‘투쟁사업장 공동투쟁’의 구심이 돼 비정규직 철폐, 정리해고 철폐, 노동3권 전면보장 요구를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오수일 조합원은 27일간 서울 광화문 광고탑 위에서 고공농성을 하기도 했다.

 

“우리는 이제 현장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하는 노동자가 아니다. 노동조합을 통해서 비뚤어진 세상을 바르게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되었다. 구미지역을 조직하고 전국의 동지들과 공동의 힘으로 투쟁하며 세상을 바꾸는 노동자가 되었다.”(차헌호 지회장)

 

 

함께 싸워 함께 승리하자

 

아사히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꼭 이긴다는 보장은 없지만 후회 없이 싸우고 싶다고 얘기한다. 그러면서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아사히투쟁을 하면서, 넘고 넘어야 할 벽이 한둘이 아니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법도 깨부수고 넘어야할 벽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절대 자본이 허용하는 만큼만 싸워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법이 우리에게 악법이라면 그 법을 깨부수기 위해 투쟁해야 하고, 자본이 허용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요구대로 투쟁을 계속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바로 내 삶의 주체가 되고, 자주적으로 행동하면 사는 길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조합원 안진석)

 

그런데 아사히 조합원들의 상황은 쉽지 않다.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함께 싸워 함께 승리하자”가 이들의 구호지만 폭넓고 강력한 연대는 쉽게 만들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아사히 노동자들은 구미지부 KEC지회가 없었더라면 자신들이 민주노조를 사수하고 현장으로 복직하기 위해서 이렇게 긴 시간 달려올 수 있었을까 물으며 고마워한다. 정말 KEC지회는 처음부터 끝까지 진심으로 연대했다. 그런데 KEC지회는 작년 10월부터 3년간 30억 원의 손해배상을 갚아야 하는 어려운 처지에 몰려 있다. 금속노조와 민주노총은 이 문제를 적극 받아 안지 않았고, 손해배상·가압류에 맞선 강력한 연대투쟁을 조직하지 못했다. KEC지회는 법원의 화해조정을 받아들이는 아주 힘든 결정을 해야만 했다.

 

들꽃들이 하나둘 꺾이도록 우리 스스로가 내버려두지 않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품앗이연대’를 넘어 자본과 정부에 맞선 실질적인 공동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늘 그랬듯이 아사히 동지들이 앞장 설 것이다. 함께 싸워 함께 승리하자.

 

이용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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